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내일은 쉬는 날, 같이 봉사활동 갈래?

일상의 품으로 들어온 자원봉사

“화장실 공용이야? 안전 바는 있어? 문턱은 없니?”

김은지(23·사회복지사) ‘특별한 지도 그리기’ 서포터의 말에 아이 8명이 후다닥 화장실로 흩어졌다. 서울 영등포역에 위치한 장애인용 화장실 내부는 안에서 휠체어를 돌리기 어려울 만큼 좁고 답답했다. “여기 너무 좁다.” “휠체어가 들어가기 불편하겠다.” “아까는 문을 잡아당겨야 했는데 여기는 자동문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1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예. 2 카페에서 헌 옷을 이용해 인형 을 만드는 ‘서초V타임 포근해U ’ 봉사활동 현장. 3 영원중학교 학생들의 ‘특별한 지도그리기’ 봉사활동 현장. 4 밀알복지재단 ‘특별한 지도그리기 서포터즈’ 들의 활동 모습. /(사)한국자원봉사문화·서초구자원봉사센터·밀알복지재단 제공
1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예. 2 카페에서 헌 옷을 이용해 인형 을 만드는 ‘서초V타임 포근해U ’ 봉사활동 현장. 3 영원중학교 학생들의 ‘특별한 지도그리기’ 봉사활동 현장. 4 밀알복지재단 ‘특별한 지도그리기 서포터즈’ 들의 활동 모습. /(사)한국자원봉사문화·서초구자원봉사센터·밀알복지재단 제공

화장실을 둘러본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이어 김은지 서포터가 소감을 물었다.

“이 근처에 장애인 친구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네요. 익숙하기만 한 우리 동네가 장애인 친구들에게는 엄청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신여진(15·영원중 2년)양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하성훈(15·영원중 2년)군도 “내가 땀 한 방울 생길 때 장애인분들은 열 방울이 생길 것 같다”며 거들었다.

지난달 15일,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열린 밀알복지재단과 영원중학교(영등포구 소재)가 함께하는 ‘특별한 지도 그리기’ 활동 현장이다. 지하철역 주변과 역사 안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카페와 식당,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위치를 조사하고 지도로 만드는 작업이다. 밀알복지재단은 2013년부터 특별한 지도 그리기 서포터즈와 함께 22개의 ‘장애인을 위한 서울 지하철역 지도’를 완성해오고 있는데, 올해 7월부터 영원중학교와 협약을 맺고 학교 주말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다. 김태경(36) 학교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이면서,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활동을 원했다”며 협력을 제안한 계기를 밝혔다.

조희정(15)양은 “나와 친구들이 하는 활동이 장애인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뿌듯하다”고 했다. 2년째 이 활동을 이어온 김은지 서포터는 “특별한 지도 그리기는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된다”며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관찰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도는 책자로 제작돼 내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발간될 예정이다.

◇ 자원봉사가 재미 없고 힘들기만 하다고?…이젠 옛말

행정자치부와 ㈔한국자원봉사문화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원봉사 참여율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21~22%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2014년 기준). 자원봉사 만족도도 떨어졌다. ‘만족스러웠다’는 응답은 43.8%(2011년)에서 31.6%(2014년)으로 줄었고,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3.7%에서 8%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자원봉사 활동 내용을 시간으로 따져 실적으로 관리하면서 스펙 도구로 빛바랬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한다. 실제, 일상에서 이뤄지는 비공식적 자원봉사는 OECD 국가 34개국 중 24위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자원봉사 문화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상에서 자신의 흥미와 생활 패턴을 고려해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부터 서초구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하는 ‘서초V타임’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드나드는 공간인 카페, 휴식 장소 등을 섭외해 특정 시간에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영수(44) 서초구 자원봉사센터장은 “외국 서점에 방문했다가 특정 시간이 되자 자원봉사자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모습에 놀랐다”며 서초V타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현재 카페 2곳에서 조각 천이나 헌 옷을 가지고 인형을 만드는 ‘포근해U’, 아기 속싸개를 만드는 ‘Mom맘이야’, ‘조물락비누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지난 8월 21일에는 방배동에 위치한 ‘커피 푸로’에서 캄보디아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씨엠립 마을로 보낼 비누 만들기가 진행됐다.

“꼭 찰흙 같죠? 마음대로 모양을 낼 수 있어요. 사용하기 편하도록 두툼하게 만들어주세요. 예쁘면 더 좋겠죠?” 능숙하게 프로그램 내용을 소개하는 김형균(20·삼육대) 프로젝트 리더(서초구자원봉사센터에 소속된 전문 자원봉사자)의 말에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의 손끝이 바빴다. 김혜란(25·신대방)씨는 “카페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점이 신기해서 왔다”며 “봉사활동이 보통 연탄 나르기처럼 몸을 쓰고 힘든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부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만든 비누는 해외 의료활동을 지원하는 ‘The나눔플러스’를 통해 전달될 예정이다.

서초V타임은 올해 10개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김보연(32) 서초구자원봉사센터 홍보 담당자는 “서초V타임의 핵심은 자원봉사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인식시키는 데 있다”며 “카페뿐 아니라 기업 로비, 회의실, 강당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 내 손 안의 자원봉사, 일상에 스며들다.

‘마이크로 자원봉사(Micro Volunteer)’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온라인 기부 플랫폼을 이용한 기부나 SNS를 활용한 나눔 정보 공유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 모두를 포함한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도 올해 4월 시간 관리에서 탈피한 온라인 자원봉사 플랫폼 ‘V세상'(https://volunteer.seoul.go.kr)을 선보였다. 시민 누구나 일상 속 작은 실천을 위한 봉사활동을 제안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참여할 수 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정희선 사무총장은 “해외에서 핸즈온이라는 이름으로 자원봉사가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것에 비하면 더디지만 분명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라고 했다.

㈔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진행하는 ‘한국자원봉사영상제 공모전’도 자원봉사를 일상에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자원봉사가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9월 14일부터 10월 11일까지 짐 들어주기, 자리 양보하기 등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선행 활동을 주제로 5분 내외 영상을 모집한다. 발굴된 영상은 청소년을 위한 봉사 교육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 1회 때 200건이 넘는 영상이 모였고, 이번 2회 공모전을 알리는 홍보 페이지에도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이 뜨겁다. 정희선 사무총장은 “자원봉사는 특별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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