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오승훈의 공익마케팅-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대학 시절, 친한 교수님께 믿음이 무엇인지 여쭈었다. 교수님은 주머니에서 100원 동전 하나를 꺼내서, 오른손에 쥐고 물으셨다. ‘내기 하나 할까? 동전은 어느 손에 있니? 네가 맞추면 내가 만 원을 주고, 틀리면 내게 만 원을 줘야 해’ 눈앞에서 보여주셨기에 의심의 여지 없이 오른손을 가리켰다. 교수님은 약속대로 만 원을 주셨다.

‘다시 한번 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손을 허리 뒤로해서 동전을 어느 손에 쥐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다시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이번에도 오른손에 동전을 쥐었어. 어느 손에 동전이 있는지 맞춰볼래? 똑같이 만 원 내기야.’ 어차피 만원을 벌었기에 주저 없이 오른손을 가리켰다. 교수님은 만원을 또 건네주셨다.

다시 손을 허리 뒤로 하고 동전을 쥔 후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세 번째 내기를 하셨다. ‘이번에도 오른손에 동전을 쥐었어. 어느 손에 있는지 맞춰볼래? 그런데, 이번에는 10만 원 내기야.’ 이번에는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맞추지 못하면 10만 원을 내놓아야 했고, 세 번 연속 오른손에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생각으로 주저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걸 보는 힘이야.

우리는 판단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배경과 외모를 가졌는지, 평소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최근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등을 생각한 후, 저 사람은 믿을만하다고 판단한다. 믿기로 판단한 후에도 끝까지 그 믿음을 점검한다. 예상과 달리 실수를 하거나, 기대했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믿음을 철회한다. 우리의 판단은 믿을만한가? 우리는 그 판단을 믿을 힘이 있는가?

몇 년 전, 홈쇼핑에서 ‘만능 걸레’를 샀다. 쇼호스트는 유리, 싱크대, 가구, 심지어 운동화까지 닦았다. 아무런 세제 없이 얼룩도 지워졌다. 저거다 싶었다. 귀찮은 과정 없이 물만 묻혀서 닦으면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저 걸레야말로 인생 아이템이라고 믿었다. 특히 운동화에 꽂혔다. 상품이 도착하자마자 물을 묻혀서 운동화를 닦았다. 그 뒤로 홈쇼핑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의 판단은 믿을만한가? 우리의 믿음의 힘은 얼마나 믿을만한가?

사람은 판단 후에 행동한다. 마케팅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저 걸레로 운동화를 쉽게 닦을 수 있을 거야.’, ‘이 크림을 바르면 눈가에 주름이 줄어들 거야.’, ‘저 브랜드는 믿을만해.’, ‘평소의 반 가격이야.’, ‘저 집 맛있게 생겼어.’ 이런 판단을 하게 만들면, 구매 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판단’은 결핍을 인식(Recognition)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식된 결핍을 니즈(Needs)라고 한다. 니즈가 생기면 대안을 찾기 시작하고, 여러 대안 중 선택을 한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면 뭘 먹을지를 고민하고, 여러 음식 중 하나를 선택해 구매한다.

아무리 결핍이 있어도 그 결핍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판단이란 행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기에, 한 두 끼 굶었어도 김치찌개를 떠올리지 않는다. 식음을 전폐하는 이유이며, 단식 농성으로 호소하는 이유다. 매우 드물게 결핍을 인식하더라도 참아내는 경우가 있다. 성철 스님은 결핍 덩어리의 삶을 살았지만, 무소유를 실천했다.

결핍이 인식되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배고픔, 목마름, 성욕 등의 ‘내적자극’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충분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판단과 행동을 유발하는 동인이 된다. 밥 먹은 지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때는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지만, 두 세끼를 굶으면 모든 것이 다 맛있어 보인다.

마케팅은 주로 ‘외적자극’을 활용한다. 제품 시연, 모델의 광택 나는 피부, 친구의 멋진 새 차, 저렴한 가격,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브랜드와 CEO 등을 보면, 나의 결핍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 행동한다.

마케팅의 자극은 4P로 구성되는데, Product(제품), Price(가격), Place(유통), Promotion(촉진)이다. 어떤 제품은 제품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을 발산하지만, 저렴한 가격이 더해지면 훨씬 더 강한 자극을 준다. 제품은 어떤 공간에 놓이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거나, 고객에게 쉽게 자극에 노출될 수 있다. 광고는 우리의 삶을 바꿔줄 것 같은 자극을 주고, 언론의 뉴스는 신뢰감을 준다.

4P를 설계할 때 5가지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빵 굽는 냄새, 찌개 끓는 소리는 식욕을 자극한다. 원목의 촉감은 안정감을 자극하고, 박하 향의 치약은 양치 습관을 불러일으킨다. 파란색은 희망을 자극하고, 빨간색은 열정을 자극한다. 이런 감각 자극이 우리의 뇌를 성공적으로 점유하면 인상으로 남는다. 인상의 한자는 도장 인印, 형상 상象이다. 도장 찍듯이 강력한 형상을 남기는 것이 인상이다. 그 인상이 머릿속에 정보로 저장되고, 나중에 어떤 판단이 필요할 때 그 정보를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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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NA는 물에 담긴 패키지로 방수 시계에 대한 인상을 남긴다. ⓒFESTINA 웹사이트

금연이 힘든 이유 중 하나도 인상이다. 어지간한 자극을 줘도 담배의 발암물질이 어떻게 우리 몸에 손상을 가하는지에 대한 인상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담배의 발암물질이 어떻게 암이 되는지 감각적으로 잘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연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 역시 인상에 쉽게 남지 않는다. 금연을 성공한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 물었을 때, 폐가 튼튼해졌다고 하는 이는 거의 없다. 계단 오를 때 편하다든지, 담배 냄새가 안 나니까 딸이 뽀뽀해준다든지, 주위가 깨끗해졌다는 등의 감각을 통해 느낀 점을 얘기한다.

최근 흡연 경고 사진이 부착된 담배가 판매되자,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담배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사진을 가려주는 담배 케이스의 매출도 급증했다. 그만큼 그 사진이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의 금연 캠페인은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없었던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다가가 ‘불 좀 빌릴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젊은이들은 모두 담배의 유해성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 ‘담배에는 살충제 성분이 들어있어.’, ‘너 담배 피우면 빨리 죽어.’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른에게 쪽지 하나를 건넨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You worry about me. But why not about yourself?

믿음은 보이지 않는 걸 보는 힘이고, 마케팅은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힘이다. 기업에서 행하는 마케팅은 보이게 하는 데 집중한다. 탄력있는 피부로의 변화를 상상하게 만들고, 어떤 옷을 입는지에 따라 당신의 이미지가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카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일을 하면 멋지게 보이고, 방송을 보는 기능에 그쳤던 TV도 실내 디자인의 관점에서 선택하는 멋진 당신을 보여준다.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세상의 변화를 쉽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손을 씻으면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지만, 손을 씻거나 씻지 않음으로서의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공정무역 커피가 좋은 줄 알지만, 극심한 노동을 하는 아이들을 본 적도 없고, 공정무역 커피 한 잔 마신다고 그 아이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쉽게 볼 수 없다.

반면, 소비자에게도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껏 기업의 현란한 마케팅에 익숙한 소비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근육이 약하다. 보이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키워야한다. 장애인의 보이는 모습 너머에 숨겨진 그들의 재능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고된 노동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길러야 한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비영리나 사회적경제 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할 때 가능하다.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마케팅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이 있다. 경쟁사에서 구매하던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켜 우리 브랜드에서 구매하게 하고, 한 가지만 구매하는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켜 두 개, 세 개 구매하도록 변화시킨다. 똑같은 원리로 손을 씻지 않는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켜 감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의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 ‘오승훈의 공익마케팅’은 마케팅이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지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으로 우리는 어떻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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