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못생겨서 외면받던 과일… 사회 공동체 위한 보배로 거듭나다

사회적기업 ‘파머스페이스’ 성장 요인
해외 현장 방문하고 창업 공모전서 입상
1억원 넘는 사업비와 투자자 관심 얻어
발달장애인이 디자인한 과일 박스로
아동 후원금 마련·장애인 인식 개선까지

파머스페이스가 출시한 '네이처 박스'
파머스페이스가 출시한 ‘네이처 박스’

이 집은 ‘못난이 과일’로 승부한다. 울퉁불퉁한 배, 작디작은 사과, 찌그러진 참외…. 못난이 과일은 맛과 영양에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외관에 흠이 있거나 모양 혹은 크기가 일정치 않아 버려진다. 부산의 친환경 과일 카페 ‘열매가 맛있다’는 못생겨서 외면받던 과일을 주스로 만들어 판매한다. 소농가(小農家)는 버려지던 과일로 소득을 올릴 수 있고, 도시민은 저렴한 가격에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부산대 앞에 문을 연 이후 1년 만에 2호점(보수동점), 3호점(경성대점)까지 확장했다. 자본금 150만원으로 시작한 창업인데, 2년 만에 200배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열매가 맛있다’를 운영하는 부산형 예비 사회적기업 ‘파머스페이스’의 성장 요인은 무엇일까. 파머스페이스를 통해 사회적기업의 성장 단계를 해부해봤다.

◇성장단계1. 창업 공모전, 성장 기회로 삼았다

2012년, 동아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서호정(33)씨와 윤영준(32)씨는 ‘농산물 유통의 거품을 빼자’며 마음을 모았다. 일개 대학원생이던 이들 수중에 사업 자금은 없었지만 패기는 있었다.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다 도전했다. 첫 단추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2012년 5월)이었다. ‘해외연수 아이디어 공모전'(2012년 7월)에도 참가, 일본의 B급 농산물 유명 유통회사이자 직판매장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메키몬 히로바’ 현장도 다녀왔다. 일본 견학은 사업 가능성의 확신을 얻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곧이어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창업경진대회'(2012년 8월)에 참가, 본선까지 진출했다. 900개가 넘는 팀 중 8위 안에 들어 상금(300만원)도 받았다. 이후 동아대 창업 동아리 경진대회 우수팀 선정(2012년 9월), 부산형 예비 사회적기업 지정(2013년 4월), 중소기업청 창업선도대학 창업지원팀 선정(2013년 4월) 등 공모전에 참가해 1억이 넘는 사업개발비를 모을 수 있었다. 각종 대회에서 사업 아이템을 검증받으며, 자연스레 투자자들의 관심 또한 받게 됐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창업 초기엔 품질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아파트 부녀회 시식 행사에서 진땀을 빼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못난이 과일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한국은 달랐다. 못난이 과일을 품질이 떨어지는 과일로 오해했기 때문. 좌충우돌을 겪으며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주스’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온라인 쇼핑몰(www.fspace.co.kr)뿐만 아니라 카페 형식의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부산대 앞에 ‘열매가 맛있다’ 1호 매장을 열었다.

부산에서 '열매가 맛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파머스페이스 팀원들. 못난이 과일을 주스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주요 사업 모델이다. /파머스페이스 제공
부산에서 ‘열매가 맛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파머스페이스 팀원들. 못난이 과일을 주스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주요 사업 모델이다. /파머스페이스 제공

◇성장단계2. 소셜 미션과 차별성으로 어필했다

오프라인 매장 오픈과 함께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못난이 과일을 100% 가공한 생과일 주스로 경쟁업체의 절반 가격에 판매하며 입소문을 탔지만, 대박은 ‘눈꽃 멜론 빙수’에서 터졌다. 지난해 7~9월 3개월간 매출의 70%를 멜론 빙수가 벌어들일 정도였다. 부산대 앞 20평 남짓한 카페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취지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지갑을 열진 않는 법. 파머스페이스는 대관령·무주 그 어디든 좋은 농산물을 재배하는 소농가를 직접 찾아나선다. 많은 마진이 남지는 않지만, 제철 과일을 활용해 재료비를 낮춰 수익을 올린다. 올해 매출 목표는 9억이다.

독특한 아이템 덕분에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부산 최초 못난이 과일 카페, 농산물 유통 구조의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청년들…. 지역 신문과 주요 일간지에 보도도 됐다. 특히 파머스페이스의 본질이 돋보이는 상품은 ‘네이처 박스’. 중소기업청 사업비 지원을 받아 개발한 이 상품은 제철 과일 6~7종이 포장된 ‘과일 선물종합세트’다. 못난이 과일과 일반 과일이 함께 포장돼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특수학교인 ‘부산은애학교’ 발달장애인들이 박스 디자인 작업을 하고,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아이들의 미술 활동 후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통 택배로 배송된 포장 박스는 버려지지만, 네이처 박스는 뚜껑이 있는 형태로 집에서 정리함으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성장단계3. 사업을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났다

파머스페이스가 단기간에 2호, 3호 매장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데는 올해 초 SK행복나눔재단의 ‘임팩트 투자’가 있었다. 지난해 말, SK행복나눔재단의 세상 콘테스트 성장기 사회적기업 부문에서 3등을 수상하면서 투자 대상자로도 선정됐다. 임팩트 투자는 일반 금융권에서 자본 조달이 어려운 사회적기업에 제도권 금융보다 우호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투자를 받으면서, 파머스페이스가 달성해야 할 사회적 성과 또한 분명해졌다. ‘총 판매하는 과일의 50%가 소농가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 윤영준씨는 “투자자가 요구하는 소농가(취약 농가)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편”이라면서 “좀 더 사업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한 카페업의 특성상, 취약 계층의 고용 또한 주요 사회적 성과 지표다. 현재 11명의 정직원 중 매장 운영을 담당하는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령자(55세 이상) 혹은 다문화 이주 여성이다. SK행복나눔재단 손대익PL은 “양측이 합의한 사회적·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때, 이자 감액 등 인센티브를 주면서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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