2024년 5월 4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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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펀드레이저 세계

‘펀드레이저’란?
후원자와 수혜자 연결, 원활한 기부 돕는 전문가
모금 기술보다 신뢰 구축…기업에 ‘잘하고 있다’
칭찬과 격려로 나눔 독려

지난 2007년, 미국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는 향후 의사(연평균 소득 1위)를 앞지르는 유망 직종으로 ‘펀드레이저(Fund raiser·모금 전문가)’를 꼽았다. ‘펀드레이저’란 기금의 목적과 자금 규모를 분석해 개인, 단체의 기부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기획·실행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미국의 주식 부자 워런 버핏이 재산의 85%를 기부하기까지 ‘펀드레이저’들이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국내에도 기부·나눔 문화가 확산되면서 ‘펀드레이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 “펀드레이저의 역량은 기부 전(前)단계에서 결정된다”

“많은 분이 ‘대학은 등록금도 받고 건물도 많은데, 왜 모금을 따로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당장 굶어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비교해볼 때, 대학 모금은 긴급하지도 않고, 기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도 않기 때문이죠.”

 (왼쪽부터)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모금기획 부장 "실적보다 기부자와의 신뢰 관계를 우선해야죠" / 박종호 기아대책 후원개발본부장" 기업에 다양한 피드백 제공해 동반자 관계 유지해요" / 최종협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 팀장 "후원한 환아의 회복 보며 기부자의 유대감 강화해요"

(왼쪽부터)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모금기획 부장 “실적보다 기부자와의 신뢰 관계를 우선해야죠” / 박종호 기아대책 후원개발본부장” 기업에 다양한 피드백 제공해 동반자 관계 유지해요” / 최종협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 팀장 “후원한 환아의 회복 보며 기부자의 유대감 강화해요”

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은 대학모금의 전문가다. 모교인 한국외대에서 10년간 모금전담 직원으로 활동했고 지난 2007년 서울대에 스카우트돼 개인기부금 200억원을 유치하는 등 3년간 발전기금 3500억원을 모금했다. 이후 건국대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았다. 황 부장은 “모금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기부가 이뤄지기 전까지의 사전 준비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행사에 자주 참석하거나, 우편물에 호응이 있는 분들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거나 성공한 분들의 기사와 책을 읽고 찾아가기도 합니다. 모금 실적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해요. 사람과의 ‘관계’보다 모금 ‘기술’에만 집중하는 마음도 경계해야 해요. 신뢰가 쌓이면, 기부자의 마음은 저절로 열립니다. 많게는 스무 번도 넘게 만나면서, 신뢰를 쌓아갑니다.”

기부를 요청하는 시기와 방법도 중요하다. 황 부장은 “기부를 요청할 땐, 정직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이성적·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현재 대학에 필요한 기금 규모와 종류도 정확하게 말해야 해요.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에둘러서 ‘검토해달라’고 하면 안 돼요. 기부를 요청한 후엔, 펀드레이저가 먼저 다가가는 게 중요합니다. 펀드레이저가 다시 연락하기 전까진, 기부자가 먼저 모금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죠.”

현물, 주식, 부동산 등 기부자의 출연 방식은 다양하다. 황 부장은 “펀드레이저라면 복잡한 기부 절차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부자가 세금이나 법적 절차를 문의할 때, 피드백을 빨리 드리는 게 중요해요. 세무·회계·증권·금융 전문가와 변호사는 물론, 골프 등 레저 스포츠 분야까지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해둡니다. 언제 어떤 문의가 들어와도, 정확하게 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펀드레이저에게 매우 중요한 역량입니다.”

◇박종호 기아대책 후원개발본부장… “기업 사회 공헌 담당자를 칭찬받게 하라”

“NGO의 기업 모금은 ‘애스킹(asking· 기부 요청)’보다 ‘피드백’이 훨씬 중요합니다. NGO가 기업 사회 공헌 담당자와 신뢰가 없는 상태로 제안서를 먼저 들고 가면, 3000만원 이상 후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만족스러운 피드백이 이뤄지면, 기업으로부터 먼저 파트너 제안이 들어옵니다. 그땐 후원금 액수가 억 단위로 껑충 뛰어오르죠.”

박종호 기아대책 후원개발본부장은 온라인사업팀에서 NGO의 조직·사업 전반을 체득한 뒤 2006년부터 기업후원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기업 후원을 담당한 이후 10억 안팎이었던 모금액이 매해 20%씩 늘어났고, 지난해엔 100억원을 넘어섰다. 20개에 불과했던 파트너 기업 수도 100곳 이상 늘었다. 기업 모금의 노하우를 묻자, 박 본부장은 “기업 사회 공헌 담당자가 기업 내부에서 칭찬받을 수 있는 피드백을 항상 고민하고 준비한다”고 답했다.

“기업 내 인트라넷에 사회 공헌 현황과 결과 보고를 올릴 수 있도록, 온라인 페이지를 따로 디자인해서 보내줍니다. 기업 후원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구체적인 수치와 감사편지, 현장 사진을 담습니다. 인트라넷을 확인한 기업 사장과 임직원들이 ‘사회 공헌 열심히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격려해준다고 해요.”

기금 전달식이 끝나면 행사에 참여한 임원들 수만큼 기념사진을 담은 액자를 준비한다. 기업 사회 공헌 담당자는 상사를 배려했다는 칭찬을 들어 좋고, 기아대책은 기업 임원이 NGO 후원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다. 박 본부장은 “기업과 파트너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기업과 5년 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후원금을 더 줄 테니 우리와 해보자’고 제안하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물론 거절합니다. NGO와 기업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서로 간의 ‘신뢰’가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해외 사업에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겼을 때, 이를 뒤늦게 알렸다가 관계가 틀어질 뻔한 적도 있다. 매년 똑같은 피드백을 들고 갔다가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도 듣기도 했다. 그 후부터 박 본부장은 “어려움이 생기면 정직하게 즉시 알리고, 매해 발전된 피드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되고, 혁신적인 대안을 요구하는 기업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업과의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종협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 팀장… “후원자와 환아 모두 만족하는 ‘맞춤형 기부’를 고민하라”

최종협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 팀장은 병동에 있는 5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 틈만 나면 병실을 다니며, 아이들의 회복 정도를 파악하고, 보호자와 고민을 나눈다. 벌써 10년째 계속돼온 그의 일과다. 최 팀장은 2005년부터 후원자와 환아를 연결하는 ‘일대일 결연’을 시작했다. 기부자가 돕고 싶은 환아의 질병과 기부 금액에 맞춰 어린이를 연결했다. 아이가 회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환아가 직접 쓴 감사편지와 함께 후원자에게 보냈다. 후원자와 환아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년 사이에 기부금이 1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최 팀장은 “외래비 3000원이 없어서 병원에 못 오는 아이들이 많아 이 환아들에게 필요한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2007년부터 ‘외래지원카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환아 한 명당 치료 비용을 계산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지급한 것이다. 어린이병동의 사각지대를 찾는 것도 최 팀장의 역할이다. 소아암 환자에게 국한되는 병원학교 프로그램의 경우, 미술교육기관에 연락해 환아들이 미술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들에겐 수술 이후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언어치료센터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최 팀장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매년 환자 500명이 3000건의 치료 혜택을 받게 됐다. 어린이병원 모금의 60% 이상이 개인 기부로 이뤄지고 있고, 10년간 모인 기부금도 190억원에 달한다.

“미국이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는 기부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기부 환경을 만들어주는 모금 전문가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요. 펀드레이저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입니다.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배달자가 아니죠. 환자와 후원자 모두 행복한 기부 환경을 만들면, 개인 기부는 자연히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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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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