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엄마와 딸에게 ‘우리 사회 여성’을 묻다_”사회 진출 문턱 낮아졌지만 ‘직장 지키기 장벽’은 높아”

우리 땐 대학 나와도 바로 결혼 취업하더라도 공무원·교사였지…
진학·전공, 남녀 경계 없지만 출산·육아 생각하면 막막해요

(위)20년차 공무원 50대 엄마 / (아래)2년차 건설 엔지니어 20대 딸
(위)20년차 공무원 50대 엄마 / (아래)2년차 건설 엔지니어 20대 딸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시위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유엔은 1975년, 3월 8일을 공식적인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전통적으로 남성을 우대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한 한국은 여권(女權) 신장의 속도가 서구 국가에 비해 더뎠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둘러싼 사회여건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20대 딸과 스무 해 넘게 사회생활을 해온 50대 어머니를 만나 이들이 체감하는 과거와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 여건의 변화를 들었다. 편집자 주


삼일절 오후. 딸 박예림(25)씨와 어머니 전연숙(53)씨를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만났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2년차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박씨와 경기도 평택시 공무원인 어머니 전씨는 “모녀가 여유롭게 ‘데이트’를 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했다. 모녀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일 얘기부터 시작했다.

“제가 엔지니어로 하는 일은 국내외에서 수주를 받아 공장을 짓는 과정을 총괄하는 거예요. 한 프로젝트가 보통 1~3년씩 계속 되는데 그 기간 중에는 국내외 현장에 가서 살다시피 하죠.”

딸 박씨가 밝게 웃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여성이 하는 일과 남성이 하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박씨처럼 과거에는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생겨나고 있다. 박씨는 15명의 팀원 중 유일한 여자다.

50대인 어머니 전연숙씨와 20대인 딸 박예림씨가 지난 30년간 달라진‘한국 여성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평등 교육과 적극적 사회 진출 등 변화의 속도는 빨랐지만, 한국 여성은 여전히‘출산’과‘육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신민경 더나은미래 객원기자
50대인 어머니 전연숙씨와 20대인 딸 박예림씨가 지난 30년간 달라진‘한국 여성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평등 교육과 적극적 사회 진출 등 변화의 속도는 빨랐지만, 한국 여성은 여전히‘출산’과‘육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신민경 더나은미래 객원기자

어머니 전씨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1990년 당시에는 지금보다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적었다. 많은 여성이 취직 대신 결혼을 택했고, 취직을 하더라도 ‘공무원이나 교사가 여자 직업으로는 최고’라는 말이 정설처럼 통했다. 전씨 역시 또래 여성 중 드물게 대졸 학력을 가졌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 대신 결혼을 선택했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건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서였다. 전씨는 “당시 9급 지방공무원을 뽑는다는 신문 공고를 보고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악물고 공부를 해서 4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그래도 그 시절 보기 드문 ‘여대생’이었다. 그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식들 교육만큼은 정말 열심히 시키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안의 장녀였던 전씨의 언니는 중학교까지만 다녔다. 전씨가 대학에 들어간 1979년만 해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7%에 불과했다. 전씨와 같은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여성들의 중학교 진학률이 61%, 고등학교 진학률이 71%였으니 실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행운을 얻었던 ‘여대생’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나 불과 30년 만에 우리 사회도 딸, 아들 차별 없이 대학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2009년에는 여성의 대학진학률(82.4%)이 남학생의 대학진학률(81.6%)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딸 박씨가 대학에 들어간 2005년은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처음으로 80%를 넘어선 해였다. 여대생의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여성의 전공 선택 폭도 훨씬 다양해졌다. 박씨는 “기계공학과 같은 경우는 여전히 남자가 많지만, 내가 다녔던 화학생물공학부 같은 경우는 대대로 남자가 많다는 공대인데도 불구하고 3명 중 1명은 여자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전문직 여성의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30년 전에 비해 여의사의 비율은 2배, 한의사의 비율은 7배 가까이 높아졌다.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고등고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도 안 됐으나 지금은 합격자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작년 외무고시 합격자의 60%가 여성이었을 정도다. 가장 큰 ‘유리천장’으로 불리던 여성의 승진 차별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의회의원, 고위 임직원, 전문가 등 전문관리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0.5%를 기록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사회가 지난 30년간 그리 크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는 걸 알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출산과 육아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박씨는 “설계 파트에 결혼한 여자 대리님이 한 분 계시는데 아이들 때문에 6시면 무조건 퇴근해야 하고, 퇴근해도 아이들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하더라”며 “아이 키울 생각을 하면 아찔해요”라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그만큼 아이를 포기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1970년 가임여성 1명당 4.53명을 기록하던 출산율은 2009년 1.15명까지 낮아졌다. 아이를 낳겠다고 어렵게 결심해도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기는 한국사회에서는 결국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육아 시기와 맞물리는 30대 초반 여성의 경제활동비율이 20대 후반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기 위해 ‘일하는 딸’들은 종내 ‘엄마’에게 육아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 박씨 역시 “엄마가 아이를 봐준다면야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전씨는 “내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손주 봐 줄 생각은 없으니 내가 정년퇴직하고 나서 아이를 낳아라”고 웃으며 맞받아쳤다. 하지만 이내 “그럼 네 나이가 서른세 살인가? 아이고”라며 이마를 매만졌다.

여성들은 부서 배치, 해외 출장 등 직장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크고 작은 기회에서 남성들보다 불리할 때도 많다고 호소한다. 회사가 여성인 자신에게 좀처럼 중책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씨가 근무하는 곳은 공장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엔지니어링산업의 특성상 아직 여성이 드물다. 현장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몇몇 국가는 미혼여성에게는 아예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회사 입장에서도 3년 정도 진행되는 공사에 여성을 보내기 꺼리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박씨는 “현장 경험이 없으면 회사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며 “기회가 되면 꼭 해외 현장에 나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머니 전씨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딸이니까”라며 박씨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박씨는 마지막으로 “사명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성 엔지니어라는 길을 택했으니깐 ‘앞으로 이 직업을 선택할 후배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다짐을 들으면서 30년 후에는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환경이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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