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성장’보다 ‘가치’를… 국제개발정책 나아갈 길

새 정부 국제개발협력, 최우선 과제
원조 철학 없어 정권따라 좌지우지… 새정부 5년, 철학 세우고
한강의 기적’ 넘어서 민주주의, 인권… ‘책임있는 국가’ 거듭나야

지난해, 연일 ‘ODA(공적개발원조)’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최순실을 비롯해 특정 집단이 ‘개발협력’을 사유화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코리아에이드’, ‘미얀마 ODA’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 5월 24일, 감사원은 ‘ODA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유·무상 원조 분절화도 심각하고 무상 원조를 수행하는 기관만도 63곳에 달해 사업 부실화, 현지 사무소 중복 운영, 수원국 혼선 초래, 원조 효과 저하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 ODA와 연관된 정부기관끼리의 비효율뿐 아니라, 새마을운동중앙회·새마을세계화재단 등 복수 기관의 유사 사업으로 “너무 혼란스러우니 단일화 해달라”는 해외의 요청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새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어디로 가야 할까. 더나은미래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향후 국제개발협력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철학과 합의 없었던 개발협력 40년

올해로 대략 40년. 우리나라 국제개발협력의 역사다. 1987년 설립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유상 원조를 시작으로 1991년엔 무상 원조를 시행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만들어졌다. 2006년엔 ‘원조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다크(DAC)에 가입했고, ODA 기본계획 1·2차와 국제개발협력기본법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우리의 ODA는 수십년째 제자리걸음”이라며 “새 정부는 철학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장은 “그간 개발협력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 보니 근본적인 전략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졌다”며 “새 정부 5년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원조 철학과 가치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탓에 이명박 정권 때는 ‘실용 외교·자원 외교’, 박근혜 정부에선 ‘코리아에이드·새마을운동’ 등 정권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됐다”며 “큰 방향성에 대한 합의 없이 누군가 뚝딱 방향을 정하거나 문제만 기술적으로 해결하려 하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ODA 키워드… ‘책임 있는 중견국’ ‘촛불 민주주의’

한국의 국제 개발협력은 어떤 가치와 방향을 담아야 할까. 김태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13일 국회 ‘국제 개발협력 정책 토론회’ 발제문에서 영국과 미국, 스칸디나비아 국가, 일본과 중국 등 각 나라의 원조 철학과 접근법을 비교했다. 그는 “영국에서도 개발협력 관련한 의회 공식 보고서에 ‘국익’이라는 단어를 쓴다”며 “다만 ‘경제적 차원’에서의 편협한 의미가 아니라, 지구촌 빈곤, 테러 등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의 ‘국익’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나 독일은 유상 원조 비율이 높아 국제사회로부터 욕을 많이 먹는다”며 “스웨덴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국제 원조에서 온전히 ‘인도주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인듯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우리나라도 ‘동아시아의 스웨덴’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했다.

경제 성장만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했던 한국의 발전 경험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이 국제 개발협력에도 담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장대업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성장 과정에서 경제 성장을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다 보니, 민주주의 후퇴, 사회 분열 등 여러 부작용을 목격하고 있다”며 “촛불 염원을 안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 시민 참여, 사회 발전 등의 가치를 해외 개도국과의 개발협력 사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송진호 부산YMCA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개발협력에서 ‘한강의 기적’ 같이 빠른 경제 성장을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면 이제는 ‘한국이 이룬 민주화, 촛불 민주주의’의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며 “한국의 6~70년대 독일이나 미국 등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듯이, 아시아 내 민주주의와 인권, 동북아 평화 증진을 위한 기금이나 재단을 만들고 다른 아시아 나라들을 돕는 것이 한국의 책무”라고 했다.

◇거버넌스 갖추고, 시민 사회 파트너십 제고해야

전문가들은 “분절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적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장은 “원조 분절화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긴 어려운 부분”이라며 “현재의 유명무실한 ‘개발협력위원회’ 대신, 상위 차원의 국가전략회의를 설치해, 원조 분절화 문제를 조정하기 위한 단계별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와의 단단한 파트너십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윤현봉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사무총장은 “이전 정권에선 시민 사회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대상으로 봤던 반면, 새 정부는 시민 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며 “ODA인턴이나 해외 봉사 등으로 질 낮은 임시직을 양산하는 대신 NGO파트너를 키우고 사람에게도 투자하게 한다면 사람과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송진호 부산YMCA사무총장은 “개발협력을 ‘일자리’ 문제의 해답으로 보고 청년 임시직을 양산해선 안 된다”면서 “공정무역·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개발협력과 사회적경제가 만나는 지점에서 청년들이 만들어갈 수 있는 상상력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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