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美 선키스트·AP처럼… “협동조합은 자선 아닌 사업이다”

협동조합 대표 3인 좌담회

바야흐로 협동조합 설립 붐이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후 5개월 만에 1000개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결성됐다. 출자금 제한도 없고, 설립동의자 5명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 동네 빵집·시장상인·대리운전기사·퀵서비스 기사 협동조합을 비롯해 심지어 무속인 협동조합도 생겼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살아남느냐’다. ‘더나은미래’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준비 중인 3인을 만나 현재의 고민을 들어봤다. 좌담회에는 해피브릿지 송인창 이사장, 지역농업네트워크 박영범 대표,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경창수 이사장이 참여했다.

송인창 해피브릿지 이사장 /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 / 경창수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송인창 해피브릿지 이사장 /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 / 경창수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회= 주식회사나 사회적기업에서 협동조합으로 법인격을 전환했거나 전환 준비 중이다. 이유는 뭔가.

송인창= 2000년 창업자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이 300억원이 넘고, 직원이 100여명에 달했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도 늘어나니 첫 마음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신입직원들은 애초에 우리 창업자들의 미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변화를 고민하던 차에 협동조합을 알게 됐고, 회사가 더 커지기 전에 과감히 밀어붙였다.

경창수= 우리는 2000년도에 창립을 해서 13년째다. 직원은 70명가량, 연 매출은 30억 정도다. 2월 23일 전환 총회를 하고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지금의 의료시스템은 공급자인 의사가 많은 정보를 갖고 환자에겐 선택권이 없다. 또 기존 의료는 예방 사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자’라는 취지로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비보험·비급여 항목에 대한 적절한 가격으로 진료받을 수 있다.

박영범= 우리는 농업경영 컨설팅을 하는 곳이다. 1998년 다섯 명이 시작할 때, 우리의 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당당히 연봉 1200만원을 버는 것이었다. 1인당 200만원씩 모두 800만원의 종잣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3년쯤 지나 밀린 연봉을 지급하고 주식회사 설립 최소 자본금 5000만원도 마련했다. 10년 후 지역농업네트워크 40명, 자회사 컨설팅그룹 10명 등 직원이 60명 이상으로 늘었다. 대표와 신입직원의 연봉 차이가 두세 배 생기고, 지분율도 바뀌었다. 첫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먹고사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키는 데 협동조합만큼 좋은 조직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 ‘협동조합기본법’ 설명회마다 사람들이 북적인다. 협동조합에 대한 환상도 늘고 있는데, 직접 운영을 해보니 어떤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없나.

송인창= 우리는 협동조합 유형 중 ‘노동자(직원)협동조합’이다. 주주들은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 사업이 잘 안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다. 내가 직접 이탈리아 볼로냐를 다녀왔고, 이후 직원 6명을 프랑스와 영국의 협동조합 현장으로 연수를 보냈다. 지금은 고민의 수준이 달라졌다. 협동조합이 잘되려면 조합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잘 이뤄져야 하는데, 직원들은 직장이 월급을 받는 공간이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안 한다. 한 달에 한 번 ‘조합의 날’을 정해 쉬면서 협동조합 강사를 불러 교육을 받고 있다.

박영범= 누구나 주인 되기를 바랄 것 같지만, 주인이 되면 의무가 많아진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월급이 잘 나오니까, 거기에 익숙해진 것이다. 협동조합은 분명 경제조직이다. 경영을 해서 수익을 남기지 않는다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협동조합 붐도 버블이 정리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송인창=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환경이 주식회사 중심이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도 자본운용이 필요한데, 은행이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다. 우리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니까 중소기업 지위가 없어지면서 은행 혜택이 없어진다고 하더라. 은행과 거래를 하려면 신용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은행이 협동조합에 신용평가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할지 걱정이다. 유럽은 조합원이 낸 출자금을 50%까지 자본으로 인정하는데, 만약 출자금을 모두 부채로 보면 어느 협동조합도 돈을 빌릴 수 없다(출자금은 조합원이 탈퇴할 때 되돌려줘야 한다).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사회= 스페인 축구클럽 FC바로셀로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선키스트’, 미국 ‘AP통신사’ 등은 모두 협동조합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상위 50개 기업 중 15개가 협동조합이다. 우리도 이미 농협과 수협, 생협, 신협 등을 비롯한 ‘맏형’ 격인 협동조합이 있고, 협동조합 생태계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협동조합 경제도 큰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창수= 최근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의 아동 폭력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데, 협동조합을 통해 보육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우리는 사업 초기 조합원 수가 300명이었는데, 지금은 6000가구에 달한다. 2만명 가량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10년쯤 지나니 궤도에 올랐다. 주식회사는 의사결정이 빠르지만, 협동조합은 1년 사업계획을 정한 후 밑에서부터 토론을 거쳐 이사회의 집행을 거치고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하지만 기반이 잡히면 경기를 별로 타지 않는다. 일반협동조합은 15%, 사회적협동조합은 30%씩 법정 적립금을 쌓는데, 이것은 협동조합이 100년, 200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도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박영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의 CEO들은 연봉을 신입직원의 70배 이상 갖고 가지 않았다. 협동조합의 이상도시인 ‘몬드라곤’은 그 차이가 6배밖에 안 된다. 우리는 경영이 탁월한 CEO들에 대한 환상이 있다. 하지만 애플이 10조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소식에서도 알 수 있듯,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협동조합은 돈이 가치척도인 경제시스템에서, 사람이 가치척도인 경제시스템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사회= 앞으로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해 법적·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하는 점이 있다면.

경창수= 협동조합 1000개가 5개월 만에 만들어진 건 한국적인 특성 같다. 협동조합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100% 망한다. 자연적으로 정화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안산은 아이쿱, 두레생협, 안산의료사회복지협동조합이 3년간 협동하고 있다. 신협에서 건물 2, 3층을 무상 대여해줘서 쓰고 있고, 아이쿱과 두레생협도 출자를 해서 함께 이용한다. 협동조합은 자선이 아니라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협동조합끼리 잘 연대해야 한다.

박영범= 1990년대식 고도성장 방식이 끝났다. ‘경제 민주화’ ‘복지’가 화두가 되는 건 저성장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저성장시대엔 많이 벌어서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덜 쓸까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육아를 함께하고, 방과후학교를 하고, 의료와 주택 등의 문제를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국가 예산이 아닌 민간의 참여를 통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좌파와 우파가 만나는 접점이다.

송인창= 협동조합은 절대 홀로 설 수 없으며, 홀로 선다고 비즈니스의 한 축 바퀴가 구를 수 없다.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고객들이 팔아주는 것도, 사업자금을 대주는 것도 아니다. ‘연합회’와 ‘연대’가 중요할 것 같다. 사업이 고도화된 한국 사회에서, 아직 협동조합은 사업체로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협동조합끼리 함께 힘을 합쳐 도와야 한다.
** 좌담회에 참여한 협동조합은…

해피브릿지

2005년 7월 설립된 외식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 주식회사로 출발해 국수나무·화평동 왕냉면·미야오 등 전국에 가맹점을 400여 개 거느리는 업체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은 2012년 기준 311억9000만원. 올해 2월 21일 직원 총 67명이 직원이 각자 1000만원 이상 출자금을 지불하면서 노동자 협동조합 전환을 선포했다.

지역농업네트워크

농식품 사업 경영 효율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농업활동가 5인이 ‘협동기업’ 형태로 1998년에 설립한 회사. 2012년 현재 약 60여 명의 직원과 컨설턴트가 일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2년에 걸쳐 내부적으로 협동조합 전환총회 절차 준비를 마쳤다. 최근 협동조합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2014년 일반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과 ‘동의학 민방연구회’가 모태가 되어 2000년 4월 22일에 창립했다. 2008년 7월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올해 2월 23일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총회를 가졌다. 2012년 기준 총 조합원 수는 5624세대, 총 출자금은 약 5억6000만원이다. 출자금 5만원을 지불하면 조합원 가입이 가능하며, 취약 계층은 출자금 지불이 면제된다.

사회=박란희 편집장

정리=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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