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화)

[모금하는 사람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에는 영화배우 고(故) 강수연씨가 떠오른다. 그녀가 자주 하던 말인데 연기와 영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뜻하는 표현이다. 돈이 좀 부족해도 해야 할 일에 대한 목적과 사명이 분명하면 주눅 들지 말라는 뜻이니 비영리 업계 사람들이 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돈과 가오는 모금에 항상 등장하는 단어다. 돈을 언급하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리고 사람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금은 구걸이 아니라는 걸 애써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쪼그라드는 마음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모금은 쉽지 않다. 돈 없는 것은 괜찮지만 돈 달라고 하는 순간 가오도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돕는 일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선, 또 하나는 투자다. 자선은 오늘의 결핍에 집중하고, 투자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둘을 완벽하게 분리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관점은 사람들의 태도를 다르게 설정한다. 즉, 누군가의 오늘이 궁핍함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져서 하는 기부가 있고, 조금만 더 도와주면 내일이 달라질 것을 기대해서 하는 기부가 있다. 이러한 기부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빈곤 포르노와 타당한 모금 명분으로 갈라지게 된다. 대학에서 오래 모금하고 자선단체의 일로 넘어오면서 나는 이 두 가지 관점의 명백한 경계를 보았다. 대학에 희사되는 기부들은 오늘의 궁핍함의 해결이 목적이 아니었다. 늘 더 나은 미래와 밝은 희망의 이야기를 기부자들에게 전하고자 그 명분의 타당성과 투자의 가치를 준비했었다. 그 명분의 크기가 매우 큰 것이라서 고액의 기부자들이 호응했던 것 같다. 반면 대부분의 자선단체의 모금 메시지는 오늘의 핍절함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기부하라는 것이고, 그러한 고통의 경감을 위한 기부는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기실 가오가 무너지는 것은 푼돈을 위해 고통을 팔 때다.

당장 삶의 유지가 어려운 사람을 앞에 두고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하는 현장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하루살이처럼 매일 오늘만 생각하고 일한다면 내일이 오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고, 이것이 반복되면 기부자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심정으로 후원의 기쁨과 만족이 절감될 수밖에 없다. ‘나라님도 어쩌지 못하는 가난을 내가 몇 푼 기부한다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상태가 되는 것은 말 그대로 포기가 돼버린다.

모금을 위한 진짜 이야기는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더 어려운 시절에도 우리 부모님들은 배는 곯아도 종자씨는 따로 모아뒀다가 씨를 뿌렸다.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는 더 중요하다. 오늘을 돕는 일은 늘 정해져 있다.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 무너진 곳을 돕는 일이다. 생명과 안전, 질병,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런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투자는 반드시 꿈과 연결된다. 꿈은, 이루고자 하는 변화된 내일의 모습을 담은 소망의 이야기로 구성돼 기부자에게 전달되고 아직 못다 이룬 꿈을 가진 열정적인 기부자들은 그 꿈에 투자하는 기부를 결정하게 된다.

모금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기부자가 그 말을 받아서 공감하고 그 생각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모금 단체들이 손쉽게 모금하기 위해 절망 상태에 있는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과 사진을 이용한 사례 기반의 모금에 힘쓰면 힘쓸수록 일반인들은 ‘절망적인 오늘’을 마주하게 되고 헬조선 현실에서 함께 좌절하게 된다. 그 좌절감이 싫은 사람들은 돕는 일에서 손을 거두기도 한다. 반면 사람을 살리고 미래를 빛나게 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단체들도 있다. 오늘의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변화를 꿈꾸며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는 내일을 위한 종자씨를 떠올리게 한다. 종자씨는 먹을 게 남아돌아서 떼놓는 게 아니라 배가 고파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가 넉넉하지 않아도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종자씨를 아끼던 옛날 사람들의 지혜를 가진 이들이다.

어느새 기부가 액세서리가 되고 필란트로피가 유행되며 자선 활동이 정부의 전리품처럼 되어버린 세태 속에 진정성을 논하기 쉽지 않다. 시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원래 비영리의 힘은 절망을 거두는 노력과 소망의 시선에서 출발했다. 이제 제자리로 옮겨 가보자.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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