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컨설팅은 방향제시 해결사가 아닙니다

업그레이드 필요한 사회적기업 컨설팅
사회적기업의 辯
사업설명만 1시간… 컨설턴트도 자주 바뀌어 대기업 방식 제시해 우리완 맞지 않더라고요
컨설턴트의 辯
경영관련 지식이 없어 컨설팅 진행이 안 됐어요 브로셔 제작·홈페이지 구성만 물어와 당황했죠

#1. 2009년, 교육관련 사회적기업 ‘공신’은 한 프로보노(Probono·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식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 단체로부터 온라인서비스 관련 컨설팅을 받았다. 1~2주에 한 번씩, 몇 개월 동안 주말에 시간을 내어 프로보노 단체를 찾아갔지만 진전은 없었다. 강성태 대표는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도움을 얻으려고 했지만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매번 1시간씩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담당 컨설턴트도 종종 바뀌는 등 아쉬움이 많았다”고 했다. 환경분야 예비사회적기업의 H대표는 “컨설턴트 중 상당수가 한 번 정도 현장에 방문해 30분 상담을 진행한 후 보고서 하나만 제출하면 컨설팅이 끝”이라며 “제시하는 전략도 인력·자본이 적은 사회적기업엔 적용하기 힘들거나 방향성이 맞지 않은 대기업 방식이라 실효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2. 국내의 한 대기업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재무·세무·회계 등의 전문컨설팅을 진행했다. 2주 동안 지방을 돌아다니며 경영컨설팅을 진행했던 K담당자는 “폐지를 주워 내다 파는 사업을 하는 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차변, 대변 등 재무제표 보는 방법도 모르는 등 경영관련 지식이 전무해 전문컨설팅을 전혀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 컨설팅지원사업에 참여 중인 L컨설턴트는 “브로셔를 만들어 달라, 홈페이지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등 컨설팅업체가 모든 걸 다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인 줄 안다”면서 “컨설팅은 방향이나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데 이런 요청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사회적기업_컨설팅_2013지난해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사회적기업 지원 예산은 1760억. 경영·세무·회계 등 경영컨설팅과 정보 제공을 지원하는 예산은 2010년보다 33.5% 증액된 약 40억원을 집행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컨설팅 지원사업에 참여한 (예비)사회적기업도 2012년에는 약 550여곳, 올해 6월말까지는 350여곳에 이른다. 고용노동부가 3년째 진행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도 1000여곳에 가까운 창업팀에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해 ‘사회적기업 컨설팅’을 지원하겠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2012년 한화도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문가 경영컨설팅을 지원했다. 올해부터는 신한·우리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회계·금융 전문가를 통해 무료로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예비)사회적기업가 대표들은 “정부·지자체·기업 등 다양한 기관에서 컨설팅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체감하는 효과는 크지 않아 아쉽다”고 말한다.

◇초기 단계 경영컨설팅에 대한 전폭적인 기대는 ‘금물’

실효성 있는 컨설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국내에서 자립에 성공한 사회적기업 종사자들은 “사업 초기엔 경영컨설팅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2002년 지역자활센터에서 동고동락하던 3명의 기초생활수급권자와 함께 청소사업을 시작한 이철종 대표. 그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은 설립 10년 만에 5개 자회사의 직원만 230명이고, 60억원의 연 매출을 올렸다. ‘함께일하는세상’도 지난 10년간 15차례 이상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엔 기업경영을 해본 경험·지식이 전무해 수용되지 않는 컨설팅이 많았다”며 “4~5년 사업 경험을 쌓은 후 ‘조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방향성이 뚜렷해질 때 받아야 활용도가 높다”고 조언했다.

1세대 사회적기업의 대표주자인 ‘아름다운가게’는 지난해만 약 2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금은 사회적기업을 컨설팅하는 사회적기업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3년 전에는, 필리핀의 재생가게인 ‘세군다마나’에서 노하우를 배우러 한국에 찾아오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도 사업 초기에는 미국의 자원재활용 매장 ‘굿윌스토어’, 영국 재사용판매 매장인 ‘옥스팜’ 등 비전이 비슷한 관련업체를 돌아다니며 자문을 받았다. 아름다운가게의 박병혁 정책국장은 “컨설팅에 전폭적인 기대를 하는 것은 위험성이 있지만 선진 성공 사례를 배우려는 유연한 자세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사컨설팅이든 전략컨설팅이든 조직이 30명 이상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어야 제대로 기능한다”며 “2~3명 직원을 고용한 사회적기업에 삼성의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사회적기업을 컨설팅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자리잡은‘아름다운가게’는 선진 사례를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자세와 전문가의 컨설팅 노하우를 내재화하는 것을 성공요소로 꼽았다. /아름다운가게 제공
사회적기업을 컨설팅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자리잡은‘아름다운가게’는 선진 사례를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자세와 전문가의 컨설팅 노하우를 내재화하는 것을 성공요소로 꼽았다. /아름다운가게 제공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 줄 프로보노가 있다면 ‘금상첨화’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이하 세스넷)가 2009년 (예비)사회적기업 188곳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기업 경영욕구와 전문가경영자문서비스에 대한 기초조사’에 의하면 96%의 기업이 경영상 애로 사항을 경험하고 있으며, 자주 경험하고 있다는 비율도 60%에 달했다. 상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세스넷은 SK, 법무법인 태평양,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 등 기업,학교와 함께 마케팅·홍보·법무·디자인 등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갖춘 프로보노들이 사회적기업을 도와주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이대준 프로보노는 놀이교육관련 사회적기업 ‘놀이나무’를 도와준 지 벌써 4년째다. ‘놀이나무’는 경력단절여성·청년실업자 등을 고용하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박물관과 놀이를 결합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다. 그는 사업을 구상하는 전략기획자가 되었다가 광고 모델에 대한 아이템을 고민하는 홍보팀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놀이나무’의 이원영 대표는 “다른 컨설턴트는 사업 파악에 시간을 다 써버리고 도움이 되는 해결책은 제공하지 못한 경우도 많고 단발성에 그쳤다”면서 “이대준 프로보노와는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경영 위기 때에도 문제 해결책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스넷의 채윤경 매니저는 “다방면의 역량을 가진 한 프로보노가 매칭된 사회적기업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이상적인 컨설팅 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고 했다.

◇전문 컨설턴트·프로보노의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라

사회적기업 사이에서는 “컨설팅 지원에 집중하기보다는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남양주사회적기업협의회 이성민 이사는 “직원이 자신의 기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제일 탁월한 경영전략을 세울 수 있다”면서 “교육·자격증 취득 등으로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사업 아이템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함께일하는세상’ 이철종 대표도 “어떤 컨설턴트도 조직의 전략과 비전을 짜주진 못한다”며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 같아요?’가 아닌 ‘우리가 이 방향으로 가려는데 걸림돌이 있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들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름다운가게는 성장 비결 중 하나로 ‘내부컨설턴트 육성’을 꼽았다. 박병혁 국장은 “얼마 전에 인사평가제도 관련한 컨설팅을 받고 업적평가·역량평가 두 가지 카테고리로 진행하는 것을 제안받았지만 우리 내부문화에 맞게 ‘역량평가제도’만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기업, 정부, 재능기부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컨설팅에 적극적인 태도로 참여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들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컨설팅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판로지원팀 나연정 대리는 “기업들은 컨설팅이 만능해결사가 아니며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하고, 컨설턴트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정기·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컨설팅을 지원받은 기업의 의견을 수렴해 현장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계획들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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