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정유진 기자의 기빙트렌드] ② 성공하는 온라인 모금의 비결

제목·스토리·사진으로 잠재적 기부자의 마음을 두드려라
눈길 가게 제목 바꾸면 목표 모금액 훌쩍 넘고 수혜자 직접 올린 사연이 네티즌 공감 더 얻어…
사회적 이슈 연계하면 모금·인식 개선까지 ‘일석이조’ 효과 낳아…

‘제목 전쟁.’ 최근 비영리단체들이 온라인상 모금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웹사이트,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활용한 온라인 모금이 활발해지면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한 매력적인 문구 찾기가 한창이다. 실제로 제목을 변경하자 모금액이 증가한 사례가 많다. 2008년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은 다음 ‘희망해’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을 위해 운영모금함을 마련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을 이듬해 “미아찾기모임 해체를 막아주세요”로 변경하자, 모금액이 약 3.5배 증가했다. 지난 2009년 대전 외국인 이주노동자 종합지원센터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코피노(Kopino·Korean과 Filipino의 합성어)’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다. “필리핀에 버려진 한국 아이들, 코피노를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을 달았을 때는 기부 참여율이 저조했지만, “코피노 아기, 분유값 없어 설탕물 먹어요”로 변경하자 엄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탁아동을 돕는 모금 캠페인에서는 “나도 다른 친구처럼 소풍 가고 싶어요”란 문구를 “제가 소풍을 가면 할머니가 굶어요”로 바꾸자 목표 기부액을 금세 달성했다. 육심나 다음 사회공헌팀장은 “네티즌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언급했기 때문”이라며 “스토리텔링에 앞서 모금 타이틀을 100만번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일러스트=양인성 기자
일러스트=양인성 기자

네티즌들은 모금하는 ‘기관’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특히 수혜자가 자신의 사연을 직접 이야기할 때, 네티즌들은 더 쉽게 마음을 연다.

지난해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해피빈 모금함에 예비 대학생 여진이의 편지를 공개했다. 여진이는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게 된 자신의 사연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네티즌들은 “나도 부모님을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 군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했는데, 공감이 가서 작게나마 돕는다”면서 기부에 동참했고, “지금 한국장학재단 장학금 신청 기간이니 시도해보라” “대학교에 기초생활수급자 장학금이 있다”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총 5368명이 기부해 등록금 약 500만원이 모였다. 유혜진 해피빈재단 기획운영팀 대리는 “인물 중심의 스토리는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서 “신체장애를 가진 기초생활수급자 한 분이 아동 급식비를 기부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분의 이미지와 기부 사연이 메인 화면에 공개되자 단시간에 목표액이 모였다”고 귀띔했다.

사회 이슈와 연계해 캠페인을 진행하면, 모금은 물론 인식 개선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지난해 무더위로 노년 취약층이 사망하는 사건이 속출하자, 아름다운재단은 온·오프라인상에서 ‘폭염 체험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직 국내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겨울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 그러나 취약 계층에겐 난방비뿐 아니라 여름철 냉방비도 큰 부담이다. 당시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의 기부로 독거노인 약 1490명이 선풍기와 모시 이불 등 여름나기 물품을 지원받았다. 홍리 아름다운재단 홍보팀장은 “언론의 ‘폭염 경보’와 모금 캠페인이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면서 “취약 계층엔 특정 계절에 국한되지 않는 도움이 필요하단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전달한, 의미 있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네이버 ‘해피빈’, 다음 ‘희망해’, 아름다운재단 ‘개미스폰서’ 등 국내 대표 크라우드펀딩(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 사이트 전문가들은 “백마디 말보다 사진, 영상 하나의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해피빈에 청각장애 인식개선 모금함을 만든 사단법인 ‘사랑의 달팽이’는 사진 한 장의 위력을 경험했다. 모금함 메인 화면에 달팽이 저금통 사진을 올렸을 때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거의 없었는데, ‘인공와우(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귓속 달팽이관에 삽입하는 의료기기)’를 착용한 아동의 사진이 노출되자 900만원이 모금된 것. 유혜진 해피빈재단 기획운영팀 대리는 “기부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모금 콘텐츠가 ‘환아’이기 때문”이라면서 “모금 콘텐츠가 달라도 아동 관련 사진과 사연이 소개되면 대체로 일주일 만에 목표 금액에 도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부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사진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인 사진을 게재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켜, 네티즌들이 자세한 스토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모금함 페이지를 이탈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혜자의 신상 정보가 공개된 모금함에는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걱정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이어질 정도로, “네티즌들의 기부 문화가 갈수록 성숙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제목, 스토리, 콘텐츠를 갖춘 모금함은 반드시 잠재적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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