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배원기 교수의 비영리 회계와 투명성-④] 공익법인 회계 기준 韓·美·日 비교 분석

올해 시행된 공익법인 회계 기준, 어떻게 만들어졌나  

 

새로운 공익법인 회계 기준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의 결산서류 등의 의무공시 및 외부 회계 감사에 적용되는 공익법인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자산 가액 5억원 이상 또는 수입 금액과 출연받은 재산 가액 3억원 이상의 공익법인은 ‘공익법인 회계 기준’에 따라 회계 처리를 해야한다. 단 학교법인, 의료법인,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등 다른 법령의 특별한 경우가 있는 경우와 공시 의무가 없는 종교법인은 이 기준 적용에서 제외된다. 즉, 이번에 시행된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주로 사회복지법인 또는 공익법인에 의해 설립된 장학재단 등에 적용된다.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복식부기에 의한 재무제표 작성이 원칙인데, 사회복지법인은 아직 단식부기를 채택하고 있는 곳이 많다. 단 총 자산가액이 20억원 이하인 공익법인과 2018년 말까지 신설된 공익법인은 2019년까지 단식부기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필수 주석 기재사항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도록 유예 조항을 부칙에 마련했다. 

이렇게 공익법인 회계 기준이 제정된 까닭은 무엇일까. 기존까지 민법상 설립된 비영리법인에 대한 회계 기준이 별도로 제정된 바는 없었다. 1975년 공익법인법 시행령 22조에 ‘공익법인의 회계는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업의 경영성과와 수지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모든 회계거래를 발생의 사실에 의해 기업 회계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이었다. 영리 조직의 회계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던 것이다. 상증세법과 최근 고시된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따르면 해당 조항은 삭제돼야함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그 외에 의료법인은 의료법, 학교법인은 사립학교법,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법 규정에 의한 회계규칙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공익법인 또는 비영리조직에 대한 회계 기준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대표적으로 한국회계기준원(KAI)은 2003년 3월 ‘비영리조직의 재무제표 작성과 표시 지침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지침서는 국내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미국의 회계 기준을 그대로 번역한 정도에 불과하단 평이 많았다. 의무화 규정도 아닌데다가 내용이 어려워 실무에서 수용되지 못했다. 이후 또다른 시도도 있었다. 2008년 상증세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익법인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회계감사를 받게하는 한편, 국세청 사이트에 재무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 이를 계기로 비영리조직에 대한 회계기준이 제정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금융감독위원회 등 정부 당국은 영리기업의 회계기준을 제정하고 있는 한국회계기준위원회(KASB)로 하여금 비영리조직 회계 기준을 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2015년 초,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법적근거가 없이 KASB가 비영리 회계기준을 제정할 수 없다는 권고를 내렸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2016년 상증세법 개정을 통해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관한 법적 근거규정을 신설하고 약 1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지난해 12월 8일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고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KASB의 비영리 조직 회계기준 초안을 기초로 정부와 조세재정연구원·회계기준원·회계법인·학계 등 민간전문가 TF가 초안을 마련했고, 공익법인 회계기준 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제정됐다. 

한편, 상증세법상의 공익법인 회계기준과 별도로 KASB는 지난 7월 비영리조직 회계기준을 제정·공표했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비영리조직에 적용 가능한 기준이다. 이는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회계기준이 아니므로 실제 적용은 비영리조직의 자발적인 선택에 맡겨진다.

공익법인 회계기준, 미국·일본 비교해보니 

미국은 민간 전문가단체인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가 비영리조직에 관한 회계기준을 제정하고 있다. 의료법인 또는 종교단체 등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미국 회계사회에서 발표하고, 비영리 조직의 형태나 종류별로 제정된 회계기준은 없다. 미국은 FASB가 법률적 근거 없이 비영리 조직에 관한 기준을 제정해 발표하더라도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근거 법령이 없으면 전문가 및 현장의 의견이라해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도 회계전문가들의 통일된 의견이 일반인들로부터 수용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근거법령에 따라 정부가 제정한 여러가지 비영리단체 기준이 있다. 공익법인 회계기준(공익법인 인정법), 사립학교 회계기준(사립학교법), 사회복지법인 회계기준(사회복지법), 의료법인 회계기준(의료법) 등이 있다. 종교법인의 회계기준은 일본 공익회계사협회(JICAP)가 제정했다. 일본 역시 2015년부터 비영리조직 회계기준이 나뉘어져있는 것에 대해 JICAP 등에서 공통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기준의 통일은 어려울 것이란 견해가 많다. 2002년부터 6년간 사회적 합의에 따라 2008년 시행된 일본의 공익법인제도 개혁에 있어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의료법인, NPO 등은 새로운 공익법인제도에 흡수되지 않았던 것. 우리나라 역시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대한 개혁이 시도되더라도, 기존 단체 등의 반발로 일본과 유사하게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비영리 공익법인 제도 관련 법령 제정시기를 비교해봤다. 형태나 내용이 굉장히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1986년 제정된 일본 민법상의 공익법인 제도는 2008년에 전면 개편되어, 민법상 공익법인 관련 규정이 폐지됐고 이른바 공익법인3법이 새로 제정됐다. 

ⓒ배원기 교수

일본의 사례 중 주목할 점은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NPO법)’에 NPO를 관장하는 정부기관이 NPO 회계기준을 제정하지 않고, 민간 기업의 재정 후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NPO 단체들과 회계사 및 세무사 등 민간 전문가들의 공동 노력으로 제정됐고, 그 후 일본 정부 당국으로부터 일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회계기준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해당 NPO 회계기준을 제정한 단체는 해설책자를 만들고 일본 전역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고시되기까지 충분한 준비 기간이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말부터 공익법인 회계기준 심의위원회의 외부 심의위원으로서 제정 작업에 참여하면서 상당히 촉박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사회복지법인들의 대응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비영리단체에서 요청했던 해설서나 질의응답 없이 회계 기준과 양식만 고시된 점도 안타까운 지점이다.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일부 규정도 눈에 보인다. 한국 역시 미국과 일본처럼 기준을 발표할 때 해설서나 가이드라인을 함께 공유해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를 돕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공익법인 회계기준, 나아가야할 방향은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고시는 시작에 불과하다. NPO단체들이 실제 적용함에 있어 많은 질문과 추가 검토가 필요하며, 회계 전문가와 실무자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불가피하다. 또한 조기 정착을 위해 관계 당국이나 전문가, 실무자 등이 적극 참여해 해설서 또는 질의응답서(Q&A)를 제작해 교육이 실시돼야할 것이다.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재산세과)는 상속세, 증여세, 양도소득세 등이 주된 업무라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과 회계기준의 보급 및 활성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가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 차원에서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교육 및 홍보에 힘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기획재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조세재정연구원 국가재정통계센터의 책임도 주목해야한다. 새로운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대한 질의회신 및 실무해석 등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돼야할 것이다.

공익법인들도 자체적으로 그동안의 회계관행이나 사례를 집대성해 정부 또는 조세재정연구원 국가재정통계센터에 공유해야할 것이다. 자체 제작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하고 교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배원기 교수는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간 회계사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등에서 32년간 회계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세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약 15여년 전부터 비영리단체 4~5곳의 비상근 감사직을 맡으면서 공익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후 비영리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제정과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1월 '비영리법인(NPO)의 회계와 세무'라는 책을 펴냈고, 홍대 경영대학원에서 “비영리법인의 회계와 세무” 등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신한회계법인 비영리 회계 세무그룹의 고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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