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마음의 병 앓는 아이들 편히 쉴 곳, 대한민국에 달랑 한 군데

음지로 숨는 정신장애 청소년
성인시설, 안전·일탈 문제로 청소년 입소를 엄격히 다뤄
미국선 지역·당사자 연계해 사회적응력 향상 훈련하기도

강인석(가명·16)군은 3년 전부터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증상을 보였다. 매일 이유없이 교실에 있는 화분과 유리창을 부수곤 했다.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 잠만 자기 일쑤였다. 담임교사가 “특수 학급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놀림거리가 돼 왕따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루는 갑자기 삽을 들고 주변을 향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남자 선생님 5명이 달려들어서야 간신히 제압했다. 결국 문제아로 찍힌 강군은 다니던 중학교를 나와야 했다. 이후 학교 네다섯 곳을 전전했지만 비슷한 문제를 일으켰다. 강군은 현재 어머니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대안 학교를 알아보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재활 교육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전문가들은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재활 교육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 조사(2011)를 따르면, 정신분열증·조울증·우울증 등을 앓는 정신장애인 수는 10만3894명이다. 이 중 만 29세까지의 정신장애인 수는 약 3532명이다. 하지만 민주당 이목희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7∼19세 아동·청소년 1077만명 가운데 29만9033명이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수치보다 85배가량 높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적인 낙인을 두려워해 정신장애 판정을 거부하거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다”면서 “정신장애 청소년을 위해 체계적인 재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각지대에 내몰린 정신장애 아동·청소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장애 청소년은 갈 곳을 찾지 못해 성인 사회 복귀 시설이나 청소년 수련관, 복지 상담 센터 등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비상’에 상담을 신청한 부모님 중 다수가 지역 시설을 수소문하다가 적합한 곳을 찾지 못해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였습니다.”

김미혜 청소년사회복귀시설 ‘비상’ 시설장이 말했다. ‘비상’은 정신 장애를 앓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회성 재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 복귀 시설이다. 전국 243개의 사회 복귀 시설 중 청소년 전용 시설은 비상이 유일하다. 김 시설장은 “성인 시설 중 상당수가 정신장애 청소년을 받아들일 때 안전 사고나 일탈의 문제가 발생할 수 이다는 점을 들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서 “부모와 장애당사자가 동의서, 서약서 등을 작성해야 성인 시설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전국에 설치된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약 180여개다. 이 중 아동과 청소년을 담당하는 소아 청소년 정신건강센터는 2011년 현재 42개로, 약 23% 정도다. 이마저도 장기적인 사례 관리나 재활 교육보다는 정신 건강 문제 진단이나 치료비 지원에만 집중된 상황이다.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소아청소년정신보건팀 김진형 팀장은 “최근 일반 시민에게도 정신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중증 정신장애인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은 정작 비중이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서울시는 초등학생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치료시설 ‘아이존’을 11개 설립해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지만, 중·고등학생을 위한 시설은 전무하다. 지방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시설조차 없다. 정신장애인 청소년의 재활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없다. 현행 정신보건법과 아동복지법은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를 지원하는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

◇정신장애 청소년을 위한 전문 인력과 모니터링이 시급해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초반까지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아동 청소년 630만명 중 3분의 2가 적절한 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거나, 프로그램 이용료가 비싸서였다. 이에 미국 연방정부는 1992년 ‘약물 남용 및 정신 건강 서비스국’을 설립하고 이듬해부터 ‘아동 정신 건강 서비스 사업'(Children’s Mental Health Initiative)을 실시했다. 이 사업은 지역 사회에 정신 건강 서비스 체계를 개발하고 이를 장애인 당사자에게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와 선생님, 카운슬러, 목사 등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팀을 구성해 주기적으로 프로그램 계획을 논의·수정한다. 이외에도 정신장애인이 사회에 원만히 적응할 수 있도록 낮에는 사회생활을 하고, 밤에는 시설에서 거주하는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 등의 재활 훈련 기관도 미국과 영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김은영 슈타이너학교 대표 교사는 “정신장애인은 충분한 관리와 재활 교육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서 “정신과 치료만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 풍토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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