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그린피스 “꿀벌 집단 폐사 막으려면 여의도 1000배 규모 꽃·나무밭 필요”

국내 꿀벌의 집단 폐사를 막으려면 꿀벌을 위한 꽃과 나무밭을 30만ha(헥타르) 이상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의도 면적의 1000배에 달하는 규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학교 산업협력단은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내 꿀벌 집단폐사를 막는 데 필요한 꽃과 나무밭 면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보고서다.

지난 9일 경북 포항 북구 야산에서 꿀벌 한 마리가 활짝 핀 찔레꽃의 꿀을 따고 있다. /뉴스1
지난 9일 경북 포항 북구 야산에서 꿀벌 한 마리가 활짝 핀 찔레꽃의 꿀을 따고 있다. /뉴스1

최근 국내에서는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겨울 꿀벌 78억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이 일어났다. 지난해 9~11월에는 100억 마리가, 올해 초에는 약 140억 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국내 양봉 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꿀벌의 화분매개 경제적 가치는 약 5조8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화분매개에 의존하는 농작물 생산량은 약 270만t으로, 전체 농작물 생산량의 17.8%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살충제 남용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면서 “국내에서는 벌의 먹이가 되는 꽃과 나무인 ‘밀원식물의 부족’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벌은 아까시나무, 밤나무, 유채 등 다양한 식물의 꿀과 꽃가루를 섭취해 면역력을 강화한다.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영양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이 둔화하고 수명이 단축되며 생식 능력도 저하된다. 또 월동기에 충분한 양의 탄수화물을 비축하지 못하면 기아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면역력이 약해진 벌들은 살충제, 기생충, 바이러스 등 외부 요인에 더욱 취약해진다.

세계 벌의 날을 앞두고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공원, 가로수 등 공공 녹지공간에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서울시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벌의 날’을 앞두고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공원, 가로수 등 공공 녹지공간에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서울시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꿀벌에게 영양분을 제공할 꽃과 나무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원면적은 1970~80년대 47만8000ha에서 2020년 14만6000ha로 감소했다. 약 70%가 줄어든 것이다. 보고서는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밀원자원의 감소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소 30만ha의 밀원면적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현재 국내 꽃·나무밭은 15만ha인데 약 2배로 늘려야 한다. 세계적인 벌 생태학 권위자인 데이브 굴슨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 교수는 “이 목표가 실제로 달성된다면 벌을 비롯한 많은 화분매개체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밀원식물 중에서도 토종 식물을 최대한 많이 심어야 생물다양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린피스는 밀월면적 확보를 위해 ▲국유림·공유림 내 다양한 밀원 조성 ▲도심 생활권에 화분매개 서식지 확대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 설립 등을 제안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벌을 가축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화분매개체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꿀벌의 집단 폐사는 기후위기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기후위기 대응에도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린피스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벌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수립되도록 정부 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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