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휴대폰 활용해 우간다 청년들 의견 담으니 정책과 사회가 바뀌었다

유니세프 이노베이션 센터 소장 샤라드 사프라
지난 20년 많은 NGO서 자금 쏟았지만 효과 미비
우간다 청년들 의견 내는 ‘유 리포트’가 대표적 혁신 사례
바나나 전염병 지역 맵 만들어 3800억원 수출 손실 막기도

“지역·주정부에서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가 당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샤라드 사프라 유니세프 이노베이션 센터 소장. /주선영 기자
샤라드 사프라 유니세프 이노베이션 센터 소장. /주선영 기자

1만6803명의 우간다 청년들로부터 SMS(문자메시지) 응답이 모였다. IBM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은 즉각적으로 결과를 취합했다.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50%에 이르렀다. 우간다 지도 위, 메시지가 도착한 지역과 응답 내용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이 칠해졌다. 5일 후, 또 다른 질문이 26만명의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지역정부가 교육 서비스를 좀 더 효과적으로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곧 주관식 답 6600개가 모였다. 반복적으로 응답한 단어가 크게 표시되는 ‘단어 맵’이 그려졌다. “더 많은 학교가 필요하다” “격려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답들에 힘이 실렸다. 언론사의 선거용 설문조사 이야기가 아니다. 우간다에서 일상적으로 오가는, 문자메시지 기반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유 리포트(U-Report)’ 이야기다(‘U-Report’에서 오가는 설문 내용과 결과는 http://www.ureport.ug/ 에서 확인 가능하다).

‘유 리포트(U-Report)’가 만들어진 건 2011년. 유니세프 우간다 국가사무소에 ‘이노베이션 랩(Innovation Lab·혁신연구소)’에서였다. 유니세프는 지난 2009년 사상 최초의 혁신연구소를 우간다에 만들었다. 당시 우간다 사무소 소장이었던 샤라드 사프라(Sharad Sapra·사진) 박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년간, 많은 국제기구, NGO에서 개발 분야에 엄청난 자금을 들이부었습니다. 실제 바뀐 부분도 많죠.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은 겁니다. 유니세프 내부에서도, 지금까지 ‘많은’ 아이에게 도움을 줬지만, 여전히 ‘모든’ 아이가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졌고요.”

68년의 역사, 전 세계 190여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아동 전문 국제기구에서 혁신은 어떻게 이뤄져왔을까. 지난 10일 코이카와 국제빈곤퇴치기여금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사프라 소장은 “우간다의 유 리포트(U-Report)와 같은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우간다는 전체 인구의 60%가 청년이지만, 실업률은 45%에 달했습니다. 많은 청년이 분노와 무기력감을 안고 있었고, 지역 곳곳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졌죠. 당장 일자리를 만들거나 직업교육을 하는 대신, 목소리가 없던 청년들에게 목소리를 낼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지원 방식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죠.”

청년들 대부분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것에 착안, 문자메시지에 기반을 둔 서비스가 구축됐다. 청년들이 ‘유 리포트(U-Report)’를 통해 전송되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2년 반 만에 우간다 청년 27만명이 유 리포트에 등록했다. IBM 리서치 연구소와 협력해, 쏟아지는 질문과 의견은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통해 자동 분류했다. 몇몇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사에선 그 주의 리포트 결과를 정규 꼭지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프라 소장은 “유 리포트가 우간다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제 많은 정치인이 소위 ‘전자 미팅’이라고 해서 의회로 가기 전 유 리포트를 통해 정책에 대한 청년들 의견을 묻습니다. 한번은 우간다 정부가 청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유스 펀드(Youth Fund)를 제공키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유 리포트를 통해 ‘청년들이 접근하기에 장벽이 너무 높다’는 의견이 모여 펀드 대출 조건이 바뀌기도 했죠.”

우간다의 성공을 발판으로, 현재 이 프로그램은 잠비아, 나이지리아에 도입됐고, 스와질랜드를 비롯, 13개국에서도 시작할 계획이다. 유니세프의 문자메시지 기반 기술 디자인을 개발한 크리스토퍼 파비앙과 에리카 코치는 지난 2013년 미국 타임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니세프에서 혁신이 시작된 지 5년. 현재 전 세계 15개국에 ‘유니세프 이노베이션 랩’이 만들어지고, 265개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이들 중 혁신적인 해결 사례를 적용·확장하기 위해 케냐와 뉴욕에도 각각 ‘이노베이션 센터’가 만들어졌다. 현재 유니세프 뉴욕본부 산하 이노베이션 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사프라 소장은 “특정 지역,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큰 변화를 일굴 수 있는 ‘확장 가능성(scale-up)’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현재 진행되는 265개 프로그램 중 대부분이 문자메시지 기반을 둔 프로그램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실제로 우간다에서는 둘째로 큰 수출품인 바나나 전염병이 유행할 당시, 유 리포트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내에 우간다 지도 위에 전염병이 도는 지역을 표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몇 달이 걸릴 일이었다. 월드뱅크에 따르면, 유 리포트가 막아낸 수출 손실 액수는 무려 3억7000만달러(약 3800억원)이었다.

“그간 개발협력 분야에 너무 많은 자금과 인력이 중복됐다고 봅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같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단체의 자금이 중복되는 일이 잦았죠. 유니세프 이노베이션 센터의 모든 기술은 ‘오픈소스(open source)’가 원칙입니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대학이나 민간기업, 정부,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힘을 모아 ‘혁신’을 키워나갈 겁니다. 한국의 역할도 큽니다. 수혜국에서 이제는 돕는 나라가 된 한국이야말로 ‘혁신’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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