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모두 ‘짝’ 찾으러 갔을 때 우린 ‘이웃’을 돌보러 갔습니다

나눔대첩 기획자 송주현씨
노숙인 체험해보니 자립기반 마련 시급해
자비로 월세방 얻어주고 직업 갖도록 약속 받아
대학 졸업 후 활동 나서 노인·아이 30여명 돌봐
‘나눔대첩’ 입소문 타며 지난 연말 500여명 모여 방한용품 등 선물 전달
“각자가 주위 사람을 돌보는 것”이 내 꿈

“12월 24일, 솔로는 모두 여의도공원으로 모입니다.”

지난해 연말, 대규모 단체 미팅 행사였던 ‘솔로대첩’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당초 ‘솔로대첩’은 서울을 포함, 전국 14곳에서 3만5000여명의 참가자를 예상했지만 2860명 정도만 참여하면서 싱겁게 끝이 났다. 한편, 페이스북에서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자는 취지의 ‘나눔대첩’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전국 21개 지역에서 5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이들은 김밥, 방한용품 등 선물을 준비해 노숙인들에게 전달했다. 영등포·수원·대전·부산 등 몇몇 지역에서는 ‘나눔소(小)첩’을 열어 나눔의 손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토요일 저녁, ‘나눔소첩’ 현장을 찾았다. 영등포역 카페 한쪽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한 손에는 유성매직과 액체화이트를, 한 손에는 귤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 작년 ‘나눔대첩’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영등포역·쪽방촌 노숙인들에게 재밌는 그림이 그려진 귤을 나눠주는 ‘나눔 커뮤니티’ 자원봉사자들이다. 한상대(29) 팀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부산의 한 젊은 청년이 ‘나눔대첩’ 행사를 기획하고, 그가 3년째 노숙인들과 독거노인을 돕는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쪽방촌 할머니들은 송주현씨(사진 왼쪽)의 또 다른 가족이다. / 지난 16일, 영등포역 '나눔 커뮤니티'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나눠 줄 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쪽방촌 할머니들은 송주현씨(사진 왼쪽)의 또 다른 가족이다. / 지난 16일, 영등포역 ‘나눔 커뮤니티’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나눠 줄 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눔대첩’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작년에 신학대를 졸업하고,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종교 강사를 하는 송주현(25)씨. 송씨는 수업이나 강연이 없는 시간에는 쪽방촌의 독거노인을 뵙거나, 부산역 등지의 노숙인을 찾아간다. 한 달 최소 생활비 30만원을 제하고는 모두 이들의 생활비나 월세 보조금으로 사용한다. 부모님은 송씨가 다른 신학생들처럼 목사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사회활동가’에 가까운 길을 선택했다. 그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씨는 총학생회장직을 맡아 학교 홍보 차원에서 나눔 행사를 기획했다. 부산 영도지역의 독거노인 50가정을 찾아 연탄도 나르고, 쌀·김치 등 식료품을 전달했다. 지역 언론사도 동행해 의례적으로 사진도 찍었다. 촬영이 끝나고 “또 올게요”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한 할머니가 송씨의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하신 것. 송씨의 마음엔 뜨거운 울림이 생겼다.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친구 30여명을 모아 ‘나눔계모임’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3000원씩 모아 독거노인, 보육원, 노숙인 등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돕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얻는 것이 더 많았다.

“혼자 사는 할매들 소원이 뭔지 아세요? ‘아이고, 저 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네’ 이 말을 듣는 거예요. 봉사자들이 찾아가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요. 한 할매집에 들렀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를 열더니 ‘주스부터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한 달 반 동안 먹지도 않고 재워둔 거였어요. 나 때문에 산 거니깐 내가 먼저 먹어야 한다는 거죠. 눈물이 핑 돕디다.”

3년째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데이트 장소는 쪽방촌 할머니들의 집이고, 데이트 비용을 아껴 쌀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린다. 2010년 성탄절, 송씨는 여자친구와 ‘나눔데이트’ 장소로 부산역을 찾았다. 돈을 모아 김밥과 수면양말을 사고 손편지를 써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줬다. 그 현장에서 송씨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할배가 쓰레기통을 막 뒤지더니 케이크 상자를 꺼냈어요. 그걸 손으로 핥아서 드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안 되겠다 싶어서 또 꾸준히 찾아뵙게 된 거죠. 그런데 제대로 도와드리려면 그분들의 삶을 잘 알아야겠더라고요.”

송씨는 먼저 노숙인 체험을 시작했다. 그는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며 첫 노숙 경험을 말했다. 하루, 이틀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삶의 패턴이 보였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낮에도 술에 의존해 잠을 청하는 ‘악순환’이었다. ‘잠자리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았다. “노숙인 쉼터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송씨가 진지하게 답했다.

“제가 만난 노숙인들은 대부분 정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뇌성마비이거나 팔 한쪽이 없어서 버림받은 분들도 있고. 젊은 친구들 중에는 보육원 퇴소자도 많아요. 제대로 교육도 못 받았으니 사회에 적응도 못 하고, 직장도 못 얻고, 집은 없고, 배고파서 빵 훔치다 교도소 가고…. 사업 부도로 나온 분들도 물론 계시고요. 이분들은 신용불량자 상태기 때문에 일을 구하기가 힘들죠. 쉼터는 단체생활이다 보니 적응도 쉽지 않아요. 가면 오히려 같이 술만 먹게 되는 구조더라고요. 자립 의지를 오히려 꺾는 거죠.”

송씨는 자립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에게 ‘월세방’을 구해주는 것이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부산역의 노숙인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중에, 자립을 하고 싶어하는 한 노숙인을 만나게 됐다. 송씨는 한 달 방값을 대신 내주는 대신, 직접 돈을 벌어 생활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부산역 근처 여인숙에 방을 잡고, 이것저것 생필품도 샀다. 3시간 만에 무려 4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일주일 후, 여인숙을 다시 찾았지만 그 노숙인은 계속 방 안에 누워 있기만 했다.

“아버지(송씨는 노숙인들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약속하지 않았음까. 속상한 마음에 ‘일 좀 하이소’ 그랬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여인숙을 찾아갔더니 안 계시더라고요. 이틀 뒤에 전화가 왔어요. 일을 시작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좀 더 저렴한 고시텔로 이사를 하셨더라고요.”

이 노숙인은 건강을 회복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고, 11개월 만에 7년 동안의 노숙생활을 청산했다. 지금은 신용불량자 신분도 벗어났다. 이렇게 송씨가 월세와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는 노숙인은 현재 5명이다. 이들 외에 송씨가 돕는 독거노인, 보육원·저소득층 아이들을 합하면 모두 30여명에 달한다.

송씨는 대학 졸업 후 ‘이왕하는 거 한번 미쳐보자’고 결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특히 작년에는 ‘나눔대첩’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전국 각지의 복지관, 교회, 소년원 등에서 강연 요청도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송씨는 “처음엔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나 막막했지만 신기하게 때마다 돕는 사람들이 꼭 생겼다”며 “갈수록 강연 수입도 많아져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꿈은 ‘더 많은 사람이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는 “이웃들 중에 무엇보다 관심이 필요한 이들이 많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 조그만 선물로 사회가 따뜻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요즘 강연 활동과 동시에 각지에 흩어진 ‘나눔 커뮤니티’ 봉사자들도 만나고 있다. 지난 13일에도 수원 커뮤니티를 만나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하우도 전수하고 후기도 나눴다.

“소년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아이가 출소했다고 지난주에 연락이 왔어요. ‘행님,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이러더라고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얼마나 기특해요. 서울에 올라가면 보자고 했는데 오늘 만날 예정이에요. 같이 서울역 아버지들한테 빵도 드리고 이야기도 나눠보려고요.”

김경하 기자

김명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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