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개도국 사회혁신가 발굴해 농가 자립을 돕습니다”

[인터뷰] 이성범 원더스인터내셔널 대표

“국제개발협력에서 자선보다는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싶었어요. 동정심에서 유발된 자선은 개발도상국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저는 실질적으로 ‘성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해외원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국제개발활동을 할 수 있는 비영리단체 ‘원더스인터내셔널’(이하 ‘원더스’)을 설립했죠. 2020년 설립 이후 라오스·캄보디아 등에서 현지 사회혁신가를 발굴·육성해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농부들이 자발적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도록 농가를 지원합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원더스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범(46) 대표는 ‘옐로펀트 커피’ 드립백을 들고 있었다. 옐로펀트 커피는 라오스 북부 지역의 소규모 농가가 원더스 지원을 받아 생산한 아라비카 커피다. 이 대표는 “원더스는 라오스 3개 주의 8개 마을과 협력해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라오스 북부에 있는 루앙프라방에 설립된 사회적기업 ‘아롬디(Aromdee)’에서 옐로펀트 커피를 소비자들에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옐로펀트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이 대표와 마주 앉았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원더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범 대표가 ‘옐로펀트 커피’ 드립백을 들고 있다. 옐로펀트 커피는 라오스 북부 지역의 소규모 농가가 원더스 지원을 받아 생산한 아라비카 커피다. /김어진 청년기자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원더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범 대표가 ‘옐로펀트 커피’ 드립백을 들고 있다. 옐로펀트 커피는 라오스 북부 지역의 소규모 농가가 원더스 지원을 받아 생산한 아라비카 커피다. /김어진 청년기자

-커피 냄새가 향긋하니 좋네요.

“그렇죠?(웃음) 옐로펀트 커피는 오직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입니다. 원더스는 루앙프라방주의 고산마을 6곳에 신규 커피 묘목 5만주를 지원해 원두 생산량을 늘리고 있죠. 지난 2019년에는 루앙프라방 야시장 입구 광장에 핸드드립 전문 카페를 차리고 루앙프라방 청년들을 고용해 옐로펀트 커피를 판매 중입니다. 로컬 소비자와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가 좋아요.” 

-옐로펀트 커피 사업 말고도 원더스에서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들이 궁금한데요.

“원더스의 주요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시장기반 지역사회 개발 사업 ▲현지 혁신 활동가 발굴·협력 사업 ▲국제개발협력 인식 증진 사업 등이죠. 원더스는 묘목 등 부자재를 제공하거나 농업 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현지 저소득층 농가를 지원해 농업 생산성을 증대합니다. 옐로펀트 커피 사업이 대표적인 예시죠. 이 밖에도 개도국 현지 농업에 적합한 흑생강, 허브차, 사차인치(견과류의 일종) 등의 작물을 재배하도록 돕습니다. 라오스 현지 여성들은 원더스의 지원을 받아 메콩강에서 자라는 민물김을 가공해 소득을 창출하기도 합니다. 원더스는 이렇게 생산된 농산품을 가공·상품화해 사회적기업에서 판매합니다. 현지 청년들 가운데 사회혁신가를 발굴하고 양성해 함께 사회적기업을 운영합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펼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죠.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에 앞서 해당 지역의 강점을 파악하고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이때 현지 조사만 9개월에서 1년 정도 진행합니다. 그다음은 지자체, 로컬NGO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현지 주민들을 교육합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지속가능한 농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외부자원을 연결해줍니다. 민물김 가공 사업을 예를 들면, 라오스 여성들이 기른 민물김이 국제 식품박람회에 출품 가능하도록 돕고, 소셜미디어(SNS) 마케팅 방식을 알려주는 식입니다.“

-현재까지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나요?

“민물김을 가공해 소득을 증대하는 사업에는 여성 85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60%가량 증가하기도 했죠. 라오스 혁신활동가 육성 사업과 아시아 사회혁신가 육성사업을 거쳐 간 청년은 총 110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현지에서 로컬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현지 여성들은 원더스의 지원을 받아 사차인치(견과류의 일종) 등의 작물을 재배한다. /원더스 인터내셔널
라오스 현지 여성들은 원더스의 지원을 받아 사차인치(견과류의 일종) 등의 작물을 재배한다. /원더스 인터내셔널

-현지 주민들의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나요?

“공감과 공유가 핵심이에요. 현장 활동가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부분이죠. 때로는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결국 국제개발협력은 사람 간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죠. 원더스는 현지 조사 과정에 주민들과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답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원더스 설립 이전 굿네이버스 등 글로벌 NGO에서 15년간 활동했습니다. NGO에서 활동하며 국가 간의 경계를 구분하기에 인류는 너무나도 연결돼 있고, 빈곤 문제는 특정 국가가 아닌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것을 느꼈죠. 그래서 굿네이버스에서 쌓은 해외사업 관리 업무 경력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진행하는 ODA 적정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형태의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고안했습니다.”

-원더스를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나요?

“원더스를 설립했을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쳤어요. 해외에서 사업을 펼치는 것부터가 힘들었고, 경영난을 겪었죠. 사실 설립 초기에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원더스의 비전을 계속 알리다 보니 후원자 100여명이 3억6000만원가량의 초기 자금을 후원해주셨죠. 기술과 장비 개발에는 많은 연구원과 교수들이 무보수로 자원해 도와주셨고요. 제가 NGO에서 일한 경력이 길다 보니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함께해주실 분들이 옆에 많았던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도 궁금합니다.

“원더스의 지원을 받아 농가 소득을 증대시킨 한 할머니께서 돈다발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시더라고요. 그 할머니께서는 “오늘은 풀을 데쳐 먹는 게 아니라 닭고기를 먹어야겠다”고 자랑하시더라고요. 할머니의 표정과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저소득 농가가 수익을 창출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저축이라는 걸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거 자체가 엄청난 변화고, 보람이죠.”

김어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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