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화)

2030세대 웃음소리 가득… 익산 ‘친환경 청년마을’을 아시나요?

공공·민간·비영리가 함께 청년 공간 조성
작업실부터 놀이터까지 모두 친환경으로

“익산 청년들이 모여서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오늘 혼자 참여했는데 달리기 대회에서 1등도 하고, 다른 분들과 어울리면서 대화하니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행사에 참여할 것 같아요.”(정도희·24)

“달리기 대회에 참여하려고 고창에서 왔어요. 비도 오고 골목 상가가 전부 닫혀 있어서 참여 인원이 적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북적이더라고요. 퀴즈도 맞추고 샴푸바랑 도마도 받고, 뜻밖의 즐길 거리가 많아서 또 오게 될 것 같습니다.”(김정수(가명)·30)

전북 익산 중앙동에 있는 ‘중앙맨션’ 2층에 러닝화를 신은 청년들이 모였다. 형형색색의 목재 가구들과 목재 소품으로 채워진 이 공간에서 지난달 14일, 사회적 목공기업 ‘사각사각’이 주최하는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일 내린 폭우로 인해 행사 규모가 축소됐지만, 열기는 식지 않았다. 20~30대 청년을 포함한 시민과 관계자 50여 명이 모였다. 청년 마을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단거리 달리기 대회, 사각사각 퀴즈 대회 등이 열렸다. 참가자들에겐 사각사각의 제로웨이스트 생활용품과 비건 간식이 제공됐다. 달리기 대회 수상자 6명에겐 사각사각 권순표(39) 대표가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상패를 전달했다.

사각사각 팀원들이 중앙맨션의 YES 청년환경비축기지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익산=최민아 청년 기자
사각사각 팀원들이 중앙맨션의 YES 청년환경비축기지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익산=최민아 청년 기자

익산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중앙동 골목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익산의 ‘명동’이었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를 띠던 상권이었지만, 주변 일대가 개발되면서 새로운 중심지가 형성됐고, 인구고령화, 지방소멸 문제와 맞물려 인구가 감소해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현재는 간판이 녹슬고 차단막이 내려간 폐업 가게들이 상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골목 전체가 어둡고 한산해졌다. 익산에서 나고 자란 김초옥(37) 사각사각 매니저는 “10~20대 시절 활발했던 중앙동 골목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권이 모두 죽어버린 현재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익산시는 지역 활력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서 선정한 ‘청년 마을’이다. 행정안전부가 3년간 총 6억원을 지원하는 이번 사업은 사회적 목공기업 사각사각이 맡았다. 사각사각은 원 도심인 중앙동을 소량생산, 직접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 단지 ‘지구장이 마을’로 만든다. 중앙동에 위치한 중앙맨션을 거점 공간으로 삼고, 수공예와 환경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친환경 창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지역민과 청년이 함께 환경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세미나와 행사를 개최하는 활동을 한다. 권 대표는 “지구장이 마을을 통해 익산에 많은 분이 다시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기를 되찾길 바란다”며 “사각사각은 지속적으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전북 익산 중앙동 중앙맨션에서 사각사각이 주최한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익산=최민아 청년기자
지난달 14일 전북 익산 중앙동 중앙맨션에서 사각사각이 주최한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익산=최민아 청년기자

처음 진행된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에서 청년들은 4시간 동안 중앙맨션 2층에 머물렀다. 달리기 대회 시상식이 종료됐음에도 청년들은 중앙맨션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발길을 묶은 것은 달리기 대회, 퀴즈 대회가 아닌 서로간의 ‘교류’였다. 달리기 대회 여자부문에서 1등을 한 정도희(24)씨는 시상식이 끝나고 “현재 중앙동 청년 몰에서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어 앞으로 이런 행사가 있다면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중앙맨션 1층에서 로컬 편집샵을 운영 중인 김병수(가명) 비마이크 대표는 도희씨에게 편집샵에 베이커리 상품을 납품해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각사각은 YES(Youth Eco Storage-center) 청년환경비축기지를 통해 수공예와 환경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지구장이마을로 더 불러모을 계획이다.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 당시에 비어 있던 공간은 사각사각이 양성하는 ‘청년 그린 크래프터’들의 에코 창업 공간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권 대표는 “2022년부터 인화동 도시재생센터에서 위탁교육을 받아 목공 창업교육을 진행해왔다”며 “실질적인 목공 창업 노하우와 그간 쌓인 교육생 데이터를 토대로 소량 생산, 소량 소비를 지향하는 지구장이 마을을 함께 만들 청년을 육성한다.”고 말했다.

YES 청년환경비축기지를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도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KB국민은행은 사각사각과 함께 청년환경비축기지 내에 ‘아름드리 놀이터’를 만들었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와 장난감은 모두 목재로 만들어졌다. 부모들이 쉬면서 한눈에 놀이터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환경비축기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행사 당일 청년들 사이로 놀이터에 앉아 비건 휘낭시에를 맛있게 먹는 5살 여자 어린이가 사회자 눈에 띄었다. 엄마와 함께 행사에 놀러 온 아이는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며 달리기 대회 대진표를 추첨했다. 장보미(40) 매니저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이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목재의 자원순환을 위한 작업실도 마련됐다. 아름드리 놀이터 옆에는 폐목재를 활용하는 공간인 ‘장이 작업실’이 있다. 가구를 만들고 남은 목재에서 태워 버려져야 하는 폐목재를 활용해 장난감을 만든다. 사각사각은 회사 2층에서 장년층을 대상으로 폐목을 활용한 실용목공교육 프로그램 ‘청춘 놀이터’를 다년간 운영해오며 익산시 은퇴 장년층 6명이 모인 소모임 ‘제페토’를 만들게 됐다. 앞으로 제페토는 중앙맨션 장이 작업실에서 목재 장난감과 소품을 제작한다. 작업실이 통유리창으로 돼 있어 이곳에 방문하는 아이들은 친환경 놀이터를 이용하고 목공과정도 자연스레 관찰할 수 있다. 권 대표는 “목공교육을 하면서 시니어 선생님들과 대화해보면 젊은 열정적이고 포용적인 태도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며 “아름드리 놀이터와 YES 청년환경비축기지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도 시니어 선생님들과 소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각사각은 2021년 제로웨이스트샵 '게스트 지구인'을 오픈을 시작으로 환경활동을 본격화했다. /전북=최민아 청년기자
사각사각은 2021년 제로웨이스트샵 ‘게스트 지구인’을 오픈을 시작으로 환경활동을 본격화했다. /익산=최민아 청년기자

중앙동에 활기를 불어넣은 사각사각은 전 연령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세대에 상관없는 목공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나무로 누구나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어린이·청년·장년·장애인 등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목공교육을 수강한 익산 시민은 3000명에 달한다. 권 대표는 “교육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목공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며 “세대 갈등으로 말이 많은 요즘이지만 목공을 매개로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반기부턴 외부지역 청년의 유입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익산시 중앙동 지구장이 마을은 익산역과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있는 지리적 장점을 살려 로컬에서 창업 경험을 하고 싶은 외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퇴근하GO’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외지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는 중앙맨션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샵 게스트 지구인의 꼭대기 층에 위치해있다. 비닐봉지가 없고 제로웨이스트 제품들로만 생활용품이 채워진 ‘불편한 하우스’에서 외지 청년들이 직접 생활 규칙을 정해 생활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외지 청년 2명, 지역 청년 2명과 함께 4박 5일간 숙소를 실험적으로 사용해 기본적인 용품 세팅 등의 준비를 마쳤다.

지구장이 마을의 최종 목표는 마을 안에서 환경과 관련된 의식주를 모두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친환경문화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김초옥 매니저는 “한 달에 한 번 지구장이 달리기 대회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환경 세미나를 개최해 모든 세대가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는 환경 공동체를 조성하고, 청년 그린크래프터의 다양한 에코 창업과 실험을 통해 하나의 친환경 단지를 만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3년 안에 중앙동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지닌 청년 마을로 부흥시킬 것이다”고 덧붙였다.

익산=최민아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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