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치매 환자 부양자 62%가 우울장애… 이젠 가족에게도 든든한 뒷받침을

치매 환자 가족 지원… 韓美日에서는

日 치매 가족 프로그램 수료한 사람들
서로 교류하며 다른 환자 가족 돕기도

美 1800쌍 부부 매뉴얼 적용해 보니
부양 가족 부담 줄어드는 것 증명

韓 서울시치매센터 ‘희망다이어리’ 도입
응급상황 대처·자조모임 등 교육 지원

올해 65세 이상 치매 노인 수는 61만명. 10명 중 1명(9.4%)꼴이다. 문제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3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치매 환자 진료비가 6462억원으로 가장 높다. 중앙치매센터는 치매 환자 1명당 가족 부담 진료비를 연평균 1982만원으로 파악한다. 치매 환자 부양자의 62%가 경우울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20%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2011년 보건복지부, ‘치매노인 실태조사’).

지역 아동·청소년이 치매 노인과 함께 여가 활동을 즐기 는 동두천시노인복지관의 ‘1.3세대 교류 프로그램'.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지역 아동·청소년이 치매 노인과 함께 여가 활동을 즐기 는 동두천시노인복지관의 ‘1.3세대 교류 프로그램’.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최근 한국에서도 ‘치매 가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부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1년에 최대 6일까지 환자를 요양 기관에 맡길 수 있는 ‘치매 환자 가족 휴가제’를 실시했다. 더불어 ‘치매 특별 등급’ 제도를 도입하며 이제는 경증 치매(5등급) 노인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거쳐온 일본과 미국의 치매 환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은 어떨까. 지난 16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서울시가 ‘치매 가족을 품다’라는 주제로 마련한 ‘2014 치매 국제 심포지엄’에서 각 국가별 다양한 사례가 선보였다.

◇치매 환자 가족 지원, ‘동료 그룹’을 활용하라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 시대에 치매 노인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치매 환자 가족 지원이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야 한다”고 조언한다. /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 시대에 치매 노인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치매 환자 가족 지원이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야 한다”고 조언한다. /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경우, 후생노동성이 치매 정책 추진 5개년 계획(2013~2017년) ‘오렌지 플랜’ 속에 ‘치매 가족 지원 서비스 강화’를 아예 명시했다. 가족을 대상으로 치매 간호 교육을 전개하고 부양자들 간 의견을 교류할 수 있도록 ‘치매 카페’를 설치하거나, 2017년까지 지역 자원봉사자가 치매 환자(가족)를 도울 수 있는 ‘치매 서포터스’를 600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2012년 기준 ‘치매 서포터스’는 약 350만명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치매 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한 비영리단체의 힘이 컸다. 11년 전부터 치매 환자 가족을 지원해 온 일본의 비영리단체(NPO) ‘아라진(Arajin) 가족 부양자 지원 네트워크 센터’ 마키노 후미코 이사장은 “핵가족이나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부양자 부담이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다”면서 “가족이 여유가 없으면 치매 환자 상태는 더 악화된다”고 했다. 아라진이 일찌감치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유다. 초기~중기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이 대상이며, 6개월 동안 치매 기본 지식, 돌봄 방법 등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아라진의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은 1800명 정도. 이들은 수료 후 각 지역에 교류회를 만들어 또 다른 치매 환자 가족을 돕고 있다. 마키노 이사장은 “부양자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지지와 공감이기 때문에 ‘동료 그룹(peer supporter)’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했다. 일본의 아이치현 지부 회원 수는 1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아라진은 도쿄 스기나미구 아사가야 역 안에 ‘케어러스(Carers·부양자) 카페’를 오픈했다. 치매 환자 가족이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마키노씨는 “일본 병원에는 진료 대기자가 많아 치매 진단을 받으려면 두 달이나 걸린다”면서 “우선 케어러스 카페에서 동료들에게 간단한 상담을 받고 초기 대응 방법을 익힌다면 치매 발생 시기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갈수록 증가하는 치매 환자… 이제는 가족 지원도 체계적으로

미국은 치매 환자 가족 지원 관련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사회 및 도시연구센터 소장이자 정신의학과 명예교수인 리처드 슐츠(Richard Schulz) 박사의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 건강 증진 연구(REACH-2)’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6년, 슐츠 박사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필라델피아·마이애미 등 6개 도시에서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18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가족 부양자 지원 프로그램(치매 정보 제공·매뉴얼 제시 등)을 실시한 후, 6개월 동안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슐츠 박사는 “가족 부양자 지원 활동에 참여한 그룹이 통제 그룹에 비해 우울증, 스트레스, 문제 행동 등 5가지 영역에서 2~9배가량 개선됐다”면서 “비디오케어(Videocare)폰이나 스마트폰 원격 모니터링, GPS 기술 등을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가족 지원 프로그램이 실시된다면 치매 가족의 부담 또한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역사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다. 지난 2009년, 서울시광역치매센터는 ‘희망다이어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치매 가족 지원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희망다이어리’는 치매의 이해부터 치매 노인 돌보기, 응급상황 대처하기, 자조 모임까지 이어지는 치매 환자 가족 교육 프로그램이다. 2011년에는 서울시 4개 자치구에서 50명이 교육에 참여했지만, 지난해에는 25개 자치구에서 272명의 치매 환자 가족이 프로그램을 수료하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18개 생명보험사가 출연해 설립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경증 치매어르신 기억키움학교’도 대표적인 사례다. ‘기억키움학교’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2011년부터 장기요양보험 ‘등급 외(外)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와 인지 기능 향상, 정서 지지 활동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던 부양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민간에서 주도해 온 것.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이제는 치매 환자와 더불어 부양가족까지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라며 의미를 설명했다.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시광역치매센터장)는 “치매 환자는 홀로 생활하기도 힘들고, 투병 기간도 평균 8년으로 길기 때문에 부양가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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