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황무지에 싹 튼 ‘자립’의 꿈

LG희망마을, 에티오피아 현장을 가다

우물·양계위원회 등 설치해
마을 공동기금 적립하고
위생·직업 교육 등 지원…
自立에 초점, 지속 발전 도모

지난달 19일, 에티오피아 오로미아주 ‘LG희망마을’ 시범농장에서 만난 주민들. 농장에서는 두기데데라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한 농작물들을 실험적으로 재배한다. /LG전자 제공
지난달 19일, 에티오피아 오로미아주 ‘LG희망마을’ 시범농장에서 만난 주민들. 농장에서는 두기데데라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한 농작물들을 실험적으로 재배한다. /LG전자 제공

“우리 마을로 다시 돌아올 거예요.”

지난달 19일, 에티오피아 오로미아주 두기데데라(Dugededera) 마을에 위치한 ‘LG희망마을(LG Hope Com munity)’ 시범농장 대문 앞에서 ‘뜻밖의 손님’ 버투칸(Birtukan·28)씨를 만났다.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마을 모습을 동영상에 담고 있었다. 돈을 벌러 중동의 오만으로 떠난 지 3년, 가정부로 일하다 3주간 휴가를 받아 고향에 왔다고 했다. “이곳은 정말 ‘황무지’였어요. 아무것도 없었다고요(empty)!” 그녀는 밀, 떼프(Teff), 양파 등 시범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곡식과 푸른 채소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버투칸씨는 “마을에서 깨끗한 물도 사용할 수 있고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good mobile charge)도 생겨 좋다”면서 태양광 전기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경비초소를 가리켰다. 이곳은 더 이상 버투칸씨의 기억 속에 있던 ‘빈곤의 마을’이 아니었다.

◇’공짜’ 아닌 ‘자립’에 방점 찍은 글로벌 사회공헌, 빈곤마을의 ‘희망’이 되다

3년 전만 해도 두기데데라 마을엔 물도, 전기도 없었다. 주민들은 식수를 구하기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걸어다녔고, 시장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2013년, LG전자가 이 마을을 ‘자립형 농촌마을’로 개발하는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면서 마을이 달라졌다. 전현진 LG전자 CSR팀 과장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8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지 상황을 고려해 농촌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파트너로는 에티오피아에서 2005년부터 국제개발 사업을 펼치던 NGO 월드투게더가 협력했다. 먼저 지하 150m 깊이 공동 우물을 만들었고, 마을과 주요 도로를 잇는 3.3㎞ 연결도로를 설치했다. 이듬해에는 5㏊ 규모(약 1만 5000평) ‘시범농장(model farm)’을 조성했다. 또 시범농장 내에 20㎾ 태양광발전 시설도 설치, 농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친환경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 결과 마을 가구의 월 평균 소득도 올랐다. 과거에 약 500비르(3만원)에서 농장을 만든 후 800비르(4만8000원) 정도로 60%가량 증가했다.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초가집 옆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라고요.” 전 과장의 말대로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양철 슬레이트로 만든 지붕들이 햇빛에 반사돼 번쩍거렸다.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민 자립’에 초점을 둔 것이 핵심이다. 물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원조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물 20ℓ 당 0.25비르(15원)를 지불하고, LG전자는 이에 3배에 해당하는 0.75비르(45원)를 매칭 펀드로 조성한다. 이 기금은 마을 내 ‘우물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해 우물 보수 및 운영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인 자금은 1만3500비르(81만원)가량. 이은태 월드투게더 에티오피아 지부장은 “깨끗한 우물이 소문나 인근 마을에서도 물을 사러 올 정도”라면서 “각종 주민위원회를 구성해 마을을 위해 각자가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시범농장에서는 마을 주민의 주식인 밀, 떼프 외에 양파, 당근, 감자 등 원예작물도 실험적으로 재배한다. 시장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면서, 마을 주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다. 여기도 ‘공짜’는 없다. 시범농장 일에 참여한 주민은 본인이 재배한 원예작물 수익의 60%를 가져가고, 40%는 마을 개발 기금으로 적립한다. 올해 초에는 적립된 기금으로 마을 소유 ‘탈곡기’도 구매했다. 단, 농장에서 성공적으로 재배한 작물은 무료로 씨앗을 보급해 자가 소유의 텃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밀이나 떼프 말고는 다른 작물을 길러본 적이 없었어요. 시범농장 일에도 처음엔 반응이 시큰둥했어요. 그런데 주먹만 한 감자가 수확되니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예전엔 시범농장에서 일손이 부족해 주민들을 부르면 일당을 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자기네 소를 직접 몰고 와서 농사를 지어요.”

월드투게더에서 원예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현지 코디네이터 데제네(dejene·28)씨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인근 학교에서 ‘스쿨 가드닝(school gardening)’ 수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부터는 ‘양계 소액 대출사업’도 시작했다. 1차로 양계 관련 교육을 수료한 23가구에 닭 53마리와 함께 물, 모이 수급기, 계사 등 제반 시설을 갖추는 비용을 지원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구들은 교육받은 대로 닭을 키워 계란을 판매한 수익의 70%를 마을 내 ‘양계위원회’에 적립해야 한다. 지난 7개월간 시범 운영 결과, 평균 산란율은 50%로, ‘양계 사업’으로만 1가구당 395비르(2만3700원)의 소득을 올렸다. 지난달에는 양계위원회를 ‘양계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켰다.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 마케팅을 펼치며 판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다.

◇보건·위생 교육, 직업 전문 학교 설립, 10년 후를 위한 미래 인재 키운다

“자, 여러분. 오늘은 동영상으로 손 씻는 법을 배울 거예요. 화면에 주목하세요!”

두기데데라 학교 학생들이 교실 앞 물탱크 앞에서 ‘손 씻기 교육’을 실습하고 있다. /LG제공
두기데데라 학교 학생들이 교실 앞 물탱크 앞에서 ‘손 씻기 교육’을 실습하고 있다. /LG제공

지난달 20일 오전, 시범농장 바로 옆에 위치한 두기데데라 학교에서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열린 프로그램은 지난달부터 LG전자가 국제백신연구소(이하 IVI)와 함께 벌이고 있는 ‘질병 예방 홍보 캠페인’으로, 오로미아주 센터파 지역 22개 초등학교를 거점으로 삼아 주민 6만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보건 교육 사업이다. 마을의 지속적인 발전은 ‘농가 소득 증대’만으로만 이뤄지진 않는 법. 이 때문에 LG전자는 마을의 교육 및 위생, 보건 사업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날에도 보건 전문가가 두기데데라 학교를 방문해 오전, 오후 조로 나눠 전교생을 대상으로 손 씻기 등 위생 교육 및 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케베데(Kebede·12)군에게 “오늘 배운 것을 가르쳐달라”고 하니 6단계에 맞춰 손 씻는 방법을 정확하게 보여줬다. 그는 “집에 가서 여동생과 부모님에게 알려줄 것”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에티오피아의 보건 상황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2014 UNDP 인간개발지수 자료에 따르면, ‘유소년 보건(health : children and youth)’ 분야에서 187개국 중 173위로 최하위에 속했다.

지난 2월 IVI와 LG는 콜레라 예방을 위해 오로미아주 시골의 콜레라 취약 지역 주민 4만여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백신 접종을 실시했다. 사용된 콜레라 백신은 한국과 스웨덴 정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의 지원으로 IVI가 개발해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용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경구 백신이다. IVI의 제롬 김 사무총장은 “질병 예방 캠페인과 백신 접종 사업은 아프리카의 공중 보건 개선에 소중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 ‘LG-코이카 희망 직업학교(LG-KOICA hope TVET College)’를 개교했다. 마을, 보건 사업에 이어 직업 전문 교육까지 앞장서기로 한 것. LG전자는 학생 전원에게 3년에 걸친 교육과정을 무료로 제공하고, 월드투게더가 학교 운영을 맡고 있다. 특히 학생 1명당 컴퓨터 1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학급당 학생 수도 25명으로 제한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첫 입학생 모집에 220여명이 몰려 약 3대1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곳 직업학교 교육의 우수함도 벌써 증명되고 있다. 교장을 맡고 있는 데레제(Derege·43)씨는 “에티오피아에서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국가 시험(COC)을 통과해야 한다”면서 “1기생들의 통과율(98.59%)이 다른 직업학교 평균 통과율(65%)보다 30% 이상 높다”고 말했다.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기술자’의 꿈을 꾸게 됐어요. 제 꿈은 최고의 전자 수리 기술자(Best technician)가 되는 겁니다. 이후에는 창업도 할 수 있겠죠?” 모거스(Mo gus·26)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한 인물. 그의 말에서 에티오피아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디스 아바바 =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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