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④ 금고 바닥난 지자체… “100년 지나도 아동학대 문제 해결 안돼”

아동학대 예방체계 이대로 괜찮은가 (4)아동학대 예산 실태 및 지자체 전수조사

충청남도와 경상남도. 서울시 면적의 14배, 17배에 달하는 이 지역의 아동학대 문제는 각각 아동보호전문기관 2곳이 관할한다. 그러나 지원받는 예산은 천지 차이다. 경남은 11억4570만원인 반면, 충남은 4억8550만원에 불과하다. 보조받은 예산이 6억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아동학대 상담 인력도 다르다. 경남에선 지난해 각각 3명씩 상담원을 6명 늘려 23명이 됐다. 이전까지 상담원 17명이 63만9730명의 아동을 담당해야 했다. 반면 충남은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다. 상담원 16명이 충남 전역 40만2947명의 아동을 맡는다. 충청남도 관계자는 “올해 내포에 9명 정원의 아동보호전문기관 한 곳을 신설할 예정이라, 예산을 3억 이상 증액했다”며 “예산이 꼭 필요한 사업인 건 알지만 확보하기가 쉽진 않았다”고 했다. 김성규기자_그래픽_아동학대_지자체별아동보호전문기관에주는지원금총액_2014 운이 좋아 아동학대 문제에 돈을 많이 쓰는 지자체에 태어나면 보호받을 확률도 높아지고, 운이 나빠 예산 지원이 거의 없는 지역에 태어나면 그만큼 확률이 낮아지는 상황. 지역에 따라 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왜일까.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예방 사업이 전적으로 지자체 예산에 맡겨 있다 보니, 지자체별 재정 상황이나 의지 여하에 따라 예산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지자체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 데다, 정부에서 ‘최소 얼마 이상은 아동학대 사업에 써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자체가 ‘알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예방·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중앙정부에서 맡아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돈줄’을 쥔 기재부는 여전히 “아동학대 예산을 중앙에서 편성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요지부동이다.

◇우리나라 아동 보호에 ‘쥐꼬리’만 한 예산, ‘아동 보호’는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 예방에 편성한 총예산은 얼마일까. 남윤인순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중앙정부에서 아동학대 관련한 편성 예산은 2013년도 10억6700만원. 2014년에도 11억6200만원에 불과하다. 933만 우리나라 아동 한 명당 124원가량 쓰이는 셈. 이마저도 일반회계가 아닌 법무부 범죄피해자기금에서 나오는 ‘특별예산’이다. 2014년도 정부 예산 357조7000억원, 이 중 쥐꼬리만 한 예산만이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쓰이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알아서’ 부담하도록 떠넘겨져 있는 것.

미국은 어떨까. 지방자치가 발전한 미국에서도 아동 관련 예산만큼은 중앙정부가 쥐고 지방에 편성한다. 중앙정부가 전체 예산의 50%를 내리면, 주 정부·지방정부에서 각각 25%씩을 ‘매칭’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미국 보건부 산하 아동국에서 ‘아동학대 예방·보호’로 집행한 예산은 80억달러(약 8조2000억원). 미국 전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아동학대 예방·보호’ 사업으로만 16조4000억원이 쓰인 셈이다. 7400만명 미국 아동에게 1명당 22만원 이상이 책정된 셈. 중앙정부가 예산을 꽉 잡고 진두지휘하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든 ‘동일한 수준’의 아동 보호·예방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경남과 충남, 기관 수는 2곳으로 같지만 지원받는 보조금은 6억원 이상 차이

아동에 제공되는 혜택도 지역별 편차 커

중앙정부 올해 아동보호 예산 11억

미국은 8조… 중앙정부가 맡아 지휘

우리나라도 국가가 통합 관리해야

◇중앙정부 “예산 줬다” vs 지자체 “복지 수요 증가, 지자체 부담 가중… 여력 없어”

“오래된 베테랑 직원들도 ‘더는 버틸 여력이 없다’고들 사표 낸다.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앞두고, 작년 대비 신고 건수가 50%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인력이나 기관 지원은 하나도 늘지 않고, 아동이 죽으면 책임만 쏟아진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지난 20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부 아동학대예방대책 긴급토론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 관계자 100여명은 하나같이 “인프라·인력 충원 없이 더는 아동학대 사업을 해나갈 여력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는 ‘돈줄’ 쥔 기획재정부의 요지부동 입장을 재차 확인한 자리였다. 토론회에 불참한 기재부 관계자는 주최 측을 통해 “아동학대 사업을 지방에 이양할 때 재원을 함께 넘겼으니 지자체에서 하는 게 맞다”며 “지자체에서 예산이 부족해 인프라 충원 지원을 못 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2005년 국고 보조 사업들이 지방으로 이전될 때, 각 지자체에 ‘아동학대 예방 사업’등에 쓰라고 ‘세원’을 일정 정도 내려줬으니(분권교부세), 나머지 필요한 예산은 지자체에서 책임질 문제라는 것.

지자체 실제 여건은 어떨까. 더나은미래에서 아동학대 사업을 담당하는 16개 시·도 관계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담당자들은 한목소리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로 지방 재정 여건은 계속해서 악화되는 상황에서, 아동학대에 들어갈 수 있는 돈 자체가 제한적이라 여력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10년간, 지자체에서 맡아야 할 복지 사업은 늘고 대상은 세분화됐는데 분권교부세 액수는 거의 늘지 않아, 도비 부담만 계속 늘어왔다. 재정 여건 자체가 열악한 상황에서 담당자들도 한 푼이라도 더 따오려고 난리지만 쉽지 않다.”(경상 지역 관계자)

“재정 자립도가 낮은 도일수록 빈곤층이나 노인 인구도 많아 복지 대상자도 많은 법이라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 이런 지자체일수록 방임 같은 아동학대가 발생할 가능성도 큰데, 지방 금고가 바닥이 보이는 상황에서 ‘아동학대 예방 사업’만 지원을 늘릴 여력이 없다.”(충청 지역 관계자)

한 지자체 담당자는 “‘아동학대 예방 사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예산실을 설득하기도 어렵고, 기껏 통과했대도 의회에서 예산이 깎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담당자로서도 답답하지만, 현재 지방 여건 자체가 열악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아동 안전 보장, 국가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

지자체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최소한 ‘국고 매칭 사업’ 정도는 돼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한데, 전적으로 지자체에 맡겨서는 100년이 지나도 아동 관련 사업이 우선순위로 올라가긴 쉽지 않다”고 했다. ‘국고 매칭 사업’은 지자체에서 빚을 내서라도 사업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예산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 국비 없이 지자체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복지 사업 제쳐 놓고 아동학대 분야에만 전격적으로 지원을 확대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아동 정책 사업 중에서도 결식아동 급식이나 소년·소녀 가장 지원 등 당장 먹고사는 데 관련한 사회복지 사업은 그나마 낫지만, ‘아동학대 예방·지원 사업’은 지자체의 관심도나 이해도가 훨씬 낮아 예산 따기가 훨씬 어렵다”고 답했다. 그나마도 내년부터는 분권교부세로 들어왔던 세수가 일반 지방세로 통합되는 상황. 지자체 관계자들은 “예산 증액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 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문제를 국가에서 해야 한다는 건 안정적 재정 확보라는 측면 이상으로 ‘아동 안전’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결국은 우리나라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겠다는 ‘정부 의지’와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지, 재원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 정부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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