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따뜻한 밥 한끼 차려두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노숙인 재활 돕는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 인터뷰

 

“어서 오세요.”

김현일(50) 대표가 웃으며 가게 문을 열었다. 노란빛 조명과 나무재질의 아늑한 실내. 4계절 내내 따뜻할 것 같은 이 곳은 가난한 이웃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곳, ‘바하밥집’이다. 50m² 규모의 공간, 가게 입구 오른쪽 벽면에는 21장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지난 8년간 바하밥집을 다녀 간 사람들의 모습이다. 일손을 도왔던 봉사자들, 바하밥집의 직원들, 급식을 기다리는 이웃들의 행렬이 담긴 사진들이 그간 바하밥집이 실천해 온 온기를 품고 있었다.

카페브룩스 벽면에 21개의 사진이 붙어있다. 지난 8년간 바하밥집의 무료급식을 도왔던 이들이 사진에 담겼다. ⓒ김희린 청년기자
카페브룩스 벽면에 21개의 사진이 붙어있다. 지난 8년간 바하밥집의 무료급식을 도왔던 이들이 사진에 담겼다. ⓒ김희린 청년기자

바하밥집은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세 번, 정기적으로 무료 급식을 해왔다. 매주 화요일•목요일 저녁 6시, 토요일 정오에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한다. 올해로 8년, 김 대표가 바하밥집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IMF를 겪으면서 노숙도 경험했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노숙인 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제 가정도 돌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동네에 있던 나들목 교회의 경제적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어요.” 거리에 홀로 있어야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다른 이의 인생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몸소 느꼈다. 받았던 도움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에 바하밥집을 시작했다. 그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도 하나, 둘씩 늘어났다. 나들목 교회에서 주방을 사용하게 해줬고, 교회 청년들이 무급봉사로 일손을 도왔다. 주변의 도움과 안면도 없는 시민들의 정기 후원이 이어지며 바하밥집도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매 3번 정기적으로 바하밥집 무료급식이 운영된다. ⓒ바하밥집
매주 3번 정기적으로 바하밥집 무료급식이 운영된다. ⓒ바하밥집

◇밥 한끼 넘어, 스스로 일어서도록

 

바하밥집의 목표는 노숙인들의 진정한 ‘자활’을 돕는 것. 필요한 이들에겐 ‘심리치료’도 제공하고, 역사나 그림, 사진 같은 ‘인문학 교육’에 일자리를 위한 ‘직업교육’도 한다. 그는 “억지로 ‘자활하라’고 해 봤자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어서, 자발적으로 본인이 이야기할 때 까지 ‘형님, 형님’ 하면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를 건넨다”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동기 부여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한 분씩 밥 먹고 이야기 들으면서 친분 쌓는 게 우선이에요.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본심이 나와요. 그렇게 털어놓으면서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재활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는 월셋방도 구해준다. 처음 3~4개월간은 월세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돕는다. 외국으로의 취직을 돕기도 하고, 바하밥집 내에서 직업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생활 방식을 바꾸기를 강요하기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때 까지 기다린다.

누군가의 ‘자립’을 기다리는 쉽지 않은 과정, 굴곡도 많았다. 일을 배워 도망가기도, 돈만 갖고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는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노숙인 분들 상당수가 정신적 상처를 갖고 있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가 노숙인이라 계속 거리에서 자란 분도 계시고, 중간에 사업을 실패해서 거리로 나가게 된 분들도 계시고 상황은 저마다 다르죠. 그러나 절망이나 자격지심, 상실감 같은 것들이 똘똘 뭉쳐 있어요. 어려움도 많았고, 배신도 경험하고, 워낙 인생이 많이 깨졌던 분들이라 몇 번 도와준다고 해서 바로 일어서지 못해요. 그럼에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곳이 되는 게 저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바하밥집이 “굉장히 더디고 애초에 효율성은 포기하고 사는 단체”라며 “단 한 명이라도 온전히 돕기 위해 고민한다”고 했다. 그의 기다림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도 많다. 이제는 그의 양아들이 된 김진수(가명)씨도, 28년간 수감생활 후 노숙을 하던 사람이 바하밥집에 와서 커피를 내리는 이도 ‘바하밥집’에서 일어설 힘을 냈다.

바하밥집에서 운영하는 카페브룩스 내부 전경. ⓒ김희린
바하밥집에서 운영하는 카페브룩스 내부 전경. ⓒ김희린

◇희망을 담는 백팩

 

2014년, 그는 만두 집과 커피 집 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가 시작한 ‘희망백팩’은 양말, 물병, 속옷, 엽서 등의 물품을 담은 백팩을 시민들에게 후원 받아 노숙인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다. 노숙에 필요한 ‘생필품’을 전해, 노숙을 돕고 찾아올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김 대표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물었다. 침낭, 신발, 물, 옷가지…. 충분히 예상했던 기본 물품 외에 의외의 답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엽서와 펜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것. “노숙인 분들은 세상에 쉽게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살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털어 놓을 창구가 필요하신 것 같아요.” 바하밥집으로 엽서가 도착하면, 일일이 답장을 쓰는 것도 김 대표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몫이다. “어떤 분은 초등학교 2학년때 어머니가 만들어줬던 진달래 꽃잎을 올린 전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줄줄 쓰셨어요.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너무 그립다는 이야기였어요. 우리도 SNS에 내 이야기 털어놓잖아요. 이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야기 들어드리고 답장을 해 드리죠.”

전국각지에서 노숙인을 후원하기 위해 보낸 필수용품(희망백팩) 100여개가 가득 쌓여있다. 본인이 사용하던 가방과 손편지를 보내 노숙인의 자활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하밥집
전국각지에서 노숙인을 후원하기 위해 보낸 필수용품(희망백팩) 100여개가 가득 쌓여있다. 본인이 사용하던 가방과 손편지를 보내 노숙인의 자활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하밥집

희망백팩은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하고 후원 받는다. 보통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후원한다. SNS라는 매체 특성상 10~20대의 참여율이 높다는 데서도 김 대표는 “희망을 본다”고 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급식 프로젝트가 지금의 형태로 갖춰진 것도 “젊은 친구들이 직원으로 들어오면서부터”라고도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소통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이들이다.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리기도 하고, 친환경 소재로 양말을 만드는 소셜벤처 ‘콘삭스’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로 8년. 김대표가 앞으로 그리는 그림은 무엇일까.

“저는 상처도 크게 받지 않고, 겁도 없는 편이예요. 그렇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야 그냥 ‘밥 주는 사람’이었는데 젊은 친구들 도움으로 체계도 잡히고 더 긴 호흡으로 자활을 돕게 됐어요. 조금 더 자리를 잡은 뒤에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넘기고 물러나야겠죠. 그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한 묵묵하게 이 자리를 지킬 겁니다.”

김희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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