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막대한 치료비에 비해 지원비는 한숨만…

장애아동 바우처 실태

올해 다섯 살이 된 딸 아이를 둔 엄마 김선진(가명·36)씨는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김씨는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은 딸을 동사무소에서 장애아동으로 등록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자폐성 장애 2급으로 등록은 가능하지만 제도가 바뀌어 한 가정에 두 명의 장애 아이가 있거나, 부모가 중증장애인이어야 재활치료바우처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치료바우처의 대상자 선정기준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던 담당 직원의 착오였다.

결국 구청까지 찾아가 바우처 대상자 선정기준을 문의한 김씨는 민정(가명)이의 장애인 등록 후 3개월 만에 바우처를 받았다. 현재 민정이는 치료 비용으로 한 달에 16만원씩 지원받고 있다.

이화여대 발달장애아동센터(CCDS)에서 언어치료사가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의 아동은 환자가 아니다.
이화여대 발달장애아동센터(CCDS)에서 언어치료사가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의 아동은 환자가 아니다.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는 뇌병변, 지적, 자폐성, 청각, 언어, 시각 등 6개 유형의 장애를 가진 만 18세 미만 장애아동의 재활치료를 위한 제도다. 2009년 초부터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현장 동사무소에서는 아직도 구체적인 대상자 선정기준을 몰라 부모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씨는 “장애인 복지카드와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를 받고 나면 동사무소에서 안내책자를 주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은 전부 스스로 정보를 찾아야 했다”며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를 데리고 필요한 절차를 알아보고 서류를 준비하는 것까지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치료지원 비용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자폐성 장애 같은 경우 빠른 진단과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보니 다섯 살 민정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무서워서 한 번도 계산해본 적 없다’는 김선진씨를 설득해 들어본 치료비용은 한 달에 대략 250여만원. 유치원 격인 ‘발달학교’와 ‘감각통합수업’, 개별수업인 언어나 놀이, 음악치료 비용을 합친 것이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드는 정신과 병원비와 각종 검사비는 제외했다.

김씨와 남편의 수입은 온전히 딸의 치료에 들어간다. 생활이 제대로 안 되고 빚이 생겨도 아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김씨는 “자폐성 장애는 어느 시기를 놓치면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애 등록을 한 아동의 치료를 지원하는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와는 달리 ‘지역사회 서비스바우처’는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치료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은정(가명·6)이 역시 이 바우처를 통해 서대문구의 한 발달장애아동센터에서 사회성 치료를 받고 있다. 은정이의 엄마 박경선(가명·44)씨는 “아이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아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살 때부터 언어치료와 음악치료 등을 받아온 은정이는 지역사회 서비스바우처를 통해 현재 1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가 한 달에 22만원을 기준으로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것과 달리 지역사회 서비스바우처는 차등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치료수업을 들을 때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20% 이상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박씨 역시 “바우처가 생겨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는 막대한 재활치료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은정이의 한 달 치료 비용은 교통비, 약값 등을 제외하고 순수 치료비만 50여만원이 든다. 그나마 아이의 상태가 호전돼 이 정도다. 몇 년 전에는 매달 100여만원이 들었다.

장애 아동의 치료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 건 치료 수업의 기본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40분으로 구성된 언어치료는 한번 수업을 듣는 데 5만원 선, 음악과 놀이치료는 6만원 선이다. 아이의 장애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부모는 최대한 많은 치료수업에 아이들을 보낸다. ‘어릴 때 치료를 해야 효과가 크다’는 이유도 있다.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나아졌다. 작년까지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치료지원서비스를 동시에 받을 수 없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치료지원 서비스’는 장애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특수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아동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올해 2월부터는 동일한 재활치료분야가 아닐 경우 복지부와 교과부의 서비스를 모두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복지부 바우처로 언어치료를 받고, 교과부 치료지원서비스로 미술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자립기반과 정수천 사무관은 “보통 장애아동들이 2~3가지 치료 수업을 듣는 현실을 고려해 실질적인 도움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원이 조금 더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대발달장애아동센터 김선경(46) 부소장은 “지원이 전무했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면서도 “소득 수준으로만 바우처 지원금과 자부담을 결정하기보다는 아동의 장애 정도나 연령 등 보다 다양한 기준으로 지원하며 대상자를 늘리는 것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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