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 캠페인 |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① “날 때린 가족, 원망도 했지만… 세상의 응원에 힘을 냈어요”

[캠페인|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1) 학대의 상처 벗고 웃음 되찾은 나현양
이모의 욕설·폭행에 가출… ‘나 같은 건 죽어야지…’ 문제아로 방황했던 아이
전문상담원 도움으로 정서·진로 치료 받고 미술 치료하던 교수가 재능 발견해 적극 지원
아티스트 컨설턴트 목표… 하루 20시간 그림 그려 예고 진학하고 미대 준비
이모와도 만나서 화해

아동 학대로 한 아이가 죽으면, 선진국에선 사회 전체가 들썩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아동복지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모에게 맞아 아이가 숨져도, 사건은 금방 잊힙니다.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은 더합니다. 배고파서, 아파서,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전쟁이 나서…. 각종 이유로 아이들은 다치고 죽습니다. 아동 문제에 대한 인식, 그것은 문맹국과 비문맹국을 가르는 잣대입니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국내외 아이들의 현실을 짚어보고, 지구촌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줄 방법을 찾아볼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전라도의 한 그룹홈에서 만난 김나현(가명·17)양은 큼지막한 빨간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미술 학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그림을 그린단다. 이날도 나현양은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았다. 팔레트에서 초록색 물감을 찾아 슥슥 붓을 움직였다. 이파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배추가 완성됐다. 나현양은 지난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실기 점수는 항상 상위권이다. 나현양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문제아’였다. “그땐 정말 세상이 미웠어요. 제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었어요. 날 버리고, 때리고, 욕했던 가족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나현양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사연을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10년간 학대받던 나현양이 꿈을 찾았다. 숨은 조력자들과 체계적인 상담·치료 시스템 덕분이다. 미술학원에서 나현양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10년간 학대받던 나현양이 꿈을 찾았다. 숨은 조력자들과 체계적인 상담·치료 시스템 덕분이다. 미술학원에서 나현양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학대에 신음하는 아이들… 작은 폭력이 큰 폭력을 낳는다

나현양은 여섯 살 무렵 혼자가 됐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던 날, 병원에는 나현양뿐이었다. 가족도, 친척도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여러 사람에게 사기를 쳐서, 친척들 돈으로 피해 보상을 했대요. 엄마가 돈을 갚지 않자 그때부터 친척들과 ‘원수 사이’가 된 거죠. 두 살 때 돌아가셨던 아빠도 알고 보니 그런 경제적 갈등 때문에 자살하셨다고 들었어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나현양은 이듬해 이모 집으로 갔다. 이모는 나현양을 볼 때마다 ‘썩을×”넋 빠진×’이라고 욕을 했다. “엄마를 닮아 너도 거짓말만 하는 ‘도둑×'”이라며 재떨이, 컵 등 주변에 잡히는 물건으로 온몸을 때렸다. 알코올 중독자인 이모부는 매일 술병을 집어던졌다. 사촌 오빠들도 “널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집을 나가라”고 구박했다. 나현양은 이모 집에 있었던 10년을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 같은 건 죽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들었어요. 모두 속으로 제 욕을 하는 것 같았어요. 어느 날 이모부가 던진 술병에 머리를 맞았는데 더 이상 아프지 않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을 뛰쳐나왔어요.”

이모집에서 되도록 멀리 떠나고 싶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전라도로 갔다. 피씨(PC)방, 음식점, 정비소 등을 돌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쇼핑백 접기, 양말 뒤집기, 손바느질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밤에는 피씨방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옆 창고에서 잠을 잤다.

미상_그래픽_우리아이들을지켜주세요_아동학대_2013◇주변의 관심과 체계적인 시스템… 학대 아동 살린다

그로부터 세 달 뒤, 피씨방으로 누군가 나현양을 찾아왔다. 전라도의 A아동보호전문기관 소속 상담원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모 집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현양은 “간섭 말라”며 상담원들을 쫓아냈다.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상담원이 피씨방을 찾아왔다.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상담원은 매일같이 나현양을 찾아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상담원의 정성에 나현양도 마음을 열었다. “사실 너무 외롭고 무서웠거든요. 누군가 제게 계속 관심을 갖고 이야길 들어준다는게 정말 힘이 됐어요. 피씨방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니, 저도 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한 달 뒤, 나현양은 짐을 챙겨 A기관으로 찾아갔고, 기관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에 들어갔다.

국내에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총 44곳.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 조사를 나가 상담을 하고,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지원한다. 나현양의 경우 기관 인터넷 홈페이지로 신고가 들어왔다. 인터넷 카페에서 나현양과 채팅을 하던 지인이 사연을 듣고, 홈페이지에 상담글을 올린 것. A기관 상담원은 “주변의 작은 관심이 아동의 인생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 10년 동안 이모 집 주변 이웃들 모두 나현이의 학대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다”면서 “신고를 꺼리는 문화가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담원이 나현양을 찾아간 날부터 A기관에서는 매주 회의를 했다. 인근 청소년 상담센터 실무자, 아동복지학과 교수, 미술치료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향후 상담과 치료, 진로 등 세부 계획을 세웠다. 보통 15~20회에 끝나는 치료를 나현양은 26회 동안 받았다. 오랜 기간 처벌이 계속되면서 나현양이 학대에 이미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이다.

치료를 담당한 홍선미 원광대 보건·보완의학대학원 교수는 “나현이에게 가해진 폭력이 ‘훈육’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의 ‘학대’였음을 인식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나현이가 이야기 중에 정리돼있는 필통을 계속 다시 정리하는 등 정서가 불안정했습니다. 학대 아동들의 그림엔 공격성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나현이는 친척에 대한 강한 분노를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표출하고 있었어요. 이 공격성을 그림을 통해 발산하도록 치료했습니다. 나현이와 이모를 함께 치료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학대 행위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아동이 가정에 돌아갔을때, 더 심한 우울증이나 공격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아연 굿네이버스 재능기부
조아연 굿네이버스 재능기부

◇숨은 조력자들, 아이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다

치료가 끝날 때쯤, A아동보호전문기관은 기관과 연계돼있는 학교, 복지재단, 의료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학교는 나현양의 전학을 도왔고, 복지재단은 교육비를, 의료기관은 건강검진과 치료비를 지원했다. 나현양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건 미술 치료를 진행하던 홍 교수였다. 그녀는 “나현이가 선을 쓰는 솜씨가 남달랐다”면서 “미술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자신감을 실어줬다. 정해진 시간 외에도 수시로 만나 치료와 진로 상담을 병행했다.

꿈을 발견하자, 나현양도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매일 인근 도서관에 들러 미술작품이 실린 전문서적을 펼쳤다. 책 3권에 실린 모든 작품을 도화지에 그대로 그렸다. 예고 입시까지 딱 3개월 남은 시점, 나현양은 매일 재래시장을 돌면서 현장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하루 20시간씩 그림을 그린 나현양은 결국 예고에 합격했다.

그러나 예고 합격은 끝이 아니었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워본 적 없는 나현양은 기초가 부족했다. 이에 그룹홈 교사는 나현양의 그림을 들고 인근 미술학원을 찾아다녔다. 나현양은 “입시로 유명한 한 미술학원 원장님께서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해주셨다”면서 “학원 선생님은 매일 저녁마다 영어, 수학 과외를 무료로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생활비와 재료비, 교육비 등은 굿네이버스와 한국로터리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 12월에는 가출 후 처음으로 이모와 만났다. 그룹홈에서 열리는 연말 파티 때였다. 상담원의 오랜 설득 끝에 이뤄진 자리였다. 나현양은 “처음엔 망설여졌지만, 이모를 만나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이모가 욕하고 때릴 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 말씀드렸어요. 이모도 ‘훈육이라 생각했는데 학대였다’면서 사과하셨어요. 저도 잘못한 부분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요. 1월엔 이모집에도 다녀왔어요. 이모부, 사촌 오빠도 제가 꿈을 찾은 것을 축하해줬고요.”

나현양의 꿈은 ‘아티스트 컨설턴트’다. 재능을 가진 예술가를 발굴해, 그들이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업이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우리들이 용기를 가지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굶고, 매 맞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동 학대를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신고해주세요. 아동학대 신고 전화는 1577-1391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한 아이를 구하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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