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운동으로 새로 시작된 삶… 운동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장애인선수로 산다는 것
장애인 선수 1만2000명 중 실업팀 소속은 166명뿐 대부분은 생업과 운동 병행
전문적인 훈련공간 부족해 경기용 아닌 시설서 훈련

일본의 ‘구니에다 신고(Shingo Ku nieda)’ 선수. 유년시절 척수종양으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아시아 선수 최초로 휠체어 테니스 종목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호주오픈’에서는 유럽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 선수는 기업 스폰서 계약만으로 한 해 10억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영국 장애인 육상의 샛별인 ‘조니 피콕(Jonnie Peacock)’이나 ‘엘리 시먼즈(Ellie Simmonds)’ 같은 스포츠 스타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로 꼽힐 만큼 큰 인기를 누린다. 열심히 노력해 열매를 맺으면 비장애인과 똑같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 해외의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 우리는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살아가는 현실을 들여다봤다.

① 장애인 탁구 종목의 김공용 선수(대전 대표) /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제공. ②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1만2000명의 장애인 운동선수 중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는 선수는 1% 정도에 불과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① 장애인 탁구 종목의 김공용 선수(대전 대표) /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제공. ②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1만2000명의 장애인 운동선수 중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는 선수는 1% 정도에 불과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운동만 하면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장애인 사격의 윤상민(29) 선수는 군복무 시절 이라크 파병에 다녀온 후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전역 이후 증상이 나타난 탓에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없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살게 됐다. 장애인사격연맹 측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들게 운동하고 있는데, 메달을 따내 연금을 확보하는 것이 윤 선수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휠체어 테니스 종목의 박주연(36·스포츠토토) 선수는 산업 재해로 장애인이 됐다. 좌절을 딛고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이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현영홍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 감사는 “생계 고민 속에서 어렵사리 운동을 해오던 선수였는데 산재 보상마저 끊기면서 운동을 포기할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때마침 실업팀이 생기면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고, 단기간에 세계랭킹 10위권까지 오르며 내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메달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선수는 약 1만2000명 정도. 이 중 운동만 할 수 있는 선수는 전국 40개 실업팀에 소속된 166명이 전부다(2013년 8월 기준). 장상만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부장은 “대회 때문에 훈련원 합숙을 하면 직업을 포기하고 와야 하는데, 이 때문에 대회가 끝난 후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자립하기 힘든 구조다. 선수들은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메달을 따내 연금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최승균 ‘2013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보치아 종목 담당관은 “보치아 종목 같은 경우 자립이 힘든 중증 장애인이 주로 참여하기 때문에 모든 선수가 사생결단의 자세로 금메달을 노린다”며 “국제대회에 나가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운동하는 외국 선수들과 경직된 자세로 운동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고 했다. 가뜩이나 수가 적은 장애인 스포츠 유망주가 양궁같이 메달에 유리한 종목으로만 몰리는 것도 그래서다. 장상만 부장은 “메달을 따면 연금 주는 나라는 사실 별로 없다”며 “연금 없이도 충분히 운동하며 자립할 수 있는 복지 체계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간·시설 부족에 냉담한 시선까지…

‘2012런던패럴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활약했던 국내 장애인 육상의 간판 홍석만(37) 선수. 장애인 수영 평영 종목 아시아신기록 보유자로 런던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한 임우군(26) 선수. 두 선수의 공통점은 ‘홀로서기’다. 홍석만 선수는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홀로 연습하며 세계 최정상까지 올랐고, 임우군 선수 역시 비장애인들이 쓰는 수영장에서 개인 연습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

국내 장애인 스포츠 분야 전문가들은 “종목을 막론하고 체육 공간과 전문 시설이 너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은 모든 공공 체육시설에 장애인 전용시설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유도 차임벨’ ‘수영장 버블사인 장치'(시각장애인에게 레인 끝 지점이 근접했음을 알려주는 장치) 등 장애 유형별 편의시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내 장애인 스포츠 실업팀의 한 감독은 “국내 장애인 경기장을 보면 장애인 체육시설 기준이 아닌, 장애인 시설 기준에만 간신히 맞춘 경우가 많다”며 “경기용 휠체어의 크기나 선수들의 동선을 모두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상만 부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발효 후 장애인 인구 30만명 이하 지자체에서는 장애인 체육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법이 생겼으나 실제로는 예산 등의 이유로 준수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스포츠 저변 확대는 우리 사회의 비용 줄이는 일

“사고 후 한동안 약과 술로 버텼다.”

1994년 교통사고로 휠체어 신세가 된 이형용 대한장애인수영연맹 상임부회장은 척추를 다친 후유증과 통증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진통제값만 한 달 10여만원에 이를 정도. 이 부회장은 “약을 남용해 전체적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수영은 고통과 약값을 모두 덜어주는 묘수였다. 이 부회장은 “운동 덕분에 약을 완전히 끊고, 쾌적한 컨디션을 유지하며 일에도 더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이 맘껏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할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고 했다. 운동에 참여한 장애인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구성원으로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투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 인식 개선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2008베이징패럴림픽’보다 129% 증가한 시청률을 기록, 역대 가장 흥행한 장애인 스포츠 대회로 평가받는 ‘2012런던패럴림픽’. 폐막 후 영국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에서 응답자 중 66%가 “장애인올림픽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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