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Cover story] 돈만 드는 예술, 돈만 대는 기업? 후원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세요

‘문화예술 모금전문가’ 英 메세나협의회 필립 스페딩 국제교류 본부장

조성녀기자_사진_문화예술모금_필립스페딩_2011“기업은 왜 굳이 돈을 줘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끌려 다니고, 예술단체는 돈만을 목표로 해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가장 나쁘다.”

영국 메세나협의회(Arts&Business) 필립 스페딩(Philip Spedding·48·사진) 국제교류 본부장이 문화예술경영 컨설턴트로서 본인의 경험 중 최악의 사례를 꼽았다. 일본 자동차 회사 D사의 고급 차 브랜드가 유럽 지역의 오페라 하우스와 제휴할 때의 예다.

“개념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좋은 차를 모는 사람들이 오페라를 보러 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기업 차원의 전략이 부재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무조건 지원만 따내려 애썼고.”

비단 D사가 아니더라도 이런 기업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스페딩씨는 기업과 문화예술 단체가 서로 간의 파트너십에 대해 납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자신들이 그냥 돈만 쌓아 놓은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기술력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문화예술 단체에 이해시켜야 하고, 문화예술단체는 자신들이 일정 정도의 성과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을 기업에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필립 스페딩씨는 캐나다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영국에서 문화예술분야 모금전문가로 활동했다. 영국 메세나협의회에서 일한 지는 12년째로 모금, 기업 컨설팅, 국제교류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기업 중에는 삼성에 기업문화경영과 관련한 자문을 한 바 있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 14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의 ‘예술의 사회적 가치 창출’ 좌담회가 있기 2시간 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이뤄졌다. 좌담회에는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 박은실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김인희 서울발레씨어터 단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2008년 시작된 세계금융 위기의 여파로 영국의 문화예술계도 그동안 힘든 시기를 지나 왔다. 스페딩 씨는 “네덜란드에서는 하룻밤 사이 문화예술 투자에 대한 예산이 40%나 삭감됐다”며 “영국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럽 전체에서 그런 경향을 보인 게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국 정부가 예산을 삭감한 후 이미지 관리를 위한 생색내기에 치중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런던과 같은 큰 도시의 유명한 문화예술 단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방의 작은 예술단체나 박물관 등은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문화예술 단체에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스페딩씨는 지적했다. 정부가 두려워하는 유권자들이 문화예술 단체에 대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점을 놓쳤다며 “경기가 나빠서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보러 오지 않는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돈을 내고 기부를 해서라도 향유할 만한 문화예술 작품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 전반의 논의를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게끔 많은 부분을 채워줬으며, 현재는 “구름 뒤로 다시 해가 비치기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영국 메세나협의회의 역사는 35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보다 17년가량 앞선다. 영국의 경우 각 문화예술단체마다 모금전문가가 한두 명씩은 있어, 괜찮은 예술단체일 경우 수입원의 3분의 1은 정부 지원, 3분의 1은 티켓 발매 수익, 3분의 1은 모금 전문가를 통한 모금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스페딩씨는 “이는 영국에서 30여 년간 싸워서 이뤄낸 결과”라며 “한국에서도 이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리라 믿는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한편,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사회에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지금까지 해 왔으니까 그냥 한다는 식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문화예술 후원을 통해 기업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측면이 있고, 나아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문화예술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실례로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거론했다. 빌바오 미술관은 건축하는 7년 동안 당초 예산의 1400%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지만, 완공 후 빠른 시일 안에 적자를 모두 회복하고 빌바오 시가 관광도시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돼 줬다. 덧붙여 스페딩씨는 “대개의 기업에서는 누군가 한 명이 예술을 좋아해서 지원을 시작하곤 하는데, 이런 경우 나중에 보면 회사의 사업 목표와 계획에 맞지 않아 문제가 되기 일쑤”라고 일침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기업가들이 예술의 정신(spirit)과 기업의 뇌(brain)를 가진 균형감 있는 문화예술 경영자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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