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식사가 괴로운 어르신들께 ‘먹는 낙’ 선물하고 싶었죠

복지유니온 장성오 대표… 음식물 섭취 어려운 ‘삼킴장애’ 노인들
9년간 사회복지사 일하며 안타까움 느껴… 죽보다 삼키기 편한 맞춤형 유동식 개발

불고기·해물야채 등 15가지 맛 제공
25㎏인 할머니, 9개월만에 4~5㎏ 찌기도… 작년엔 ‘사회적기업 스타상품 공모’ 1위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유동식_2015

“잘게 간 음식마저 못 드시는 어르신들에겐 일명 ‘콧줄’을 끼웁니다. 콧줄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아내와 함께 사회복지사로 근무한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성한 어르신께 콧줄을 끼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결국엔 콧줄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할 노인이고, 일단 하루 업무가 과중하니 미리 끼워버리자는 심산이었죠. 콧줄을 낀 분들은 ‘이제 밥도 못 먹고, 죽을 때가 다 됐구나!’라고 생각하며 좌절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좀 더 존엄하게 살다 가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 맞춤형 유동식을 직접 개발한 사회적기업가가 있다. 9년 동안 노인요양시설,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일해온 사회복지사, 장성오(38) ㈜복지유니온 대표다.

삼킴장애 노인을 위한 유동식을 개발한 (주)복지유니온 장성오 대표(오른쪽 첫 번째)와 직원들. /바라봄사진관 제공
삼킴장애 노인을 위한 유동식을 개발한 (주)복지유니온 장성오 대표(오른쪽 첫 번째)와 직원들. /바라봄사진관 제공

그가 요양시설 어르신들을 위한 유동식을 개발한 건 소규모 복지시설에서 안타까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 영양사나 조리사가 없어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들이 노인·장애인들의 영양관리부터 조리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다. 간단한 한 끼 식사처럼 보이지만 일거리는 많았다. 예컨대 요양시설에서 노인 30명이 생활한다고 하면 20명은 밥을 먹고, 7명은 죽을 먹고, 나머지 3명은 밥과 반찬을 갈아서 먹는 식이기 때문이다. 치매와 뇌졸중 등의 이유로 음식을 씹고 삼키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식사 준비는 한층 고되다. 장 대표는 “밥과 나물은 갈고 생선 같은 반찬은 가시를 모두 발라내 으깨서 드리곤 했다”며 “요양시설 직원들이 부지런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빠르고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만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음식을 제대로 씹거나 삼키지 못하는 ‘삼킴장애’다(분당서울대병원, 2013).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면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요양시설 직원들은 일일이 음식을 갈아서 준비한다.

“복지시설에서 일했을 땐, 음식재료 장만도 일이었어요. 대형 식자재업체는 소규모 시설에 납품하길 꺼립니다. 구매력도 낮고 배송비도 만만찮기 때문이죠.”

식자재를 납품받지 못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 음식 준비를 하곤 했었다는 그는 ‘사회적기업이 소규모 복지시설을 묶어 공동구매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침 2009년 연수를 다녀온 일본 복지시설에서 이걸 보고 벤치마킹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삼킴장애 노인을 위한 유동식 시장 규모가 100억엔(한화 920억원)을 훌쩍 넘었다. 한국은 어린아이를 위한 이유식 시장은 무척 발달한 데 반해, 실버식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일본에서 수입된 유동식은 아이스크림처럼 걸쭉한 모양새로 음식이 뭉치는데, ‘죽’에 익숙한 한국 노인들이 낯설어해서 외면을 받는 상황이었다.

서울시에 제안서를 내 6000만원을 지원받아 한양대 식품영양학과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복지유니온이 2000만원을 자체 충당해 마침내 지난해 연하도움식(유동식) ‘효반(孝飯·3000원)’이 완성됐다. 맛도 불고기맛·해물야채맛 등 15가지로 개발했다. 이 상품은 작년 5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사회적기업 스타상품 공모’에서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수(秀)실버간호센터 등 서울 소재 복지시설 3곳과 건국대학병원 등에 시범적으로 납품 중이다. 반응은 무척 좋다.

32명의 노인이 생활하는 수실버간호센터에선 현재 할머니 다섯 분이 세끼 유동식을 먹는다. 할머니들이 유동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보통 죽보다 삼키기 편하면서 다진 밥보다 맛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콧줄을 통해 영양을 섭취했다는 80대 박옥임(가명) 할머니는 “인자 먹는 게 낙이야!”라고 했다. 수실버간호센터 부원장인 유지원(48) 간호사는 “삼킴장애 노인분들은 죽을 드리면 입 안에서 알알이 흩어져 간혹 기도에 들어갈 수 있고 사레가 들리기에 위험하다”며 “예전에 밥과 반찬을 갈아 드리면 어르신들이 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셨는데, 유동식으로 바꾼 후 어르신들이 맛있다고 좋아하시고 우리도 일거리를 덜었다”고 했다. 입소 당시 체중이 대략 25kg으로 ‘미라’ 같았다던 한 할머니는 유동식을 먹기 시작하며 살이 4~5kg 이상 붙었다고 한다. 실제 기자가 맛을 보니, 야채죽인데 질감이 꼭 이유식 같았다. 황은미 복지유니온 부설 연구소장은 “사람이 태어나 모유와 이유식을 거쳐 밥을 먹듯 노인이 되면 거꾸로 밥, 죽, 다지거나 간 음식을 먹는 것이 순서”라며 “이유식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장성오 대표는 유동식뿐 아니라, 예전의 식자재 고민을 해결할 방법도 찾아냈다. 강서구 국공립 어린이집 37곳을 비롯해 서울 시내 복지관 수십 곳을 모아 대형 식자재업체 ‘현대그린푸드’에 주문을 넣고 있는 것이다. 영양사가 아동·노인·장애인시설 특성에 맞게 월별 식단표를 짜면, 식단표에 맞추어 식자재가 납품되는 시스템이다. 끼니마다 자세한 조리법이 제공되기에 전문 조리사가 아니어도 요리할 수 있다.

“좋은 요양시설에 가는 어른들은 좋은 서비스를 받고, 단독 데이케어센터 같은 소규모 시설에 가면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받아요. 시설이 좋은 복지관 병설 데이케어센터에는 줄 서서 대기해야 해요. 국공립 어린이집에 줄 서서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장기요양은 국가보험인데, 이렇게 서비스가 차이 나면 안 되죠. 사실 복지시설의 취지는 동네에 있어서 쉽게 이용 가능하게 하자는 것인데 말이죠. 저는 작은 복지시설이 연대하고 협상력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예요.”

장성오 대표는 “장기요양 1등급 판정을 받은 요양(병)원 입소 어르신만 3만명이 넘고 서울에만 약 7000명이 몰려 있다”며 “‘내가 요양원으로 가게 된다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를 생각하며 요양시설 어르신과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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