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전화 한 통으로 SOS하면… 골든타임 지키려 출동합니다

자살 예방하는 ‘SOS생명의 전화’
2년 동안 비상전화·관제 시스템 갖춰 나가 상담 전화 7배 늘고, 생존율 75.8%나 돼
민관합동 예방 체계 역할 톡톡히 하고 있어 꾸준히 사업 추진해 소중한 생명 구할 것

미상_사진_사회공헌_SOS생명의전화_2014

“삐~ 원효대교 남단. 출동! 출동!”

지난 8일 오후 4시 40분 갑작스럽게 울린 사이렌 소리. 서강대교 부근 한강변에 위치한 ‘119여의도수난구조대’의 풍경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원효대교에서 자살 시도자가 있다는 신고예요.” 서형근 지대장이 날랜 손으로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오렌지색 복장을 한 6명의 대원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여초. 홍성삼 서울소방재난본부 수난구조대장은 “수상에서의 ‘골든타임'(생사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초기시간)은 4분”이라며 “이를 넘기면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신고의 발원지는 원효대교가 아닌, 종로구 이화동의 ‘한국생명의전화’. 원효대교 남단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로 상담을 하던 중 들어온 위급 신호다. “남성인데, ‘도박 빚 때문에 죽고 싶다’고 했어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상담 도중 전화마저 끊어버렸어요.” 상담사의 전언(傳言)이다. 홍성삼 대장은 “그 신호에 수난구조대를 비롯해, 한강경찰대, 육상 구조대, 현장지휘대, 구급대, 경찰대 등 6개 조직이 동시에 출동한다”고 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구조대원들이 복귀했다. 서형근 지대장은 “불만을 호소하며 육상 구조대와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에 인계됐다”며 “우리가 물에서 대비해도 투신을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정말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11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남대교에 처음 설치했던 ‘SOS생명의전화’는 지난 3년간 총 48대(총 12개 교량, 이 중 16대는 서울시가 설치)로 늘며 민관합동 자살예방 시스템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작년 한 해 동안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걸려온 위기상담은 총 1164건.(누적 2062건) 이는 2012년에 비해 7배나 증가한 수치다. 소방, 경찰 등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구조에 참여한 건수도 152회에 이르며, 구조자 생존율(75.8%)은 2012년에 비해 7% 증가했다.

한강의 재난사고 구조현장. 2104년 상반기 수상구조 생존율은 79.4%로, 재작년(68.8%), 작년(75.8%)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한강의 재난사고 구조현장. 2104년 상반기 수상구조 생존율은 79.4%로, 재작년(68.8%), 작년(75.8%)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지난 2007년 출범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바로 이듬해부터 ‘자살예방 사업’에 주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를 면치 못하는 ‘자살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2008년부터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를 파트너 기관으로 삼아, 자살 유가족 지원, 자살예방 실무자 워크숍 등 총 45건의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SOS생명의전화’는 그런 경험을 자양분 삼아 탄생한 것. 이혜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팀장은 “자살을 사전에 통제하기 위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곳 중 하나인 한강 다리에 예방책을 마련하자는 방안이 나왔다”고 했다. 마침 지자체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홍성삼 서울소방재난본부 수난구조대장은 “2010년 하반기에 교량 투신사고가 크게 늘면서 시 차원의 대책을 간구했는데, 전문가들은 비상전화와 CCTV설치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했다”고 한다. 홍 대장은 직접 호주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방문해 그곳에 설치된 자살예방전화를 견학하기도 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던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재원을 마련했고, ‘한국생명의전화’가 실행기관이 됐다. 전화기가 민·관을 하나의 목적으로 뭉치게 한 도화선이 됐던 것. 처음부터 ‘궁합’이 잘 맞았던 건 아니다. 나선영 한국생명의전화 사무국장은 “소방 상황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다 보니 발빠르게 연결되지 않았고, 전화기 위치 표시가 통일되지 않아 헛걸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2년 간 알리고, 소통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체계가 완성된 것”이라고 했다. 2012년엔 마포대교와 서강대교에 CCTV 40대가 설치되면서 관제시스템도 구축됐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되는 다리에, 비상전화 상담원의 위기신호까지 더해지며 거미줄 같은 방어막이 펼쳐졌다. 실제로 지난해 교량 구간별 구조 실적을 보면, 마포대교가 전체 404건(34%)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미상_사진_사회공헌_재난사고구조대_2014

여의도 수난구조대에서 근무하다 육상 구조대로 옮겨 4년간 활동하고, 올해 4월 복귀한 오쾌봉 대원은 “비상전화와 관제시스템으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됐더라”며 “우리 보람은 오로지 구조에 성공했을 때 얻어지는 것인데 덕분에 일하는 보람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홍성삼 대장은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목격자들이 위험 상황을 빠르게 신고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자살 징후가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우리 쪽에서 먼저 상담원을 부르기도 한다”며 “단순히 상담전화가 아니라, 민관합동 예방 체계의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지금까지 2062명의 생명을 지켜냈다”며 “앞으로도 생명보험사들의 기본정신인 생애보장과 생명존중 정신에 입각한 예방사업을 꾸준히 추진하여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미처 구조되지 못하고 응급실로 이송되는 자살 시도자를 위해 작년부터 응급의료비 지원도 시작했다. 이 역시 민관협력 체계다. 이혜영 팀장은 “한 해 자살 시도 끝에 응급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연간 4만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이 중 8%만이 상담 및 정신 치료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재발의 위험도 크다”고 했다. 재단의 응급의료비를 지원받는 환자는 자동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정신보건사들에게 연계돼 8주간 모니터링과 정신과 치료 등을 받는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