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3일(토)

[기차에서 일합니다] 소멸 위험 지역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되기 전에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저출생, 인구, 지방. ‘소멸’이라는 키워드에 비상등이 깜빡인다. 전국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소멸 위험 지역은 과반이 넘는 118곳. 특단의 조치로 수백억원의 정부 지원금이 지역에 상륙 중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별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외부 기획자를 수혈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의 연구용역에 참여하면서 나는 예비 정주 인구의 시선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역의 면면을 살펴봤다. 잠시 머무는 곳이라 해도 어떤 경험으로 기억될 것인지가 중요한 지점이었다. 인구 유입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공간 조성. 시작점은 선명했다. 워케이션(workation) 부지를 변경해 아파트 단지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기점으로 삐끗. 결국 최종 조감도는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빌딩 숲이 됐다.

얼기설기 얽힌 이해관계와 결정권자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는 동안 전문성과 차별성이 흐려지는 현상. 개점휴업 상태의 유령 건물로 남은 지역의 각종 지원센터와 공공기관 건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지역별 혁신도시를 비롯해 국공립대 역시 주말이 되면 공동화 현상에 처한다. 일하는 공간이자 임시거처에서 주말이면 문화를 향유하고 아이를 교육하는 수도권으로 돌아간다. 돈을 버는 곳과 쓰는 곳이 다르다 보니 그나마 있던 인프라마저 흔들린다. 폐업 사인이 즐비한 원도심 1층의 쇼윈도를 지날 때면 대낮에도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기한이 10년으로 설정되었다 해도 매년 평가에 의해 100개 지역으로 예산이 쪼개지는 현재의 방식이라면, 앞으로 논밭 위에 수백 개의 나홀로 빌딩이 올라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거미줄처럼 첨예한 지역의 이해관계, 공공기관의 기준에 맞춘 수백 장짜리 계획서와 입찰 조건, 성과 보고를 위한 결과물. 그렇게 탄생한 유령도시가 끊임없이 복제되는 형국이다.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삶의 터전을 섣불리 옮길 사람은 없다. 예측가능한 결말을 외면한 채 ‘일단 예산부터 받고 보자’ ‘지어 놓으면 알아서 쓰겠지’ 식으로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그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부채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한 미래만 남는다면, 그 누가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이번 생에 초대하겠는가.

텅 빈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채워질수록 지방 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도시에서 일하다 주말이면 농촌으로 향하는 ‘5도 2농’의 삶을 시도하는 이들이 기대하는 건 ‘살아보는 경험’이다. 전원의 여유로움과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이라는 상상과 현실의 격차를 몸소 겪어보는 것. 제주도 이주와 한 달 살기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쨍한 하늘 사이로 갑자기 시야를 뒤덮는 해무. 순식간에 바뀌는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공간을 감각하는 동안 마음의 방향키가 노선을 정한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에 일과 휴가를 합친 워케이션은 일상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왔다. 주소든 회사든 어디에 적을 두고 있는지 더는 중요치 않다. 여행하듯 이곳저곳 나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삶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건축은 일상과 문화를 바탕으로 지어 올리는 시대의 얼굴이다. 그 공간에 삶이 스며들 때 고유한 표정이 생긴다.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자리를 그라운드 제로로 명명한 뉴욕은 추모 공원 재건에 10년을 투자했다. 공모를 통한 선정작은 이스라엘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가 설계한 인공 폭포 ‘부재의 반추’. 메모리얼 파크의 심장이 돼 흐르고 있다. 심사에는 베트남 베테랑 메모리얼 수상자였던 마야 린이 참여했다. 이 공모전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들은 모두 무명의 건축가였다. 단순한 디자인으로 공간의 뜻을 기린다. 채우기보다 비워냄으로써 영원히 그날을 기억한다.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일상의 중심으로 초대한다. 공정한 기회가 불러온 열린 결말이다.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은 어떠한가. 역사적 전환점이 된 굵직한 사건들은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추모비는 찾기도 어려운 곳에 꽁꽁 감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설계도를 그리기 전에 먼저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부재해서일까. 철근이 누락된 부실시공의 배경으로 전관예우는 존재하나 국민안전은 부재한 콘크리트 공화국. 30년이 다 되도록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틀에 박힌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민등록 인구에 기반한 지역발전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생활인구라는 관점으로 인구 문제 해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먼저 지역으로 발길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서핑의 성지로 불리며 수도권 인구를 주말에 대거 흡수하는 양양의 인구는 2만7000명. 성수기의 생활 인구는 2배가 넘는다. 과연 이곳을 인구소멸지역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경북 군위에 위치한 사유원은 어떠한가.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도 없고 입장료는 비싸지만 매번 티켓팅이 치열하다. 정선의 수묵화에 등장하던 수려한 능선을 골프장이 점령하는 사이 사유원은 반대 노선을 택했다. 승효상을 비롯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대자연에 스며든 빈자의 미학으로 존재감을 드높였다. 일본에 헐값으로 팔려 가는 모과나무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사유원의 역사는 구전되어 해외에서도 발길이 이어진다. 숙성된 시간의 흔적과 의미를 찾아 나서는 새로운 시대의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십억을 들여 세운 타워보다 모과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가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정유미 포포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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