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흩어져 있던 착한 뜻이 우리 마을로 모였어요”

삼가분교 창고, 도서관으로 재탄생… 1인방송 ‘힐디오’가 크라우드 펀딩 개설
140여명 후원 참여해 도서관 개관… 군수 책 기증, 학생 독서 동아리도 결성

“여러분 안녕? 4개월 만에 삼가분교 가는 길 방송입니다.”

속리산 중턱,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를 운전하는 박상환(26)씨의 손길이 익숙했다. ‘우리가 보내준 책은 잘 읽고 있을까?’ ‘도서관 사진 많이 찍어 와.’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차창 밖 풍경을 보는 시청자들의 채팅도 분주해졌다.

“오늘 삼가분교 도서관에 가면서 꼭 방송을 켜겠다고 시청자들과 약속했거든요.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직접 후원에 참여한 만큼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에서 1인 방송 ‘힐링라디오(힐디오)’의 방송자키(BJ)로 활동 중인 박씨는 지난해 가을, 시청자들과 함께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충북 보은군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에 ‘오리날다 달빛도서관’을 세운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대요. 언니처럼 저도 ‘삼가분교’ 졸업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뻐요!” 도서관이 생겨 가장 좋은 점을 묻자 6학년 황현경(12) 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진은 오리날다 도서관 내부,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대요. 언니처럼 저도 ‘삼가분교’ 졸업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뻐요!” 도서관이 생겨 가장 좋은 점을 묻자 6학년 황현경(12) 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진은 오리날다 도서관 내부,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대요. 언니처럼 저도 ‘삼가분교’ 졸업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뻐요!” 도서관이 생겨 가장 좋은 점을 묻자 6학년 황현경(12) 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가분교 아이들의 모습.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대요. 언니처럼 저도 ‘삼가분교’ 졸업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뻐요!” 도서관이 생겨 가장 좋은 점을 묻자 6학년 황현경(12) 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가분교 아이들의 모습.

“상환씨 오랜만이야, 잘 왔어!”

차가 도착하자, 유중덕(56) 속리산산촌유학촌 사무국장이 학교 운동장에서 환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삼가리 동네 수퍼 평상 위 막걸리 한 잔에서 시작됐다. 평소 책을 기부하고 싶었던 박씨가 대상지를 찾던 중 우연히 폐교 위기에 몰린 삼가분교의 사정을 알게 됐고, 2012년부터 마을 공동체를 조직해 삼가분교 살리기에 앞장섰던 유 국장과 의기투합한 것. 유 국장이 교내 비품 창고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박씨가 창고 리모델링과 책 기부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6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삼가분교지만 매년 폐교 위기였습니다. 2013년에는 아예 교육청에서 실사를 나와 공청회를 열었죠.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수정초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눈·비라도 오는 날이면 사고 위험이 큽니다. 그러던 차에 힐디오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개설된 겁니다.”(유 국장)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소개된 삼가마을 프로젝트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힐디오 방송 시청자들도 후원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A4 용지에 삼가분교 도서관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직접 반 친구들에게 알린 고등학생 시청자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괴산의 원목공방 ‘라라앤토토’가 책장을, 인테리어 업체 ‘디자인 DN’이 바닥재와 테이블 등 1000만원 상당의 실내 디자인을 후원했다. 비영리단체 ‘네오맨’이 칙칙하던 창고 외벽을 화사하게 칠했다. 펀딩 소식을 들은 LG전자 한국영업본부는 임직원들이 모은 헌책 500여권을 기부한 데 이어 도서관 개관식에 음향장비와 영화 상영을 위한 빔 프로젝터를 지원했다.

마을 사람들도 한데 뭉쳤다. 삼가분교동문회와 마을 주민이 힘을 모아 창고 물건을 옮겨놓을 컨테이너 박스를 구매하고, 리모델링 공사에 직접 참여했다. 외지에서 온 고마운 일꾼들을 위해 칼국수 점심도 대접했다. 윤대영(63) 삼가리 이장은 “그때처럼 마을이 복작복작 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2014년 8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 130여명의 후원자가 참여했다. 목표로 잡았던 후원금 200만원은 320만원으로 마무리됐다. 그해 10월 개관한 도서관 현판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원자와 단체 140여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도서관 개관 이후 삼가분교 폐교 이야기는 눈 녹듯 사라졌다. 보은군수가 직접 삼가분교를 찾아 책 150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4~5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변양길(31) 선생님은 “최근 아이들이 책을 읽고 감상을 공유하는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다”며 “달빛 도서관에서는 마을 분들도 마음껏 책을 빌려보실 수 있고, 13일에는 이곳에서 학부모님과 주민들을 모시고 가족콘서트도 열 예정”이라고 했다.

삼가마을 주민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휴경지에 메밀 농사를 함께 짓고 메밀을 이용한 수익 사업과 조경 사업을 병행하는 마을기업도 준비 중이다. 4개월 만의 삼가분교, 그간 쌓여 있던 새로운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잔뜩 전한 박씨는 “우리가 붙인 작은 불씨가 이렇게 커진 것을 보니 뿌듯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처음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결과 이렇게 예쁜 도서관이 세워졌고요. 오늘 방문으로 숙제도 생겼네요. 바닥 매트, 낮은 탁상 등 필요한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프로젝트가 끝난 뒤 후원자 분들이 보내주신 책도 전해 드려야 하니 조만간 트럭에 한 짐 싣고 다시 와야죠.”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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