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부모와의 갑작스런 이별… 아이들 감정을 치료하자 문제행동이 사라졌다

#1

장군(가명·12)이는 여덟살 때 아빠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 정신적 충격을 추스를 새도 없이, 엄마도 곧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장군이는 지난 2015년 누나들이 있던 전남 신안의 ‘OO보육원’에 입소했다. 아이는 가족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특히 아빠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거부한 채 입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부모와의 이별로 인한 불안정한 애착은 성 문제로도 이어졌다. 장군이는 충동적인 자위행동을 보였고, 짜증이 나면 스스로 감정을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 했다.

#2

현승(가명·12)이도 가족과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았다. 현승이는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2016년 경남 창원의 ‘□□희망의 집’에 입소했다. 아이는 엄마가 ‘감기’에 걸렸으며, 곧 자신을 데리러 돌아오리라 믿었다. 엄마가 끝내 세상을 떠나면서, 현승이의 문제 행동은 급격하게 늘었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하늘을 보거나 화를 냈고, 시설에서 또래들과 마찰이 생길 때마다 곧장 폭력적인 행동으로 대응했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분노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 꾸준한 심리 치료가 시급했다.

전국 아동복지시설에 입소중인 아동의 수는 1만3689명(보건복지부, 2016년 12월 31일 기준). 2016년 한 해 동안 412명의 아동이 갑작스러운 부모의 병환 또는 사망으로 아동복지시설 또는 위탁가정 등에 보내졌다. 시설 입소 아동들은 불안정한 양육환경에 노출되었던 경험으로 인해 심리·정서적 불안감을 호소한다. 한국아동복지협회에 따르면, 시설 내 아동의 경우 내면의 문제가 행동으로 표출되는 비율이 일반 아동들보다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시설 아동에 대한 심리 치료·재활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보건복지부는 2012년부터 관련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협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올해로 시행 7년차를 맞은 ‘시설 아동 치료·재활 지원’ 사업이다. 전국 아동복지시설 및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아동 중 심리·정서·인지·행동상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심리검사, 치료 프로그램 및 가족 역량 강화 프로그램 지원 등 ‘맞춤형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아동 뿐 아니라, 실무 종사자를 위한 교육, 전국 시·도별 자원 네트워크 구축, ‘아동행복 찾기’ 매뉴얼 발간 등 종사자와 지역사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장군이와 현승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했다. 장군이는 상담선생님과 함께 성교육, 감정 표현 등 개별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6개월간 매주 1회씩 상담을 받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왜곡된 성 인식을 고쳐 나갔다. 주말마다 유소년 축구교실에 나가 운동을 시작했고, 학습지 수업, 영화 감상, 친척집 방문 등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욕구를 해소했다. 장군이의 사례 담당자는 “(장군이가) 예전보다 긍정적이고 문제가 심했던 성문제 또한 호전됐다”며 “항상 혼자 자고 싶어하던 아이가 요새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원가족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함께 체험학습 중인 현승(가명·12)이네 가정. ⓒ한국아동복지협회

현승이는 총 18회의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충동적이고 산만한 아이가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던 현승이의 욕구를 반영해 한글읽기, 구구단 학원을 비롯해 태권도 도장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현승이 아빠도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모교육, 가족 집단미술치료, 체험학습 등에 적극 참여했다. 현승이는 참여 후기를 통해 “원가족 프로그램을 하면서 아빠와 더 친해진 것 같다”며 “요즘은 아빠 집에도 자주 가고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척 좋다”고 썼다.

두 아동 뿐 아니라 지난해 사업에 참여한 585명의 시설 아동 전반적으로도 사업 효과가 나타났다.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K-CBCL)로 참여 전후를 비교한 결과, 전체 평균 12.9점이 감소해 문제행동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자아존중감 척도(SES) 역시 상승했다. 사업 참여 전후를 보면, 미취학 아동이 평균 2.26점, 초등학생이 0.17점, 중·고등학생이 1.24점 상승해 평균 1.43점만큼 자아존중감이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까지 한국아동복지협회의 ‘시설 아동 치료·재활사업’을 통해 혜택을 받은 아동은 총 3448명. 6년간 총 54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매년 500명 이상의 시설 아동이 지원을 받았다. 2016년부터는 그룹홈에 대한 지원도 시작돼 약 60여명의 그룹홈 아동이 혜택을 받았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효과성 평가 및 사례관리 성과 연구로 연구보고서를 발간, 지속적으로 시설 내 아동들을 지원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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