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책임있는 기업, 존경받는 리더] ① 김영기 LG CSR 부사장

“CSR, 1년에 한 번 건강검진해야회사 경영도 더 좋아질 수 있어”
글로벌 사업무대 서려면 사회공헌은 이제 필수
건강한 CSR 발전 위해 자체 체크리스트 만들어
요즘엔 신제품 기획부터 CSR 담당자도 참여해 사회적 이슈 담으려 노력
기업이 못보는 사회문제 외부에선 볼 때 많아
냉철한 조언 받으려고 고객·투자자 등 포함한 자문회의 꾸준히 열어

미상_사진_CSR_김영기LGCSR부사장_2013멀게는 방글라데시 공장사고·유럽의 말고기 파동부터 가깝게는 남양유업·CU편의점 사태까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에 대한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거세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CSR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의 리더를 만나는 기획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LG그룹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총괄하는 김영기 ㈜LG CSR부사장이다
LG그룹은 최근 자체 CSR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7개의 국제 기준을 참고해 1300개의 지표를 발굴했다. 유니레버·필립스·바스프·GE 등 18개 글로벌 혁신 기업의 CSR 보고서를 벤치마킹했다. 이중 중복되거나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을 걸러내 150개 지표를 구성했다. 국내외 사업장에서 이를 시범 실시한 후, 최종 83개의 지표를 결정했다. 올 초 이뤄진 작업이 지난 5월 끝났고, 7월부터 국내 전 계열사와 해외 일부 지사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김영기(58·사진) ㈜LG CSR부사장은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1979년 럭키화학(현 LG화학)에 입사한 이래 34년째 LG그룹에서 근무해온 ‘LG맨’이다.

―왜 CSR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나.

“LG의 CSR 건강도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계열사별로 CSR 민감도가 차이 난다.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계열사에선 ‘사업하기도 바쁜데 왜 CSR 하느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LG전자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CSR을 하지 않으면 아예 사업하기조차 힘든 계열사도 있다. 내부 콘퍼런스나 워크숍을 통해 경영진들이 ‘글로벌 사업을 하려면 이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고경영진들은 이제 우리한테 ‘CSR 체크리스트를 개발하라’고 얘기할 정도로 변했고, CSR을 기업경영의 필수요소로 보고 있다.”

―”CEO들이 관심 없으면 CSR을 하지 말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도 있다. 각 계열사 CEO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우선 구본무 회장님께서 CSR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지지해주셨다. 지난 1년 동안 사장단회의, 임원 워크숍 등 다양한 협의체에서 LG CSR의 기본방향을 공감하는 교육을 했다. 외부평가가 아닌, 자가 점검을 선택한 이유는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다. 자칫 평가에 치중하면, CEO가 바뀔 경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 초기에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거짓으로 보고하는 등 진단이 부실할 수 있지만, 결국 이 지표의 목적은 ‘자가 진단’을 통해 CSR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연간 최소 1회 이상 자가 진단해서 진행상황을 점검하면 결국 회사가 건강해지고, 성과도 좋아질 것으로 본다.”

―”CSR을 하면 결국 회사에 좋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CSR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게 하는 건 ‘사회적 압력’이다. LG전자의 경우 CSR을 지키지 않으면 거래가 중단되고 비즈니스를 못한다. 그게 결정적인 단초다. CEO들이 그걸 느끼기 시작했다. 외부의 압력도 있지만, 기업 내부의 경영철학·신념·가치 등도 작동한다. LG그룹 구인회 창업자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기업도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말을 했다. 1960년대 정부가 LG에 군수산업을 해보라고 했는데, 구인회 창업자는 ‘나는 사람 죽이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끝냈다. LG의 경영철학은 ‘정도(正道)경영’이다. 우리는 신입사원 교육과 해외주재원 교육을 할 때 CSR 교육프로그램을 반드시 듣도록 한다.”

LG생활건강의 멘토 스쿨(왼쪽)과 LG전자의 사회공헌 활동. /LG생활건강·LG전자 제공
LG생활건강의 멘토 스쿨(왼쪽)과 LG전자의 사회공헌 활동. /LG생활건강·LG전자 제공

―CSR은 투자인가, 비용인가.

“CSR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사원을 뽑아서 교육시킬 때 쓰고 버릴 자원이라면 비용이지만, 그 사람을 잘 키워 더 좋은 리더십을 갖게 만들면 이건 투자다. CSR을 통해 법을 지키면 회사가 건강해지고,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면 이는 당연히 투자 아닌가.”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마케팅부서의 입김은 세지고 CSR 부서의 입김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회적 이슈와 경제적 이슈를 함께 해결하는 CSV(Creative Shared Value·공유가치창출)가 그래서 강조된다.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CSR 이슈’를 묻도록 한다. LG생활건강의 ‘비욘드’는 저렴한 중저가 화장품인데, 화장품 제조의 필수과정인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 매년 몇 십 %씩 성장한다. LG전자는 지난해 ‘말라리아모기 퇴치용 에어컨’을 출시했다. 나이지리아는 연간 30만명씩 말라리아로 죽어간다. 나이지리아 공과대학과 함께 실험을 통해 말라리아모기의 작동을 멈추고 인체에는 무해한 특수주파수가 에어컨에서 나오도록 했다. 다른 제품보다 30% 더 잘 팔린다. 개발 초기부터 CSR 담당과의 협업이 이뤄졌다. 비즈니스만 하는 직원은 경제적 이익이나 더 싸게 만들기만 고민하는 데 반해, CSR 담당자는 빈곤·질병·취약계층 등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해결하고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LG는 2010년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Union Social Responsiblity)을 선언했다. USR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성과는 무엇인가.

“입사 이후 30년 동안 노사관계를 담당해왔다. 2009년 노동조합과 함께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3개국을 방문했다.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워크숍과 CSR 공부를 하고, 2010년 1월 노조대의원대회에서 USR 헌장을 발표했다. 각 노조들이 ‘노동조합 윤리규범’을 만들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1년 동안 활동한 후 설문조사를 해보니 조직 몰입도와 직무만족도가 높아졌고, 이직 의사도 낮아졌더라.”

―이해관계자(고객·파트너·투자자·직원·정부·NGO 등) 자문회의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조언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노동, 환경, 소비자 등 분야별로 이해관계자 자문회의를 반기에 한 번씩 연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생각하는 중요도와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중요도가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2006년쯤 사회공헌 사업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휴대폰을 만들었다. 이해관계자 자문회의에서 ‘왜 일반폰이냐.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읽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또 4년 전쯤, 해외노동전문가가 ‘중국이나 베트남공장 협력사들의 노동이슈는 없느냐’고 물어보더라. 점검해보니 18세 미만 학생이 실습생으로 일하고 있어서 조치를 취했다. 작년 국제노동단체가 1년 동안 국내기업의 해외 협력업체에 위장취업, 어린 학생들의 노동이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해외 공장의 협력사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이해관계자 자문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CSR 보고서에 싣고, 다음 해에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지 표명하게 돼 있다.”

―최근 CJ그룹을 포함해 많은 기업이 검찰이나 공정위 수사를 받고 있다. ‘윤리적인 기업이 가능한가’라는 회의론도 나오는데, CSR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기업을 움직이는 기본 DNA는 이기심이다. ‘더 큰 기업을 만들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다’ 등등, 이기심이 없으면 누가 어려운 비즈니스를 하는가. 이것을 잘 작동시켜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기심과 ‘탐욕’의 경계선이 참 어렵다. 창업자들이 선한 마음으로 기업을 시작했더라도, 기업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보니 법의 경계선 칼날에서 왔다갔다 한다. 최근 대두되는 ‘경제 민주화’ 또한 이 탐욕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다. 인간의 이기심을 잘 작동시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이익도 얻는 비즈니스를 발굴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하다. 웨인비서 박사의 최근 저서 ‘책임의 시대’는 CSR을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책임(Coporate Sustainability and Responsibility)’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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