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여성 리더에게 리더십을 묻다_”일은 강하게, 사람에겐 부드럽게… 배려의 리더십 통하더군요”

박윤아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 “마음으로 다가가야 사람은 따라옵니다”
박기정 롯데백화점 이사, “지시가 아닌 부탁 조직을 움직이더라고요”
홍승현 검사, “나만의 전문성 키우고 조직문화 전반을 살펴야”
김주연 한국 P&G 상무, “멀티태스킹에 능한 여성 비즈니스도 두각 보이죠”
양진옥 굿네이버스 본부장, “사업마다 새로운 기획 일에 대한 열정은 필수”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자신의 일에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행동하세요”

미상_그래픽_여성_여성리더십_2011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성 리더십은 권위적이고 강한 카리스마를 내세운 기존의 리더십과는 달리 감성적이고 구성원들을 배려하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리더십 유형을 말한다. 여성의 날을 맞아 의학, 법조, 기업, 문화예술, 사회복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여성 리더들을 만나 그들이 현장에서 배운 여성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편집자 주


여성 리더십이 기존의 리더십과 가장 다른 부분은 ‘부드러움’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오너 일가를 제외한 롯데그룹의 첫 여성임원이 된 롯데백화점의 박기정(47) 이사는 “여성 리더십은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힘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디자인과 패션 기획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왔다. “패션은 재단에서 포장까지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맨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까지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어요. 남성 리더들이 하듯이 ‘지시’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듯이 부드럽게 말했죠.”

1. 박윤아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 / 2. 박기정 롯데백화점 이사 / 3. 홍승현 검사 / 4. 김주연 한국 P&G 상무 / 5. 양진옥 굿네이버스 본부장 / 6.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1. 박윤아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 / 2. 박기정 롯데백화점 이사 / 3. 홍승현 검사 / 4. 김주연 한국 P&G 상무 / 5. 양진옥 굿네이버스 본부장 / 6.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여성으로서 20대에 실장, 30대에 부장과 이사가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박 이사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남자 사장이나 전무가 지시하면 무조건 ‘한번 해보겠다’고 하면서도 박 이사가 뭔가를 지시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왜 무리수를 두느냐’며 아래 직원들이 핀잔을 준 것이다. 박 이사는 “그 사람들을 설득해 밤새워 같이 일하고 회사 내에 내 편을 하나둘씩 만들었다. 그렇게 신뢰를 쌓고 나니 그 후에는 일이 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최초의 여자 외과 교수인 박윤아(38) 교수도 남자 일색인 외과 병동에 부드러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위계구조가 분명하고 딱딱한 수술실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던 박 교수는 수술실에서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대신 조근조근 이야기를 했다. 그는 “생명을 다루는 곳인 만큼 기본적으로는 엄격한 분위기지만, 교수가 화를 내면 수술실 분위기가 긴장돼 오히려 수술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며 “권위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아랫사람, 동료의 마음을 움직여서 함께 가는 것이 ‘여성 리더십’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교수가 생각하는 여성 리더들의 약점은 일은 잘 하지만 사람들을 잘 아우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그는 “곁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와 같이 있으면 즐겁고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사람을 끄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여성 리더십의 기저에는 추진력과 열정이 깔려있다. 국제개발NGO 굿네이버스에서 나눔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는 양진옥(39) 본부장은 “가치를 공유하고 구성원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거나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라며 “업무에서 성과를 내려면 일에 대한 열정과 카리스마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양 본부장은 스스로 “승부 근성이 있다”고 말했다. 모금을 담당하는 양 본부장은 매년 비슷한 사업을 하더라도 항상 새로운 기획을 추가한다. 그는 “그래서 나를 혹사시키고 부하직원들도 스트레스를 좀 받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여성 리더십은 남다른 ‘전문성’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홍승현(41) 검사는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을 키우기 위해 올해 새롭게 도입된 ‘전문검사제’에 따라 지난달 공정거래 분야 전문검사로 발탁됐다. 홍 검사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9년간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했고, 사법고시 합격 후 검사가 된 뒤에도 공정거래 사건을 많이 맡아왔다. 홍 검사는 “공정거래업무를 지속적으로 맡아오면서 감시자 역할도 하고 민간단체들의 입장도 들으면서 전문성을 쌓아온 것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됐다”라고 말했다.

홍 검사가 느낀 여성들의 문제점은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이 더딘 편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은 스포츠를 즐기는 데다 군대에서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조직문화에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므로 조직문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홍 검사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에는 무조건 배운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점차 조직문화에 익숙해졌고, 점차 시야를 넓혀 조직 전반을 살피면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갔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전문성’은 중요하다. 16년 전 최초의 민간 프로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한 김인희(49) 단장은 발레리나 강수진과 함께 모로코 왕립학교에서 수학한 한국인 발레 유학 1세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멤버이자 국립발레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발레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김 단장은 발목이 일곱 번이나 부러지고 셀 수 없이 많이 다쳤지만, 가족들에게는 한 번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믿어준 가족들에게 걱정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20대 때는 뭘 해도 다 예쁘죠. 하지만 특히 문화예술에 대해 얘기한다면 아름다운 무용수보다 혼이 있는 무용수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분야를 가지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해요. 열정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거든요.”

결혼과 육아문제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할 때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이지만, 여성 리더들은 이러한 경험도 리더십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두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말하는 한국 P&G 김주연 상무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직장인으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 뛰어난 여성들이야말로 비즈니스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이야말로 조직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기업의 성장을 더 빠르고 폭넓게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주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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