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토)

“휠체어 그네는 놀이기구가 아니다” 7년째 표류하는 ‘장애아동 놀 권리’

김주현(가명·9) 양은 야외 놀이터에서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동네 놀이터가 폐쇄하기 전부터 그랬다. 장애로 인해 하반신에 힘을 줘야 하는 시소나 그네 등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타기 어렵다. 몇 년 전만해도 부모님이 미끄럼틀 위에 주현양을 올려주면 언니가 뒤에서 감싸 안고 내려오곤 했다. 이제는 키도 크고, 체중도 늘어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아동에게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도됐던 무장애 놀이터도 확산이 주춤하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설치된 휠체어 전용그네. /서지윤 청년기자

도입 7년째, 어린이놀이기구 인정 못 받은 휠체어 그네

모든 어린이가 장애와 관계없이 놀 권리를 누리도록 한 최초의 통합놀이터 ‘꿈틀꿈틀 놀이터’가 조성된 지 지 5년이 지났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이른바 ‘무장애통합 놀이기구’를 놀이터에 설치할 규정이 없다.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제2조에 따르면, 어린이 놀이기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상 안전인증대상 어린이제품으로 정하고 있다.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 제17조에 따라 안전인증을 받고,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장소에 행정안전부 고시인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에 적합하게 설치한 뒤 설치검사를 받아야 한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탈 수 있게 한 휠체어 그네는 안전인증대상 어린이제품이 아니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에도 휠체어 그네 설치와 관련한 내용이 없어 설치검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어린이 놀이기구가 아니라 해서 어린이 놀이시설에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학교와 시설에 기증한 휠체어 그네는 안전인증 문제로 철거됐다가 안전인증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고 재설치된 바 있다. 문제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도 지난 2018년 휠체어 전용 그네가 들어섰지만 관리·감독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김중겸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주무관은 “휠체어 그네는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탈 수 있는 기구지만 안전인증대상 어린이제품이 아니고, 상위법에 관련 내용이 마땅히 마련돼 있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정기시설검사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안전기준 제정 나선 정부…전문가들 “실효성 우려”

정부 차원에서는 안전기준 마련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1월 “휠체어 그네와 같은 장애 아동용 놀이기구 안전기준을 제정하는 등 코로나 시대에 더 소외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안전관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용민 국가기술표준원 생활어린이제품안전과장은 “현재는 연구용역 단계로 안전기준이 마련되기까지는 통상 1~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산업부가 제정한 안전기준을 바탕으로 행정안전부장관이 고시하는 시설기준과 기술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종섭 행정안전부 안전개선과 사무관은 “산업부가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대로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을 개정해 통합적 가치를 담은 어린이 놀이기구가 무리 없이 설치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안전기준 마련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15년 넘게 어린이 놀이기구 설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어린이 놀이기구는 공산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맞춤형 제작을 해야 한다”며 “참고할 만한 자료도 적어 디자인·설계·기획에 투자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지지도 크지 않고 실질적인 지원도 없다”고 했다. 이어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 큰 상황에서 안전기준을 제정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업체가 모든 아동의 접근을 고려한 놀이기구를 제작하게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장애아동 놀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무장애통합 놀이기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실제 놀이터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면서 “해당 놀이기구를 제작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보다 근본적으로는 더 많은 어린이 놀이터를 통합놀이터로 만들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하다”며 “행정안전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만 어린이 놀이기구로 보고, 설치검사를 하는 규정을 바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서지윤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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