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어요… ‘이것’만 있으면요”

SK텔레콤 ‘행복을 주는 도서관’
‘문자→음성 전환’ 단말기 개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선보여

홍은녀씨는 선천적인 1급 시각장애인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은녀씨의 입에는 ‘본다’는 말이 익숙하게 붙어 있다.

“시각 장애가 있다고 해서 텔레비전을 듣는다고 하진 않아요. 우리도 본다고 이야기하죠.”

엊그제도 책을 한 권 읽었다는 은녀씨는 줄거리를 자세하게 얘기해줬다.

“톨스토이의 단편이에요. 단편집 제목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고요. 읽다 자다 해서 줄거리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죄를 지어서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의 이야기였어요.”

미상_사진_시각장애인_음성_2011소설을 좋아하는 은녀씨는 신문도 자주 본다. 신문을 봐야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루에 한 시간씩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는 데 투자한다.

그런데 은녀씨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책과 신문을 읽을까? 그동안 은녀씨는 컴퓨터에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인터넷 신문을 읽었다. 스크린리더는 화면에 등장하는 문자들을 읽어주는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것도 편하지는 않았다.

“웹사이트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컴퓨터 부팅부터 줄줄이 넘어야 할 산들투성이죠.”

그런 은녀씨에게 하루 한 시간 마음 편하게 책과 신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SK텔레콤의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이었다.

SK텔레콤은 2010년 7월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해주는 기능을 강화한 시각장애인 전용 단말기를 개발해 5000대를 중증 저소득층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신문과 도서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음성으로 녹음해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호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1년간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에 등록된 자료들의 조회 건수는 250만건이다. 하루 평균 7000명가량이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의 자료들을 조회하는 셈이다.

임경억씨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출근과 퇴근을 한다. 그런 경억씨가 하루 중 가장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 산책 시간이다. 경억씨는 2008년에 분양받은 안내견 ‘풍금이’와 함께 직장 근처의 공원을 거닌다. 오른손으로는 ‘풍금이’를, 왼손으로는 시각장애인전용단말기를 쥐고 있다. 경억씨는 산책을 하며 그때그때 신문과 책을 읽는다. 경억씨가 주로 애독하는 서비스는 일간지의 사설이다.

기자와 산책하는 내내 경억씨는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자의 편견이 부끄러워지는 한 시간의 동행이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많은 정보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지난 15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시각장애인 전용 단말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존 서비스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까지 접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시현해 보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시현해 보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화면 어디를 만져도 음성안내 ‘척척’

기자가 지난 17일 서울국제도서전에 가서 눈을 감고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을 시동해봤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보통 스마트폰엔 버튼이 없고 풀터치 방식이다. 화면 전체가 버튼처럼 반응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불리한 방식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메뉴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는 것만으로 서비스의 화면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은 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 화면 전체를 손으로 만지다 메뉴를 만져도 화면이 넘어가는 대신 음성으로 어떤 메뉴인지 안내가 된다. 그리고 해당 메뉴에서 다음 화면을 보고 싶다면 화면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두 번 두드리면 된다. 그러면 선택된 메뉴의 다음 화면이 나타나고 혹시 이전 화면으로 되돌아가려면 마찬가지로 화면의 어디든 세 번을 두드리면 된다.

이런 구성이 가능했던 것은 개발 과정에 시각장애인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 개발과정에 참여했던 강완식씨는 “디자인 설계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의견을 주었고 테스트에도 참여해 현실성 있게 개발이 되었는지도 검토했다”고 말했다.

어플 제작에 시각장애인 참여… 완성도 높여
음성도서 녹음에 성우·아나운서 90명 참여

애플리케이션의 출시에 함께하는 봉사활동도 줄을 이었다. 애플리케이션의 콘텐츠로 활용될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의 음성도서 제작을 위해 SK텔레콤 사내 봉사단이 발족되었고 1000여 명의 SK텔레콤 콜센터 직원을 비롯한 120여명의 임직원들이 도서녹음에 참여할 계획이다. 또 성우협회의 성우 70명과 아나운서 20명이 녹음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녹음부스에서 녹음 시연을 하고 있던 방송생활 46년차 성우 정민희씨는 “왜 사랑고백도 바라보고 직접 하는 방법도 있지만 전화를 이용해서 목소리만으로 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 설렘 같은 걸 전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주는 열정만큼 SK텔레콤도 노력하고 있다. 원활한 자원봉사를 위해 서울에 있는 콜센터에 전용 녹음 부스 4개를 제작했고 대전·대구·광주·부산 지역 콜센터에 각각 녹음부스 1개씩을 지원해 올해 1000권 이상의 음성도서를 녹음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게 기증할 계획을 세웠다.

SK텔레콤 유항제 CSR 실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보 소외계층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뜻을 전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