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돕기만 하다 지친 직원에게 휴식을 주자”

비영리단체 리더가 뽑은 2015년 ‘우리의 화두’

대부분 수당 없는 야근·주말 업무
일에 대한 고민·교육 위한 시간 부족

후원자 소통 강화해 기부 끌어내야
다수 후원자들이 당장의 성과 기대
단체별 활동 알리는 창구 마련 필요

“소외된 이웃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직원들이 정작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한다. 별도의 수당 없이 야근·주말 근무가 계속되니, 열정을 갖고 일하던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난다.”(M단체 사무국장)

“비영리단체는 인건비 없이 일하는 곳이란 편견을 깨고,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대중들에게 꾸준한 나눔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리는 것이 숙제다.”(S단체 사무총장)

‘직원 역량 강화’와 ‘후원자 소통’. 국내 비영리 리더들이 꼽은 2015년 화두다. 지난 1월 30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동그라미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주관한 ‘비영리 리더를 위한 원데이(one day) 네트워킹 포럼’에서는 중견 규모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사무총장 20명의 다양한 고민이 쏟아졌다. 이들은 “비영리단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①여문환 JA코리아 사무국장. ②이호승 한국컴패션 후원경영실장. ③김인수 동그라미재단 사무국장. ④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 ⑤원기준 사단법인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 사무총장. ⑥박상금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⑦곽미란 위드 본부장.
①여문환 JA코리아 사무국장. ②이호승 한국컴패션 후원경영실장. ③김인수 동그라미재단 사무국장. ④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 ⑤원기준 사단법인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 사무총장. ⑥박상금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⑦곽미란 위드 본부장.

◇대중의 선입견, 업무 과다… 직원 전문성 높이는 교육 필요해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해비타트는 지난달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7차례 토의를 하고, 내·외부 환경 분석과 조직 진단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주거 복지 향상을 위한 한국해비타트의 향후 10년 목표와 과제가 구체적으로 도출됐다. 김홍대 한국해비타트 경영본부장은 “영리 기업에서 27년간 일하다가 비영리단체로 왔는데 6시 퇴근이 조퇴하는 느낌일 정도로 치열하고 업무가 과중하더라”면서 “앞으로는 비영리단체도 영리 기업 못지않은 조직 관리 없인 지속 가능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후원자가 낸 기부금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뛰어난 직원들이 비영리단체를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10년째 개도국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일하는 국제개발NGO 월드투게더의 이범호 사무총장은 “직원들이 행정 처리 등 밀린 업무를 하느라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고민이나 공부할 시간이 없고, 대형 NGO가 아닌 이상 조직 차원에서 직원 교육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비영리단체가 내부 ‘사람’에 투자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인식도 많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인 ‘터치포굿’ 역시 비영리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지적했다. 박인희 터치포굿 이사는 “직원 채용을 할 땐 ‘사회적기업에는 착한 사람들만 있겠지’란 선입견이 있었고, 사회적기업 제품이란 소개를 듣고는 상품의 질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많았다”면서 “7년차에 접어든 지금은 기업들로부터 컨설팅 의뢰를 받아 행사 후 수거된 페트병, 폐현수막 등 재활용품을 상품으로 만들고, 환경 교육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국내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 전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은 사회적기업을 위한 소액 대출뿐만 아니라 직원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박상금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는 “내부 직원의 전문성이 강화될수록 기업이 지속 가능해지더라”면서 “이 기업들이 갚은 자금(원금, 이자)을 씨앗으로 다시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대출해주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소년들에게 경제·금융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JA코리아’는 직원들의 잦은 이직을 줄이기 위해 2주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여문환 JA코리아 사무국장은 “복지 차원에서 직원들이 돌아가며 2주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더니,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원기준 사단법인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업무 과다, 열악한 처우 때문에 5년 이상 근속하는 직원들이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돼 고민 끝에 한 달 휴가 제도를 정착시켰다”면서 “연탄 나눔 특성상 연말에 업무가 몰리는 편이라 직원들이 충분히 충전하고 돌아와 더 즐겁게 일하더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컨설팅하는 중간 지원 기관인 ‘씨즈’의 김영석 사무국장은 “조직의 성장과 직원 만족도가 함께 커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직원들과 깊이 있게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면서 “청년들이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컨설팅하고 지원하는 우리 직원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⑧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 ⑨김영석 씨즈 사무국장. ⑩이광재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사무국장. ⑪박인희 터치포굿 이사. ⑫이범호 월드투게더 사무총장. ⑬조현주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 ⑭임창규 한국사회투자 사무국장. ⑮김민지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사무국장.
⑧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 ⑨김영석 씨즈 사무국장. ⑩이광재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사무국장. ⑪박인희 터치포굿 이사. ⑫이범호 월드투게더 사무총장. ⑬조현주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 ⑭임창규 한국사회투자 사무국장. ⑮김민지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사무국장.

◇비영리 투명성과 소통… 기부 문화 이끌 핵심 키워드로

올해부터 후원자들은 국세청 자료를 통해 자신이 기부한 단체의 재무·회계 현황, 급여 총액, 사업 실적 등을 직접 검색해볼 수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지난 1월 1일 시행되면서 자산 총액 5억원, 수입 총액 3억원 이상인 공익 법인에 공시 의무가 생겼기 때문.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비영리단체의 모든 자료가 동시에 공개되면 해당 정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비영리단체들 간의 비교가 시작되고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단체마다 기부자들에게 이를 알기 쉽고 정확하게 공유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네트워킹 포럼에 참석한 비영리단체 사무총장들 모두 올해 핵심 전략을 후원자와의 소통 강화로 꼽았다. 조현주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총장은 “지난 15년간 개도국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자립을 위한 지역 개발사업을 해왔는데, 대다수 기부자가 후원 아동 결연이 아닌 사업에 대해선 ‘먼 나라 이야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앞으로는 마을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모니터링하고, 현장의 효과를 잘 알릴 수 있는 모금·홍보 전략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품영양전문 NGO’위드’의 곽미란 본부장 역시 “개도국 주민들의 영양·건강 개선 사업은 아무래도 성과를 빨리 보여주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모금이 잘 안 되더라”면서 “다양한 홍보 채널로 기부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고 덧붙였다.

국제 아동 양육 기구인 한국컴패션은 대중에게 빈곤 현장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3일부터 서울 시청 시민청에서 ‘컴패션 체험전’을 열고 있다. 이호승 한국컴패션 후원경영실장은 “필리핀 쓰레기 마을이 재현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직접 가난의 모습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면서 “한 번 후원하셨던 분들이 처음의 나눔을 기억하고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올해 컴패션의 가장 큰 숙제”라고 전했다. 새로운 기부 콘셉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올해 전략으로 삼은 곳도 있다.
희귀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이뤄주는 비영리단체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이광재 사무국장은 “아픈 아이의 치료비 지원뿐만 아니라 아동이 소원을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건강하게 성장하는지 공감대를 확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고, 16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황사 문제 해결을 위해 달려온 비영리단체 ‘푸른아시아’의 오기출 사무총장은 “올해 탄소배출권, SDGs(지속가능개발목표)가 키워드로 떠오르는 만큼 기후변화 이슈를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규 한국사회투자 사무국장은 “정부 예산의 부담을 줄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는 복지’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등에 투자하는 ‘투자적 복지(사회적 금융, 임팩트 투자)’가 확대되는 등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유진 기자

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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