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후원자 ‘취향 저격’ 이벤트 봇물… NGO가 달라진 이유는?

달라진 ‘후원자의 밤’ 트렌드
연말 후원자 행사 줄고, 상시 맞춤형 모임 늘어
몸짱 소방관 달력 등 후원자가 직접 모금 이벤트 기획까지
신규 후원자 발굴·모금 위한 대규모 후원의 밤 지속하기도

“1994년 르완다에선 100일 동안 80만명이 목숨을 잃는 대학살이 발생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르완다 아이들이 행복한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장충동 하늘극장에서 열린 ‘스토리 콘서트’ 현장. 이는 월드비전이 후원자 및 일반인 대상으로‘꿈꾸는 아이들 지원사업’을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설명하는 이색 행사다. /월드비전 제공
지난 10월 24일, 서울 장충동 하늘극장에서 열린 ‘스토리 콘서트’ 현장. 이는 월드비전이 후원자 및 일반인 대상으로‘꿈꾸는 아이들 지원사업’을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설명하는 이색 행사다. /월드비전 제공

지난 19일 저녁 7시, 조지 지타우 르완다 월드비전 회장의 이야기를 들은 후원자 100여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사무국에 모인 후원자들은 자신이 돕고 있는 르완다 아이들과 마을의 변화에 대해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월드비전은 2008년부터 진행해온 연말 후원의 밤 행사를 2012년을 기점으로 전격 중단했다. 대신 월드비전 직원들과 후원자들이 만나 궁금증을 해소하는 ‘오픈하우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사업 성과보고회를 토크 콘서트 형태로 바꾼 ‘스토리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을 수시로 열고 있다. 참여 대상도 후원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다. 김수희 월드비전 홍보팀 과장은 “후원자가 아니어도 관련 이슈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참여의 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월드비전뿐만 아니다. NGO들의 후원의 밤 트렌드가 달라졌다. 연말에 후원자들을 대규모로 초청하는 일회성 행사 대신, 후원자들의 니즈에 맞춘 소규모 행사를 수시로 여는 곳이 늘고 있다. 컴패션은 2009년까지 진행했던 후원의 밤을 중단하고 2011년부터 1000여명이 참여하는 후원자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김윤아 컴패션 홍보팀 대리는 “컴패션을 후원하는 크리스천이 한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단체의 정체성과 비전을 다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면서 “후원자로 구성된 컴패션 밴드의 콘서트처럼 후원자 참여형 행사가 자주 열리는 것도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3년을 기점으로 후원의 밤을 중단했고, 아동 인권영화제, 국가별 아동 결연자 모임 등을 통해 후원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중이다.

◇연말 후원의 밤 지고, 상시 후원자 맞춤형 행사 뜬다

몸짱소방관 달력 모델 3인방. /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
몸짱소방관 달력 모델 3인방. /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

후원의 밤 대신, 상시 후원자 맞춤형 행사를 하는 NGO도 늘고 있다. 지난여름 밀알복지재단 법인사무처에선 후원자 20여명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제가 기부한 금액의 몇 퍼센트가 행정비용으로 쓰이나요?” “후원금은 어떻게 관리되나요?” 밀알복지재단 회계 담당자는 예산 수립부터 사업비 집행 후 평가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꼼꼼하게 짚어줬다. 올해만 벌써 5번째 시간. 후원자들은 9월엔 모금팀, 10월엔 회원서비스팀 담당자들과 만났다. 밀알복지재단은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후원자가 원하는 모임·행사를 수시로 개최한다. 지난해엔 재단의 회계·재정 투명성을 궁금해하는 설문 답변이 많아, 아예 회원 모니터링단 ‘어울림’을 꾸렸다. 김미란 밀알복지재단 홍보 담당자는 “올해는 다른 기부자들과 문화공연을 보고 싶다는 설문 답변이 많아, 후원자 100명과 함께하는 연극 공연 모임을 개최했다”면서 “연말 후원의 밤을 대규모로 여는 대신 후원자가 원하는 모임을 수시로 열다 보니, 만족도와 참여율 모두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플랜코리아는 후원자 특성에 맞춘 이색 이벤트를 상시 진행한다. 특히 ‘스탬플랜’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후원 아동에게 보내는 에코백 만들기, 편지 쓰기, 팔찌 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완료할 때마다 주어지는 스탬프 개수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제공된다. 지난해엔 싱글 남녀 후원자들을 위한 송년회 ‘더짝’을 열어, 참가비 및 애장품 경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김혜현 플랜코리아 홍보팀 대리는 “더짝에서 만난 후원자 남녀가 1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면서 “후원자 니즈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그에 맞춰 후원자 서비스도 다양한 모임으로 자연스레 변화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후원자가 펀드레이저로…후원의 밤 능가한다

비영리단체가 주도적으로 후원의 밤을 개최하는 대신, 후원자들이 펀드레이저(모금가)를 자처해 이벤트를 기획하고 직접 기부금을 전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화제가 된 ‘몸짱 소방관 달력’이다. 4년 전부터 몸짱 소방관 선발대회를 진행해오던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화상 환자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몸짱 소방관 달력 2500부를 제작하고, 그 수익금을 한림화상재단에 전달했다. 반응이 뜨겁자 올해는 한림화상재단과 소방재난본부가 함께 1월부터 머리를 맞대고 공동 기획에 나섰다. 달력 제작 부수를 1만5000부로 늘리고, GS샵과 파트너십을 맺어 달력의 유통 채널도 확대한 것. 하루 만에 5000부가 팔릴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해당 달력은 GS샵을 통해 12월 6일까지 판매된다). 정미옥 한림화상재단 모금개발팀 담당자는 “달력 판매 문의는 물론, 재단에 대한 정기 후원 문의가 계속 늘고 있다”면서 “그동안 재단을 홍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소방관분들의 참신한 기획과 나눔 덕분에 한림화상재단의 역할이 많이 알려져 감사하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비영리단체 ‘푸른아시아’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마다 ‘카페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는 푸른아시아를 후원하는 김이곤 극동아트TV 총괄음악감독이 직접 기획한 후원자 행사다. 사막화, 황사 등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슈를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나온 제안이다. 1부는 기후변화 이슈를 알리는 ‘그린토크’, 2부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구성된다. 벌써 4년간 58번째 열렸다.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은 “푸른아시아가 몽골 사막화 지역에서 조림사업을 하는 단체이다 보니 국내 인지도가 떨어져 고민이 많았는데, 후원자분들이 직접 기획한 만큼 참여도나 소통할 기회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빅이슈는 오는 12월 1일부터 한 달간, 문화예술 전시 프로젝트 ‘빅100 패밀리’ 행사를 개최한다. ‘갤러리 박영’이 먼저 제안해, 예술인 100명의 재능 기부로 이뤄지는 것.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은 “NGO 규모가 작을수록, 대규모 후원자를 위한 공간 대여·참여자 섭외 등이 어려워 후원의 밤을 기획할 엄두를 못 낸다”면서 “이러한 후원자들의 적극적인 기획 및 참여가 단체의 나눔 활동에 큰 힘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후원의 밤을 지속하는 단체들도 있다. 한 해 동안 단체를 도운 후원자, 기업 파트너,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만남의 장(場)이 되기 때문. 신재은 해비타트 홍보팀 과장은 “6개월 전부터 지역 내 주요 인사를 초청하면서 연말 파티를 준비해간다”면서 “후원의 밤에 오신 분들의 평균 20%가 신규 후원자가 되고, 기존 후원자분들 중에도 고액 기부로 증액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후원의 밤이 또 다른 모금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는 12월 3일 서울에서 1000명의 후원자와 함께 ‘좋은이웃 콘서트’를 개최하는 굿네이버스는 참가비 8000원(1인)을 전액 네팔 지진 장기재건을 위한 사업비로 기부한다.

정유진·김경하·권보람·강미애·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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