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더 나은 미래 논단] 정부의 사회적경제 지원정책, 이대로 ‘제2의 휴면예금’ 될까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갈라진 사회’

우리 사회의 명함이다. 빈부, 교육, 지역, 세대, 사고와 이념….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분열과 갈등이 보이지 않는 곳이 드물다. 나눔(Sharing)이 아닌 나눔(Dividing)에 대한 많은 시도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소통과 협업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일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제 식민 통치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제성장을 이룩한 이면에는 정부의 계획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의 힘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압축 성장을 가능하게 한 대기업들의 역할도 컸다. 복지와 사회문제 해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는 사회적 경제 영역의 발전을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제정, 2009년 휴면예금을 바탕으로 출범한 미소금융의 출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과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 출범, 최근의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 하기 위한 노력. 이와 같은 정부의 집중적인 노력은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에게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아시아 국가들에 부러움과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성과를 자국 정책에 반영하고자 ‘Look East Policy’의 대상으로 한국을 지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해외에 소개하면서 성장 이면에 숨겨진 ‘부끄러운 진실’에 많은 아쉬움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2007년 제정된 휴면예금법이다. 일자리를 통해서 저소득층의 자활을 지원하는데 잠자고 있는 예금을 활용하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일에 정부가 운영 중심에 서서 미소금융을 설립하고 대기업과 은행 등의 참여를 끌어들임으로써, 2000년대 초에 민간 중심으로 시작하여 확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동안 미소금융은 그 규모와 정부의 홍보에 비하여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했고, 정부가 바뀌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직 구조로 전환하자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런 가운데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거의 고사하고 있다. 정부 위주의 정책 추진이 가져오는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5년에 휴면예금에 대한 법제화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빅 소사이어티 캐피털(Big Society Capital)을 설립해 사회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에 투·융자를 하는 영국의 사례와 너무 비교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휴면예금법 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과 영국의 대비되는 사례를 비교하면서 휴면예금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투자기금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는 정부와 시장의 한계와 실패로 야기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문제를 ‘주는 복지’가 아닌 선순환되는 투·융자를 통해서 해결하면서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이다.

사회문제는 증가하고 있고 이를 해결할 재정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꼭 맞는 개념이다. 이 같은 방식에는 사회 현상과 문제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민간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정부가 직접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과 정부의 소통과 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공급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너무 강해 보인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 경제 지원정책이 ‘제2의 휴면예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계은행은 이러한 사업을 진행할 때, 정부가 직접 재원을 집행하거나 관여하는 것보다는 민간이 이러한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인 생태계를 마련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시민 사회는 많은 발전을 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시민 사회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민간의 역량을 강화하고 인프라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민간단체를 지원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정책을 함께 수행하는 파트너로서의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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