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나이키·포드와 손잡기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기업 노동·환경 개선부터

중견기업, 해외 기업 계약 위해 CSR 공부
아동이 만든 면화 구매한 대우인터내셔널
2012년 나이키로부터 거래 중단 통보받아

협력사 CSR 기준 검토하는 글로벌 기업들
모니터링 및 컨설팅 제공하는 곳도 있어
국내는 서울시만 공공계약 때 검토

미상_그래픽_CSR_글로벌기업CSR_2014

영국 글로벌 통신업체 A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한 중견기업은 최근 당사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기준을 강화했다. 지난해 영국 A사가 해당 중견기업을 직접 방문해 ‘CSR 점검’에 나섰기 때문. 영국 A사는 각 사업 부문별로 내부 CSR 성과를 측정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협력사와 거래할 때 CSR 측면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해관계자 소통·지배구조·인권·노동·환경 등 영국 A사가 요구하는 CSR 기준을 전달받은 중견기업은 당사 CSR 원칙과 시스템을 차근차근 점검, 강화해나갔다. 임직원들과 논의를 거쳐 실현 가능한 항목을 압축하는 등 CSR 관련 스터디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최근 영국, 프랑스 등 해외 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이 CSR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당 기업의 윤리경영 등 CSR 정도가 글로벌 기업과의 계약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오히려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중견기업들의 CSR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며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CSR 규제 강화… 움직이는 국내 기업들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은 부산 공장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나이키로부터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다. 국제 NGO단체들이 ‘대우인터내셔널 우즈베키스탄 면방직 공장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아동 노동으로 착취한 면화를 구매하고 있다’면서 불매운동을 벌였기 때문. 나이키는 불매운동이 중단되지 않는 한 거래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대우인터내셔널은 부산 공장을 매각해야만 했다. 1998년 아동 노동 착취 관련 보도로 명성에 금이 갔던 나이키는 지속적으로 납품업체에 대한 윤리규정을 강화해왔다. 하도급업체의 이름과 위치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아동 노동 등 사회문제가 발견되면 즉각 시정한다. 더 나아가 최근엔 CSR 심사기관을 지정해, 전 세계 협력회사에 직접 점검을 나가기 시작했다. 곽민구 영국표준협회(BSI) 이사는 “양말·고글·롤러스케이트 회사 등 나이키의 협력회사들이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아동·인권 등 CSR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면서 “사실 나이키 심사를 통과할 수준이 되면, 다른 글로벌 기업에도 납품할 역량이 되기 때문에 중견기업 CSR 수준이 자연스레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화학·에너지그룹 ‘토탈(TOTAL)’ 역시 해외 협력회사를 직접 방문해 CSR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협력회사를 방문한 토탈 측에 ‘아동 노동 착취가 없다’는 증거와 관련 CSR 정책을 제출하지 못해 거래가 불발될 뻔한 한 기업의 사례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유럽 자동차 회사에 제품을 납품하는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BMW, 르노 등 대다수 기업들이 사업 계약 전에 환경·인권·노동 등 일정 수준의 CSR 조건을 필수적으로 확인한다”면서 “포드(FORD)는 계약 전 CSR 관련 내용을 사업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추적할 정도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높다”고 설명했다.

◇CSR 자문은 물론 후속 조치까지 무료 지원…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

글로벌 기업들은 CSR에 대한 규제와 지원을 동시에 진행한다. 일례로 BT는 ‘BFSF(Better Future Supply Forum)’ 제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협력회사에 파견 나가 10가지 CSR 기준에 대한 점검과 컨설팅 및 후속 조치까지 지원하고 있다. 1차 협력회사가 2차 협력회사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고 확산시킬 수 있도록 2차적인 지원도 이뤄진다. 이러한 서비스는 한국 등 전 세계 협력회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엔 협력회사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제품 제작 콘테스트(Gcc·Game Change Challenging)’를 시작했다. 협력회사들이 지속 가능한 친환경 제품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제작 비용을 지원하고, 해당 제품의 일정 수량을 BT가 구매하기로 하는 계약까지 맺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CSR 기준 강화는 정부와 대중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됐다. 영국은 2000년 CSR 장관을 임명하고, 이듬해 정부 차원의 지속 가능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2년엔 기업의 환경·사회·고용 영향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법(Coporate Responsibility Bill)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CSR 규제 강화는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2005년 영국 시민의 78%가 “고객, 임직원, 사회,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원한다”고 답변한 것. 프랑스는 2001년 기업의 CSR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했고, 덴마크·스웨덴·슬로바키아 역시 기업 연차보고서에 CSR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홍일표 의원이 기업 사업보고서에 CSR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공공계약 시 협력업체 CSR 진단을 하는 지자체도 서울시가 유일하다. 유명훈 코리아 CSR 대표는 “프랑스 타이어 제조사 미슐랭(Michelin) 경영진은 전 세계 협력사들을 모아서 함께 지켜야 할 CSR 기준을 마련하고 친환경 타이어를 만들었다”면서 “유럽 기업들이 CEO부터 지속 가능 경영을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고, 각 부서별로 CSR 업무가 세분화돼 있는 것처럼, CSR에 대한 국내 기업과 대중의 인식이 더욱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유진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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