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시장성 낮은 제품, 참여·기부와 만나 혁신 상품으로

크라우드 펀딩 톱 3 기업 성공 스토리

“이 할머니, 휴가 보내 드립시다!”

2012년 6월,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indiegogo.com)’에 영상 하나가 떴다. 뉴욕의 한 중학교 스쿨버스 안내원 캐런 클라인(Karen Klein) 할머니가 버스 안 학생들에게 조롱당하는 모습이었다. 우연히 이 영상을 본 맥스 시도로프(Max Sidorov)씨는 할머니의 휴가비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반향은 놀라웠다. 7일 만에 84개국에서 3만여 명이 후원에 참여, 70만2454달러(약 7억원)를 모았다. 캐런 클라인씨는 이 돈으로 왕따와 따돌림을 방지하는 ‘안티불링파운데이션(Anti bullying foundation)’을 세우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힘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벤처기업 등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방식이다. 2008년 시작된 ‘인디고고’를 비롯, 킥스타터 등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크라우드 펀딩은 국내에도 점차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기부와 투자, 참여가 결합된 펀딩 방식으로 소액기부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세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5주년을 맞아,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와 함께 지난 3년간 진행한 펀딩 300건을 분석해 이 중 모금액 순위 톱 3위 기업(출판·종교 제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3년 동안 와디즈의 펀딩 플랫폼에 등장했던 주인공들. 300건의 프로젝트를 유형별로 분류해 본 결과, 소외계층 지원분야가 22.2%로 가장 높았고, 교육(13.5%), 국제구호(8%), 장애인(5.5%), 환경(5.1%) 등이 뒤를 이었다. 모금 주체가 대부분 스타트업·소셜벤처·청년혁신가임을 고려할 때, 최근 젊은 층이 주목하는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와디즈
지난 3년 동안 와디즈의 펀딩 플랫폼에 등장했던 주인공들. 300건의 프로젝트를 유형별로 분류해 본 결과, 소외계층 지원분야가 22.2%로 가장 높았고, 교육(13.5%), 국제구호(8%), 장애인(5.5%), 환경(5.1%) 등이 뒤를 이었다. 모금 주체가 대부분 스타트업·소셜벤처·청년혁신가임을 고려할 때, 최근 젊은 층이 주목하는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진제공 와디즈

 

◇1위, 바이맘의 실내 보온 텐트 프로젝트

3843만원 모금, 395명 참여, 2013년 11월 1일~27일(1차), 2014년 11월 18일~12월 19일(2차)

‘바이맘’은 겨울철 에너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난방 텐트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이 회사가 크라우드 펀딩과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가을, 전화 한 통이 발단이 됐다.

“충북 제천의 여고생들이었어요. 보통 겨울이 되면 인근 노인복지관에 연탄을 보냈는데, ‘올해는 실내용 방한 텐트를 선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모은 100만원으로 어르신들의 겨울나기를 돕겠다는 것이었죠.” 김민욱(37) 바이맘 대표의 회상이다.

김 대표는 곧바로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표액을 500만원으로 잡고, 펀딩에 참여하면 보상으로 바이맘 텐트 신상품을 지급했다. 모금액의 10%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크라우드 펀딩치고는 다소 높은 가격(룸텐트 네모형 8만3000원, 대형 14만3000원)이 책정됐지만, 대중의 참여는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율성(실내온도 10도 상승 효과), 감각적인 디자인, 여기에 ‘좋은 뜻’까지 더해지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침대에도 설치할 수 있나’ ‘캠핑 갈 때 딱이겠다’ ‘부모님께 선물하고 싶다’는 사연이 늘어갈수록 모금액도 쌓였다.

그전까지 바이맘은 소비자와 거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구청 등을 대상으로 하는 납품이 대부분이었다. 여고생들의 제안이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했다. 이 프로젝트로 한 달 만에 155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이를 통해 제천 지역 에너지 빈곤 가구 30여 곳에 바이맘의 방한 텐트가 전달됐다. 첫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도 후원 문의가 빗발쳤다. 이듬해 폭설 고립 위험 지역인 강릉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프로젝트가 이뤄졌던 배경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회사의 전환점이 됐다. ‘좋은 물건과 진심만 있다면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김 대표는 바이맘 홈페이지에 소비자가 직접 텐트를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설했다. 현재 홈페이지를 통한 구매만 연 7억~8억원에 달한다. 회사 규모는 무려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에만 고객 1000여 명이 A4 용지 한 장 가득 제품 리뷰를 보내줬습니다. ‘바이맘이 더 잘돼 많은 에너지 빈곤 가정을 도울 수 있길 바란다’면서요. 그 리뷰들의 가치를 어디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지들이죠(웃음).”

미상_그래픽_사회적경제_사회문제유형별프로젝트수_2015

◇2위, 리니어블의 스마트밴드 프로젝트

3334만원 모금, 2451명 참여, 2014년 12월 1일~2015년 2월 7일

“모두가 ‘안된다’며 손사래를 쳤어요. 그런데 펀딩이 채 끝나기도 전에 투자자들이 ‘함께하고 싶다’며 연락해오더군요.”

문석민(37) 리니어블 대표가 지난 몇 개월간의 극적인 성장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신생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서 전체 제품군 1일 최다 판매를 기록했던 회사.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미국·일본·중국·프랑스 등 전 세계 IT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주목받는 이 회사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시제품을 만들 돈조차 없어 ‘3D프린터’로 샘플을 출력했던 벤처기업이었다.

리니어블이 파고든 것은 미아 방지 문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눈 깜빡할 사이 아이가 사라져 발을 동동 굴러 본 경험이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문제다. ‘비콘(블루투스 기반의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을 적용한 실리콘 팔찌의 가격은 5000원. 이 팔찌를 찬 아이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부모의 휴대폰에 알람이 울린다. 팔찌와 가장 가까운 휴대폰의 위치를 읽어 부모의 휴대폰에 전송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처음 기획서를 들고 벤처 투자회사를 찾았을 때, 많은 이들이 “시장성이 낮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크라우드 펀딩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직원들이 힘을 합쳐 50만원으로 광고 영상을 만들고, 지난해 9월 해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선주문 판매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제품 제작에 필요한 최소 금액인 3만달러(약 3300만원)를 목표로 펀딩을 시작했다. 제품가인 5000원으로 모금에 참여하면, 제품과 함께 ‘미아 방지 세이프존’을 만드는 이벤트도 제공됐다. 결과는 대성공. 리니어블은 프로젝트 시작 일주일 만에 북미 최대의 IT 미디어 ‘테크크런치’에 소개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최종 펀딩은 4만달러를 넘겼다. 해외에서 이룬 성공은 국내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진행한 와디즈 펀딩에선 3300만원이 모였으며, 현재 아동복 전문 브랜드 아가방, 미래에셋생명 등과 업무 협약을 맺고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벤처캐피털을 설득해 자본을 마련하고, 오프라인 시장 유통만 생각했다면 지금의 리니어블은 없었을 겁니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문제 해결’이라고 했다. ‘미아 방지’라는 공통의 문제에 대해 리니어블이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이들에게 지지를 얻었다는 얘기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나의 아이템이 어떤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은 제품을 팔기 위해 진출하는 시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일 뿐이니까요.”

미상_그래픽_사회적경제_사회문제유형별참여자수_2015
미상_그래픽_사회적경제_사회문제유형별펀딩누적액_2015

와디즈_그래픽_사회적경제_지난3년간와디즈펀딩프로젝트모금순위_2015◇3위, 브레인이노베이터의 독도 보틀 프로젝트

2300만원 모금, 1718명 참여, 2014년 10월 23일~11월 22일

“며칠 밤을 샜는지 모르겠어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배송에 맞추기 위해 밤새 포장 작업을 해야 했죠. 대중의 힘이 정말 놀랍더라고요.”

한유미 브레인이노베이터 대표의 말이다. 2013년 9월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가구 디자인 업체였다. 가구에 스토리를 덧입힌 디자인을 하는 것이 콘셉트인데, 지난해 초 독도를 형상화한 ‘독도테이블’를 출시하면서 크라우드 펀딩과 인연을 맺었다.

“어릴 때부터 독도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았어요. 독도를 지키려면 많은 사람이 독도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독도테이블 출시를 계기로 ‘독도 알리기’를 고심하다가 크라우드 펀딩을 만나게 됐어요.”

지난해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프로젝트. 이를 위해 비싼 테이블 대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물병 ‘독도 보틀’을 따로 기획·제작했다(이 제품은 펀딩 후에는 따로 구매할 수 없는 한정판이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에겐 독도가 분쟁의 섬이 아니라, 희귀하고 소중한 생태계를 가진 아름다운 섬이라는 내용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작은 섬 91개로 이뤄진 독도를 알리고자 모금 최소 금액도 9100원으로 책정했다. 모금 수익 절반은 독도에 기부하기로 했다. 한 대표는 “500만원이 목표 금액이었는데, 솔직히 300만원만 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하던 펀딩은 열흘째 되던 날 반전이 일어났다. 펀딩 스토리에 감동한 한 네티즌이 유명한 온라인 카페에 콘텐츠를 퍼다 날랐고, 이는 다시 일파만파 퍼져갔다. “지인들이 난리가 났죠. ‘유명한 블로그·게시판에 도배가 됐다’고요. 그렇게 5일이 지나니 모금액이 1800만원으로 뛰어 있더라고요.”

단순히 물병만 판 게 아니다. “행사 같은 데 가서 제 소개를 하면 독도 얘기를 먼저 하더라고요. 펀딩에 참여한 후 학생들에게 독도 교육을 했다는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이제 저 혼자만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웃음)”

한유미 대표는 올해 1월 법인명을 ‘브레인’에서 ‘브레인이노베이터’로 바꾸고, ‘대중과 함께 재미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소셜 미션도 새로 세웠다. 최근에는 세계 창조가 59인의 영감을 모아 엮은 책 ‘물을 거슬러 노를 저어라’의 번역·출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역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다.

->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란? 군중을 의미하는‘크라우드(crowd)’와 자금모집을 뜻하는‘펀딩(funding)’의 합성어로,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벤처기업 등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를 참여시켜 투자를 받는 방식을 말한다.

최태욱 기자

권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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