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글로벌 사회공헌… “베푼다는 생각 버리고 현지 주민 존중해야”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12인 간담회
값싼 노동력·풍부한 자원 개발도상국 찾는 기업들 그만한 사회적 책임 요구
현장 조사·사전지원 통해 해당 국가의 필요 찾아내 기업의 비즈니스와 접목
임직원 공감대 바탕으로 일자리 제공·시설 정비 등
현지 지역사회 변화시키고 비영리단체와 손 잡아야

글로벌 사회공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올해 삼성전자의 2분기 해외 매출 비중은 사상 첫 90%를 돌파했다. LG전자도 전체 매출의 85%를 해외시장에서 달성했고, 상반기 현대차의 해외 생산 비중도 61.4%에 달한다. 값싼 노동력, 풍부한 자원을 찾는 기업들의 발길이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집중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 8월 29일 더나은미래가 주최한 ‘글로벌 사회공헌 간담회’에서는 각 기업의 글로벌 CSR 담당자들이 다양한 전략과 고민들을 쏟아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은 다비육종, 두산중공업, 삼성전자, 삼익악기, 세아상역, 아시아나항공, LG전자, GS칼텍스, 포스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자동차(가나다순) 등 12곳이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글로벌 사회공헌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 12곳이 함께 모여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글로벌 사회공헌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 12곳이 함께 모여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역량·현장 니즈·공감대…’교집합’을 찾아라

글로벌 사회공헌에 대한 기업 담당자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해당 국가의 필요와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을 어떻게 접목할 것이냐’였다. 기업들은 몇 차례에 걸친 현장 조사와 사전 지원을 통해 두 영역의 교집합을 찾았다. 의류 제조·수출 기업인 세아상역은 2010년부터 미국 국무부, 미주개발은행, 아이티정부와 총 3억달러를 투자해 아이티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엔 현지 주민들에게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아이티 산업단지에 의류 공장을 지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부터 캄보디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취항지의 세계문화유산 보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해남 아시아나항공 사회공헌팀 차장은 “전력 부족과 비용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기에, 주변에 태양광 가로등과 관광 안내소를 설치했다”면서 “거리가 밝아지자 오토바이 사고도 줄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면서 주변 상가들의 영업 이익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2009년 베트남에 ‘두산비나’를 설립함과 동시에 글로벌 CSR을 시작한 두산중공업은 안빈 섬에 해수 담수화 설비를 기증했다. 매일 100t 규모의 물을 안빈 섬에 공급하고 대규모 의료봉사도 실시한다. 이승용 두산중공업 CSR팀 차장은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지역사회가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아웃풋(Output·결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 내부의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현대차는 2011년부터 가나에 자동차정비기술고등학교 ‘드림센터’를 설립했다. 교육 커리큘럼은 천안정비연구소 직원들이 만들었고, 가나 현대차 대리점에서는 학생 선발부터 프로그램 운영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신재민 현대차 사회문화팀 과장은 “임직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글로벌 사회공헌 전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졌다”고 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농업훈련원을 설립한 포스코는 훈련원 옆에 어린이집을 세웠고, 직원들은 짐바브웨 아이들과 일대일로 결연 맺어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양지원 포스코 사회공헌팀 담당자는 “직원들이 아동 후원을 통해 농업훈련원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더라”면서 “포스코가 비즈니스보다 CSR을 먼저 진행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통관 절차와 문화 차이를 극복하라

개도국별로 정치·경제·문화 상황이 전혀 다른 만큼, 글로벌 사회공헌에는 시행착오가 따른다. 기업 담당자들은 ‘운송비·통관 절차’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국내 최대의 돼지육종(우수한 품종 개량 및 보급) 기업인 다비육종은 2004년 베트남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양돈 기술을 전수한다. 박성원 다비육종 부설연구소 과장은 “통관 절차가 지연될 때마다 돼지용 냉장 백신이 못 쓰게 돼버리고, 현지에서 구한 백신은 효과가 떨어져서 사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윤경림 현대엔지니어링 차장은 “캄보디아에 설립한 유치원에 직원들이 학용품과 선물을 보내려 했는데, 운송비가 더 비싸고 배송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와 미얀마에서 보건 의료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민석 LG전자 CSR 팀장은 “콜레라 백신을 몇 만 명에게 대규모로 접종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약’으로 만들어서 운송 부피를 줄이고 백신의 변질을 막았다”라고 했다. 박해남 아시아나항공 차장은 “출국 전에 해당 국가 복지부에서 요구하는 성분 분석표를 미리 제출하거나 세관에 공탁금을 걸고 환급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포스코는 직원들이 결연 아동에게 보내는 엽서를 현수막 한 장에 전부 프린트해서 보내는 방법으로 운송비를 절감하고 있다. 삼성전자 정의헌 글로벌협력팀 차장은 “삼성전자는 현지 법인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 물품을 조달하는게 대부분이라 어려움이 덜하다”고 말했다.

경제·문화 차이도 극복해야 할 산이다. 현대건설은 2010년부터 콜롬비아·모잠비크·케냐 등 8개 국가에서 11개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산간 오지 마을에서 사회공헌을 하다 보니, 회계 처리나 법률 관계를 해결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다. 현대건설 CSR 담당자인 김세원 대리는 “오지마을에 교육복지센터를 짓는데 무리한 공사 금액을 요구하거나 인허가가 나지 않아 계획보다 1년 늦게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업 간 협력 모델 개발하자

간담회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던 기업 담당자들은 “각 기업의 자원과 노하우를 모아서 함께 글로벌 사회공헌을 진행하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경림 현대엔지니어링 차장은 “여기 모인 기업들부터 먼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추진해보자”고 했고, 정호석 세아상역 과장은 “그럼 우리가 단체 티셔츠를 만들어드리겠다”며 거들었다. 이승재 삼익악기 커뮤니케이션팀 이사는 “인도네시아에 악기 공장을 설립하고, 청소년들에게 악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면서 “혹시 악기가 필요하거나 문화예술 교육이 필요한 기업이 있다면 도와드리겠다”고 제안했다. 박해남 아시아나항공 차장도 “글로벌 사회공헌을 할 때, 항공·운송 관련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라”고 덧붙였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 NGO와의 파트너십도 강조됐다. 박은경 GS칼텍스 사회공헌팀 과장은 “기업이 현장에 계속 머무를 수 없다 보니, 장기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비영리단체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면서 “적정기술과 현장 전문성을 가진 굿네이버스 덕분에 태양광 보급으로 시작했던 사회공헌이, 현지 주민들이 직접 기술력을 가지고 태양광 램프를 생산하는 자립 모델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사회공헌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업 담당자들은 “시혜적인 태도를 버리고 주민들을 존중하는 말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글로벌 사회공헌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진행=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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