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희망 허브] 버려진 목욕탕의 변신… 쪽방촌 분위기도 활짝 피었습니다

[민관 협력한 ICT 복합문화공간…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에 가다]

– 노숙인들 술마시고 잠자던 공간
북카페·영화 감상실 등으로 변신… 1년내내 문화시설 즐기도록 도와
센터 내 바리스타·운영요원 등 동네주민 위한 일자리까지 창출

– 주거환경 개선에도 앞장서
자율방범대, 밤마다 폭력·음주 단속
경찰출동 17건… 작년비해 66% 감소

“지난번엔 어플을 사용해 사진을 하나로 모으는 콜라주를 했었죠?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할로윈 이미지를 다운받고, 카톡에 공유하고 다시 콜라주 만드는 것까지 할게요.”

이영아 KT IT서포터즈의 말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주민 다섯 명은 능숙하게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 어플을 실행시켰다.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3장씩 고른 후 채팅창에 공유하라”는 서포터즈의 말에 ‘카톡 카톡 카톡’ 알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선생님 이건 어떻게 하나요?”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서로 앞다퉈 질문,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어렵지 않으냐는 물음에 정은수(가명·73) 할아버지는 “아유 어렵지” 손사래를 치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정 할아버지는 IT 교육 이후 카세트가 아닌 어플로 음악 듣는 법을 배웠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공원에서 음악 듣는 게 낙”이라고 했다. 황민경(가명·61)씨도 IT 교육 이후 부쩍 웃음이 늘었다. 황씨는 “어플로 사진 편집해서 보내주는데 친구들이 정말 좋아한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스마트폰 활용 교육이 이뤄진 이곳은 서울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 다목적 프로그램실이다. 잘 정돈된 테라스, 통유리로 꾸민 깔끔한 외관까지…. 불과 지난해까지 흉가처럼 방치된 폐목욕탕 건물임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전명재 서울역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은 “쪽방촌 주민들도 이쪽을 다니는 걸 기피할 정도였다”며 “주로 노숙인분들이 술 마시거나 주무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쪽방촌 입구에 버려진 폐목욕탕은 지난해 6월 KT의 도움으로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버려진 폐목욕탕,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선보여

동자동은 주민 1000여명이 1평도 채 안 되는 시설에서 살아가는 서울에서 가장 큰 쪽방촌이다. KT가 동자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13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IT 교육을 진행하면서다. KT 직원 봉사단인 IT 서포터즈를 파견해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진행하고, 6월 말에는 서울역쪽방상담소 건물 4층에 업무용 PC를 기증해 컴퓨터 교육장을 열었다. 하지만 주민들과 가까워지면서 이들의 불편함이 눈에 띄었다.

“수업을 듣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서 못 오겠다거나, 집에 고장난 기기를 고쳐달라는 문의가 많았어요. 댁에 가봤더니 정말 열악하더군요. 허름하고 지저분한 공동화장실에 변변한 세면도구와 세탁 공간도 없었죠. IT 교육 외에 주민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김재윤 KT 수도권 IT 서포터즈팀 차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곧바로 설문 조사가 이어졌다. 주민 50여명을 대상으로 IT 교육 외에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90% 이상 주민이 샤워실, 화장실, 세탁실 등 편의시설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주민들의 욕구를 확인한 KT는 서울시,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관·NGO가 협동하는 나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KT가 서울역쪽방상담소에 위탁해 건물 구축 비용 5억5000만원, 기본 운영비 연 1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센터 내 바리스타 등으로 취업한 주민들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하고, 한국정보화진흥원은 공공 와이파이를 구축했다. 카페베네는 센터 내 카페 장비와 경영 지원을, 한림출판사는 지하 북카페에 도서 기증, 종근당은 기초 의약품을 지원하는 등 여러 기업도 팔을 걷어붙였다. 다양한 이가 힘을 모은 결과, 폐목욕탕 건물은 세탁실과 샤워실 등 주민 편의시설과 영화 감상실 등 문화공간까지 마련된 정보통신기술(ICT)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센터는 주민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됐다. 덥거나 추울 때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주민들끼리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2층 다목적 프로그램실에서는 IT 교육을 포함해 양말인형 만들기, 종이접기, 노래교실, 건강체조교실, 발효식초 만들기 등 15개 프로그램이 매일 시간대별로 진행된다. 센터 개소 이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문화강좌 1400명, IT 교육 400명 등 약 1800여명에 달한다.

◇취업, 수제 인형 판매 등 자활을 위한 발판 마련

김수희(가명·65)씨는 지난 6월부터 동자희망나눔센터 1층에 마련된 IT 카페 바리스타로 일한다. IT 카페는 하루 평균 이용자가 80명을 훌쩍 넘을 만큼 주변에서 인기 있는 명소다. 김씨는 “점심 무렵에 직장인들이 몰려오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했다. 실제 2014년 3분기와 2015년 1분기 카페 방문 고객과 매출액을 비교한 결과 방문 고객은 2900명에서 3700명으로 28% 증가했고, 매출액 역시 월평균 446만원에서 640만원으로 44% 늘었다.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전에는 꿈에도 상상 못 할 일이었다.

25년간 하던 사업이 기울면서 2009년 동자동에 자리를 튼 김씨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았었다. 김씨는 “일한다는 것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라며 “열심히 해서 몇 년 내 더 나은 환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현재 김씨를 포함해 동자동 주민 4명이 바리스타로 근무한다.

송치환(49)씨도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세탁실과 샤워실 등 편의시설 안내와 이용자 관리, 환경 미화가 그의 주 역할이다. 두 명이 짝을 지어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6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는데 현재 16명이 센터 운영요원으로 활동한다. 송씨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이용자 관리다. “세탁실과 샤워실 이용자가 남성은 하루 평균 100여명, 여성은 50여명이에요. 늘 대기 인원이 있죠. 서로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송씨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넘쳤다.

자타가 인정하는 ‘센터 마니아’ 정은형(가명·55)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센터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센터 내 우수 장학생으로 손꼽히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정씨가 센터에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해 말. 빠듯한 보조금으로 유기견 5마리를 돌보던 중 3마리를 분양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가족처럼 돌보던 애들인데 너무 마음이 허전한 거야. 둘러보다가 컴퓨터 수업이 있길래 참여했지.”

우연히 참여한 컴퓨터 수업은 흥미로웠다. 매일 수업이 끝난 후에도 30분씩 연습을 하고 내친김에 자격증까지 도전했다. 정씨는 현재 파워포인트, 한글, 엑셀 자격증을 보유한 동네 컴퓨터 전문가다. 주민들에게 센터 프로그램을 알리는 자체 홍보 대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씨는 “내성적이라 누구에게도 말을 잘 못 붙였는데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면서 주민들과 교류가 늘었다”며 “다른 주민들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프로그램 일정을 알려줬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양말인형 만들기’ 프로그램은 주민들의 열띤 참여와 관심 덕분에 따로 공방이 마련되기도 했다. 주민들이 만든 인형은 향후 센터 1층에 마련된 부스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정수현 서울역쪽방상담소장은 “센터가 생기고 나서 주민들의 생활 환경과 패턴이 확 달라졌다”며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변화의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고 했다.

◇삶의 의지를 되찾은 주민들의 동네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

동네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동네에 도움이 될 방안을 주민들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 중국에서 온 임영훈(가명·69) 할아버지는 센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년 동안 무료 중국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임 할아버지는 “센터에서 지식을 얻은 것처럼 내가 가진 것을 주민들에게 베풀고 싶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4월에는 쪽방촌 곳곳을 누비는 ‘새꿈희망 자율방범대’가 꾸려졌다. 동자동 주민으로 구성된 자율방범대원 30명이 5개조로 나눠 오후 2시와 저녁 8시 두 차례 지역을 순찰한다.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쪽방상담소에 상주하는 간호사나 119에 연계하거나, 도박·음주·폭력 단속관리가 주역할이다. 동자동 주민반장을 겸하는 김정길(70) 새꿈희망 자율방범대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지금은 공원에서 노상방뇨하거나 술 마시고 싸우는 행위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2015년 1월부터 4월까지 경찰 출동 횟수는 17건, 도박은 1건, 폭행은 1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66%, 96%, 43% 감소했다. 새꿈희망 자율방범대는 지난 8월 서울지방경찰청이 선정한 ‘2015년 2분기 베스트 자율방범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KT는 지난 9월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KT그룹사 임직원 5만7000여명으로 구성된 KT그룹 임직원 봉사단 출범식을 가졌다. 쪽방촌 주민들의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KT그룹이 개발한 ‘비콘 안부 확인 서비스’가 주민들의 주거 지역에 적용됐고, 자율방범대원들에게는 KT파워텔의 LTE무전기 ‘라져1’ 단말기 10대가 제공됐다. 봉사단원들도 집집이 도배하고 장판을 교체하는 등 주거 환경 개선에도 손을 걷어붙였다.

이선주 KT CSV센터장은 “앞으로 동자희망나눔센터를 KT 사회공헌의 베이스캠프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식료품이나 생필품 등의 물질적 지원을 넘어 주민들이 IT를 통해 일자리를 찾고 자활을 꿈꿀 수 있도록 문화·교육 혜택 확대와 환경 개선 등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다목적 프로그램실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모습. 총 15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KT 제공
다목적 프로그램실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모습. 총 15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KT 제공
‘양말인형 만들기’ 프로그램 모습. 주민들이 만든 양말인형은 향후 센터 1층에 마련된 부스에서 진열, 판매될 예정이다. /KT 제공
‘양말인형 만들기’ 프로그램 모습. 주민들이 만든 양말인형은 향후 센터 1층에 마련된 부스에서 진열, 판매될 예정이다. /KT 제공
KT그룹이 쪽방촌 주민들의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비콘 안부 확인 서비스’. /KT 제공
KT그룹이 쪽방촌 주민들의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비콘 안부 확인 서비스’. /KT 제공
센터 개소 이후 추석 맞이 송편 만들기, 김장 김치 나누기, 화단 만들기 행사 등 동자동 주민과 KT그룹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KT 제공
센터 개소 이후 추석 맞이 송편 만들기, 김장 김치 나누기, 화단 만들기 행사 등 동자동 주민과 KT그룹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KT 제공
KT IT 서포터즈가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KT 제공
KT IT 서포터즈가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KT 제공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 1층 나눔층에는 IT 카페와 화장실,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특히 샤워실은 주민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하루 평균 남성은 100여명, 여성은 50여명이 이용한다.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 1층 나눔층에는 IT 카페와 화장실,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특히 샤워실은 주민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하루 평균 남성은 100여명, 여성은 50여명이 이용한다.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인 ‘희망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프로그램실과 창작공간, 세탁실과 화장실이 마련됐다. 다목적프로그램실에는 주민들을 위한 운동 기구도 준비됐다.
용산구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인 ‘희망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프로그램실과 창작공간, 세탁실과 화장실이 마련됐다. 다목적프로그램실에는 주민들을 위한 운동 기구도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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