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동네 언니, 형들이랑 놀자, 대학생 놀이시터 서비스 놀담

9살 지훈이(가명)는 토요일을 좋아한다. 지훈이가 좋아하는 놀이선생님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놀이선생님을 만나면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신나게 놀 수 있다. 지난주에는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사우나에 가서 서로 등도 밀어줬다. 마음껏 놀다 와서 지쳐 잠든 지훈이 얼굴을 볼 때마다 지훈이 엄마는 뿌듯하다. 아버지와 따로 사는 지훈이에게 든든한 아버지나 형 같은 존재가 필요할 것 같아 놀이선생님을 찾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대학생 놀이선생님이 지훈이를 정말 자기 동생 대하듯 해줘서 기대 이상이다. 특히 엄마가 함께 해주기 힘든 몸 쓰는 놀이를 통해 지훈이가 건전하게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다.

놀담은 어떤 곳?

지훈이가 놀이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놀담’을 통해서다. 놀담은 대학생 ‘놀이시터(playsitter)’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학부모와 놀이시터 아르바이트 대학생을 연결한다. 3살부터 10살까지 아이를 둔 학부모가 신청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노는 게 놀담의 핵심. 특별한 ‘놀이 공식’이 정해진 게 아니다.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아이와는 놀이터에 가서 뛰어놀 수 있고, 책을 읽고 싶은 아이와는 옆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놀담을 만든 건 뜻밖에도 20대 대학생들. 지난해 3월, 문미성(24·사진) 놀담 대표를 포함한 대학생 3명이 시작한 소셜벤처다. 대학생인 그가 육아 관련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뭐였을까.

ⓒ장석현 사진작가

“제가 13살 어린 여동생이 있어요. 부모님 두 분이 맞벌이를 하셔서 제가 동생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죠. 하루는 놀이터에서 동생이랑 놀고 있는데 아이 어머님 한 분이 저한테 와서 오만 원을 쥐어주면서 잠깐 애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거에요. 제가 항상 동생이랑 같이 있는걸 보고 안심하고 믿고 맡기신 거죠. 그 후로도 종종 애 맡기면서 오만 원씩 쥐어주시더라고요. 저는 ‘오 이거 좋은데?’ 하고 넙죽 받았죠(웃음). 그러면서 자연히 엄마들이 아이를 맡길 수요가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사업 아이템이 나왔죠.”

대학생에게 아이를 맡겨도 괜찮은 걸까? 문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것도 이 부분이다. 놀담은 놀이선생님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신원이 확실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하고 놀이선생님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도 많다. 서면심사와 면접심사를 통과하고 재학증명서와 건강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뒤엔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해야 한다. 놀이시간이 끝난 후에는 학부모와 놀이선생님들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문 대표는 “수요에 비해 놀이선생님 수가 부족한 편”이라면서도 “검증된 교사만을 쓰기 때문에, 무리해서 숫자를 늘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놀이선생님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 ⓒ주식회사 잘노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올해로 1년, 엄마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높다. 놀담을 이용해 본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커뮤니티 후기가 이어졌기 때문.

“한부모 가정이라 아이와 놀아줄 체력 좋은 선생님을 필요로 했거나, 심장 질환으로 신체활동이 부족했지만 놀이선생님 덕분에 도움을 받은 경우 등 어머님들이 워낙 후기를 정성 들여 써주셨어요. 어머니들 사이에서 알려지는데 크게 도움이 됐죠. 한 어머니는 블로그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심했던 아이가 한국체육대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하는 놀이선생님을 만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어서 감동 받았다’고 후기를 남겨주시기도 했어요. 그 글을 보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많은 부모님들이 놀담을 찾기도 했고요.”

입소문이 퍼지면서 놀담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2016년 3월에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여 만에 8000명이 넘는 학부모가 가입했고, 12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놀이선생님 교육을 이수했다.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이뤄낸 성과다. 아직까지는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올 7월 부산 진출을 시작으로 점차 서비스 대상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아이들을 놀게 하자

아이들을 위한 놀이서비스는 기존에도 많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교육놀이’를 내세운다. 사교육 강사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놀이’, ‘독서놀이’, ‘미술놀이’ 등이다. 하지만 놀담은 ‘교육’을 뺀 온전한 ‘놀이’를 콘텐츠로 선택했다.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논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놀이선생님과 아이들의 신나는 한때 ⓒ주식회사 잘노는

“내 아이가 충분히 신나게 놀길 바라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세요. 특히 저희 놀담을 찾는 나이대 아이들은 기존의 짜여진 프로그램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에너지가 있어요. 많은 학부모님이 놀담에 가장 바라는 게 건장한 남자 대학생들이 애들이랑 몸으로 뒹굴면서 진을 빼놓는 거, 그래서 에너지를 건강하게 분출시켜주는 거예요. 또 감정적인 부분, 아이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열 마디씩 반응해주는 거죠. 예를 들면 4살짜리 아이가 ‘이건 컵이야’ 했을 때 ‘맞아 컵이네? 누가 먹는 거지? 얼음이 있네? 차가울까 뜨거울까?’ 이런 식으로요.”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은 노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 세 명 중 한 명은 노는 시간이 하루 30분도 되지 않기 때문. 2011년에는 UN에서 한국 정부에게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저희는 아이들의 놀이부족 문제를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제가 동생이나 동네 아이들을 맡아 놀았던 것처럼, 동네 언니 형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도록요.”

놀담 어플리케이션 ⓒ주식회사 잘노는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문 대표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놀담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한다. 놀담만으로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놀담 같은 게 애초에 필요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돈으로 사고파는 관계가 만들어지면 시장이 되어버릴 수 있어요. 옆집 사는 미성이한테 ‘우리 애 좀 봐줘’ 했는데 ‘시급 만원이요.’ 이런 상황이 되는 거죠. 기업의 형태로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 놀담이 정말 궁극적인 솔루션이 맞나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안전한 놀이터가 있다면 아이들은 더 잘 놀 수 있지 않을까. 문 대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놀랩’ 사업에도 공을 들이는 중이다. 키즈카페처럼 완제품과 시설이 갖춰진 곳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한다. 놀담의 노하우가 적용되고 놀이선생님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동네마다 놀랩이 생겨서 아이들이 동네 언니와 형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게 되는 것, 문 대표가 그리는 그림이다.

“모두가 잘 노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요. 어린 아이뿐 아니라 성인, 시니어, 장애인들의 놀이 프로그램도 개발하는 중이에요. 저희 회사 이름 자체가 ‘잘노는’이고 공식 미션이 ‘잘 노는 대한민국을 만들자’거든요. 꿈은 큰데 갈 길이 머네요(웃음).”

이현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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