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美·英 나눔문화 전문가 2인에게 듣다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 연구부처 소장 스티븐 로런스(Steven Lawrence)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 제인 아노트(Jane Arnott) 글로벌 네트워크장

나눔 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고, 비영리 영역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지난 몇 년간 국내 비영리 섹터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개인 기부가 증가했고, 모금 경쟁은 치열해졌다. 2012년 기준 국내 기부 총액은 11조8400억원. 2006년 8조1400억원이었던 기부 총액은 6년 만에 1.5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90% 상당의 개인 기부는 종교기관에서 이뤄진다. 비영리 섹터 규모가 훨씬 크고 역사가 오랜 미국과 영국에서는 우리의 현 고민을 이미 마주하지 않았을까. 지난 5일, 한국NPO공동회의·한국국제교류재단·사회복지협의회 등이 주최한 ‘2014 국제나눔문화선진화 콘퍼런스’를 위해 방한한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두 비영리 중간지원조직,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의 스티븐 로런스(Steven Lawrence)와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의 제인 아노트(Jane Arnott)를 만나 그간의 노력을 들었다.

“재단끼리 정보 공유해야사각지대 없는 나눔 가능”
재단 투명해야 사람들이 ‘공익’ 위해 존재한다 느껴…
단체 간은 물론 대중도 쉽게 정보에 접근하게 해야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 연구부처 소장 스티븐 로런스(Steven Lawrence)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 연구부처 소장 스티븐 로런스(Steven Lawrence)

―한국에도 공익재단들은 많지만, 재단센터와 같은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은 아직 없다. 재단센터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이었나.

“1950년대 미국에선 공익재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경제 성장과 맞물리면서 이전까지 500개 남짓하던 재단이 4~5년 만에 1000여개로 늘고, 총 자산 규모도 2배 가까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신도 팽배했다. 재단은 사람들에게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존재 의의를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카네기재단 대표였던 러셀 레핑웰(Russell Leffingwell)은 ‘재단들이 유리 주머니처럼 투명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단센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재단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클릭 한 번으로 재단 이사의 연봉과 이메일 주소까지 확인할 수 있고, 전 세계에 배분된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수 있다. 재단과 비영리단체 각각의 재무제표, 조직구조, 임금수준까지 공개돼 있는데, 이렇게 공익재단들이 자신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보 공개 자체는 당시에도 법적 의무였다. 공익재단은 세금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일반 대중은커녕 재단들끼리도 서로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재단센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직원들은 미국 전역에 있는 재단들을 직접 방문해 자료를 복사하거나 수기로 적어와 자료를 다시 취합하는 식으로 데이터를 모았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국세청 공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펀딩이나 기금 지원 등 재단의 자금 흐름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국세청을 통해 자동으로 받는다. 그 외에 개별 재단 홈페이지나 연례보고서를 분석하고, 매년 2만개 이상 재단과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공시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심층 설문조사도 진행한다.”

―재단이나 비영리단체들의 재정이나 모금, 배분 등에 관한 ‘수치’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일반인이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것이) 재단센터에서 취합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데 더 공을 들이는 이유다. 재단센터 총 직원이 165명 정도인데, 그중 90% 이상인 145명 가까이가 뉴욕 본부에서 일하고, 이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속한 곳이 ‘데이터 취합·가공’ 부서다. 과거보다 접근 가능한 정보는 훨씬 많아졌지만, 범람하는 정보 중 의미 있는 자료로 가공하기까지에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다. 재단센터에서는 단순 통계 수치에서부터 재단 간의 비교·분석, 특정 키워드로 찾을 수 있는 자료 등 다양한 분석 결과물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 자산 총액 5억원, 수입 총액 3억원 이상 법인까지 공시 의무가 생겨나는 등 정보 공개와 활용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영리 영역 성장을 위한 조언이 있으면 부탁한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가족재단에서 전화를 걸어와 ‘우리는 사적으로 조용히 운영하고 있으니, 재단센터에서 제공하는 정보에서 우리 부분은 빼달라’고 하더라. 공익재단이 사적일 수는 없다. 세금 혜택을 받는 이유는 ‘공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딱 잘라 거절하는 대신 재단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재단으로부터 정확히 어떤 목적의 사업을 하고 있고, 그 수혜기관은 누구이며,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어 공개했다. 비영리단체들은 이제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일해야 한다. 다뤄야 할 문제와 원인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층적인데, 과거처럼 모두가 비슷한 일을 엇비슷한 수준, 고만고만한 규모로 진행해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기부자와 대중은 점점 영리해졌고, ‘비영리단체들이 왜 필요한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한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선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누가 어떤 문제에 얼마나 지원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공유돼야만 같은 활동은 규모가 더해지고 빈 연결 고리들이 채워질 수 있다.”

※재단센터는…

비영리단체의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세워진 중간지원조직이자 지식뱅크다. 1956년 설립돼 올해로 58년을 맞이한 재단센터는 뉴욕 본부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 총 5곳, 인도네시아·중국·스리랑카 등 전 세계 13곳에 지부가 있다. 미국 및 전 세계 재단들의 보조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 교육, 트레이닝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매일 수천명의 사람들이 센터 홈페이지를 방문하며, 매년 재단 총수익의 60% 이상이 사람들이 구매하는 자료나 교육비에서 나온다. 재단센터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정기 구독하는 사람만도 1600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기부지수 45위… 기부자와 단체, 간극 줄여야”
러시아·브라질 등의 기부는 종교·지인끼리 이뤄져…
기부단체 신뢰 적은 곳, 캠페인으로 인식부터 바꿔야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 제인 아노트(Jane Arnott) 글로벌 네트워크장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 제인 아노트(Jane Arnott) 글로벌 네트워크장

―2010년부터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적·지역적으로 기부와 관련해 전반적인 트렌드가 궁금하다.

“세계기부지수는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을 통해 각국의 자원봉사 시간, 기부 액수, 타인을 돕는 빈도 등을 조사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그 이전 5개년도와 수치를 비교·분석했다. 모든 국가가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상위 10개국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미국·호주·캐나다·인도 등이다. 2013년 조사에서 제외됐던 한국은 2012년 당시 45위에 그쳤다. 모든 나라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가별 심층연구도 진행하는데, 나라마다 ‘나눔 문화’ 맥락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나눔 문화는 전 세계 어디서나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나라마다 기부 양상이나 문화는 다르고, 성숙도에도 차이가 있다. 러시아·브라질 등과 같은 신흥시장은 대부분의 기부가 종교단체나 주변 지인끼리 상호부조 형태로 이뤄진다. ‘사회적 신뢰자본’이 약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비영리단체에 선뜻 돈을 내기보단 나를 둘러싼 단체에 돈을 내는 것이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의구심도 크고, 이해도 적다. 국가 규제도 많다. 남아공에선 얼마 전 비영리단체로 등록됐던 3만 곳이 갑자기 목록에서 지워졌다.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핑계였다. 계속해서 캠페인을 한 결과, 다시 등록될 수 있었다. 이런 신흥국가에서 카프는 애드보커시(Advocacy·옹호활동)에 주력한다. 러시아에선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 제도까지 갖췄다. 다만, 세제 혜택을 받는 데 너무 많은 문서작업을 요구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가마다 문화 차이도 크다. 브라질의 경우 나누는 문화는 많은데 요구하는 문화가 없어 모금이 어렵다고 하더라. 국제적인 비영리단체들이 이런 신흥국에 들어갔을 때, 현지 맥락을 모르고 기존 모금방법을 적용했을 때 모금이 쉽지 않다.”

―선진국에서 최근 겪고 있는 비영리 영역의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BBC의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믹릴리프’라는 매년 수백만 파운드를 모금하는 단체에 대해 집중조명했다. 이 단체는 해외 아동을 돕고 분쟁지역에 지원금을 제공하기도 하고, 영국 내에서 어린이·노인 복지, 마약 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믹릴리프는 모금을 할 때 ‘모든 후원금을 100% 사용한다’라고 홍보하는데, 알고보니 후원금 중 일부를 알코올기업과 담배회사에 투자한 것이 드러났다. 마약 오남용을 지원하는 단체라 도덕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처럼 비영리단체는 끊임 없이 기금 오남용, 부실경영, 캠페인에서의 정치적 중립 등의 리스크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면 안된다. 스캔들이 하나 발생하면, 전체 NPO에 그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비영리 영역은 모금액도 늘고, 단체도 많이 생겨났다.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숙’을 이룰 과제가 남아있는데, 보다 성숙한 나눔 문화와 사회적 신뢰자본을 조성하기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영국에선 400년에 걸쳐 자선활동과 시민사회가 자리 잡았고, 법과 제도가 다듬어졌다. 똑같은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다만 기부자와 비영리단체 사이에는 간극이 있고, 나눔 문화 저변이 넓어지기 위해선 서로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부자는 일회적이고 충동적인 기부보다 계획에 따라 기부하는 게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단체들은 기부자와의 접점을 고민하고, 기부의 ‘결과’를 잘 설명해야 한다. 사회 내 신뢰가 부족하다든가, 제도나 법이 미비하다거나, 기부를 위한 세금 인센티브가 충분치 않은 등 나눔 문화의 사회·제도적 인프라가 보완돼야 할 때, 중간지원기관은 비영리 영역 전반을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는…

올해로 90년째를 맞이한 카프는 영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싱크탱크다. 1924년 정부 조직인 국가사회서비스위원회 산하 공기관으로 설립됐다가 50년 후인 1974년 민간 독립자선단체로 변경됐다. 현재 영국 본부에 400여명의 직원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러시아·호주·캐나다·브라질 등 총 10곳에 글로벌 지사를 두고 있다. 카프 은행(CAF Bank)을 통해 비영리단체들의 자금 융통을 돕고,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도 개선 캠페인 및 애드보커시 연구를 진행하며, 기업 기부자와 개인 기부자 컨설팅을 제공한다. 2010년부터 세계 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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