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Cover Story] 자원봉사 할 사람 이렇게 많은데… 자원봉사센터에는 사람이 없다

설립 18년째… 제 역할 못하는 자원봉사센터 실태

전국 봉사센터 246개 중 절반 이상이 지자체 직영
정치적 독립성 부족해 지자체 행사 동원되기도

“봉사자 줄었다”는 단체 “봉사할 곳 없다”는 이들
자원봉사자와 기관 간 수요·공급 불균형 심화

스탠다드차타드 착한 목소리 자원봉사자 오디션을 위해 2만명의 사람이 몰렸다 /스탠다드차타드 제공
스탠다드차타드 착한 목소리 자원봉사자 오디션을 위해 2만명의 사람이 몰렸다 /스탠다드차타드 제공

#1. 지난 19일 오후, 전남 순천시청 3층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순천시자원봉사센터.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직원이 간단한 전화 응대를 하고 있을 뿐, 남은 8개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봉사실적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일리지 통장정리기도 고장나 있었다.

1996년 전남 최초로 설립된 순천시자원봉사센터는 현재 센터장이 공석이다. 직원은 사무국장을 포함해 단두 명뿐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순천시로부터 운영비도 받지 못했다. 자원봉사센터 상근직 직원 7명의 월급이 밀리면서 직원들은 센터를 그만뒀다. 순천시와 갈등을 빚던 자원봉사센터장은 작년 12월 사퇴했다.

2008년부터 4년 동안 운영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곳이 1년 만에 파행 운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상길 순천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지난해 4·11 보궐선거에서 조충훈 시장(무소속)이 당선된 이후, 전임 시장이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자원봉사센터가 적법이 아니라며 갑자기 특별감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현 시장이 자원봉사센터를 장악하기 위해 트집을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순천시는 “자원봉사센터가 여전히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예산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이견이 있었다”며 “독립법인 이사회 또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으로 구성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입장이다.

#2.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지난달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을 만들면서 목소리를 기부할 ‘자원봉사자’를 뽑았다. 홈페이지와 카카오톡을 통해 신청을 받았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고, 입력한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박유천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었음에도, 무려 6만여 명이 신청했다. 홍보대사 박유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일부 팬을 감안해도, 6만명은 주최 측도 놀랄 만큼 많은 숫자였다. 이 중 2만명이 1차 심사에서 합격했고, 지난달 19일과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한 전시장에서 전문 성우 30명으로부터 현장심사를 받았다. 현장심사를 통과한 800명 중 최종 뽑힌 봉사자는 100명뿐. 멘토링을 수료한 자원봉사자들은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미디어센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스튜디오 예약을 하고, 일정에 맞춰 오디오북 60권 녹음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올해에는 카카오톡을 통해 간단히 참가신청을 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만들어져 지난해보다 1만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했다.

◇’정치적 독립성’ 없는 자원봉사센터 많아

자원봉사를 하고싶은 사람(자원봉사자)과 자원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복지기관·NGO(수혜처)를 둘러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 북부지역에서 도시락 배달을 하는 한 복지단체 소장은 “경기가 안 좋아서 자원봉사자들이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 떠나다보니 봉사인력이 줄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자원봉사를 원하는 기업이나 대학생은 “봉사기관에서 별로 반기지 않고 귀찮게 여기는 분위기”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불만이다. 갤럽 인터내셔날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7%(2010)로, OECD 30개국 중 16위다.

자원봉사자와 수요처를 연결해줘야 하는 순천시자원봉사센터에는 직원조차 없었다.
자원봉사자와 수요처를 연결해줘야 하는 순천시자원봉사센터에는 직원조차 없었다.

지난 1996년 행정안전부는 “자원봉사 문화를 창출하겠다”며 자원봉사센터를 만들고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도 제정했다. 하지만 자원봉사센터가 설립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지역 자원봉사의 허브’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현재 전국의 자원봉사센터는 246개다. 이 중 지자체 직영센터는 145곳, 민간 위탁운영 센터는 63곳, 독립법인으로 운영하는 센터는 38곳이다. 절반 이상이 지자체 직영이다. 특히 경남·전남 등 지방으로 갈수록 지자체 직영센터가 많다. 센터 대다수는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받는다. 행안부에선 센터당 2명의 인건비와 보험 등을 지원할 뿐이다.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최민희 부장은 “지자체장이 바뀌면 센터장도 바뀌고, 추진되던 일정도 변경되는 경우도 많고 지자체 행사에 자원봉사자를 동원하는 등 정치적 독립성이 없다”고 말했다. 직영 자원봉사센터의 경우 대부분 지자체 과장·국장급이 센터장을 겸임한다. 이들이 퇴임 후 ‘낙하산’으로 자원봉사센터장을 하는 곳도 있다.

◇자원봉사에 대한 질적 관리 ‘허술’

이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자원봉사 프로그램 개발이나 자원봉사 관리는 허술하다. 자원봉사자들과 수요처를 매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1365 자원봉사포털(www.1365.go.kr) . 등록인원은 700만명에 이르지만, 매월 1회 이상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은 32만명(4.6%)에 불과하다. 등록 절차도 복잡하고, 등록 후에도 실제 자원봉사로 이어졌는지 매칭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족하다.

지난 18일 새벽, 기자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1365 자원봉사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름, 주소, 봉사희망센터, 희망분야, 직업 등 필수입력사항을 작성하고 실명인증을 거쳐 회원가입을 완료했다. 그 중에서 S대안학교 검정고시 학습지도와 영어 부교재 삽화 작업을 돕고 싶어 ‘신청하기’를 눌렀다. 기자는 ‘모집 중’으로 적힌 날짜인 20일에 체크를 하고 봉사활동 신청을 완료했다. 하지만 봉사날까지 수요처로부터 문자나 전화, 메일 등 봉사 안내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 서울 S구자원봉사센터 측에 문의를 하자 “업무가 많거나 봉사자가 많아서 연락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확인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당일은 물론, 이틀이 지나도록 봉사기관과 센터 측의 연락은 받지 못했다.

오영수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국장은 “자원봉사 등록자수가 몇 명인지, 몇 시간 인증을 받았는지 ‘실적 인증’ 위주로 기형화하다 보니 자원봉사 문화가 왜곡됐다”며 “번역봉사가 늘어나자 행안부에서 A4 한 장당 봉사시간을 2시간으로 인증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마다 시간 인증을 하기 위해 매번 연구용역을 줘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에 대한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니, 금전적 보상을 받는 ‘자원봉사 아닌 자원봉사’도 많다. 최민희 부장은 “자원봉사는 무보수·자발성·공익성이 생명인데, 교통비와 식비를 실비 이상으로 현금을 주거나, 자원봉사 시간을 바탕으로 공공시설물 이용료나 주차권을 감면받는 일이 많다 보니, 쿠폰과 할인권을 안 주면 항의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_그래픽_자원봉사_지속봉사자현황_2013◇운영의 독립성, 전문성 키워야

장준배 전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 사무국장은 “재원이 부족한 지자체에 대해 국가의 운영 보조 등을 통해 점차적으로 직영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외부 후원금도 받을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윤애 서울시자원봉사센터장은 “현재 3년 이상 된 직원을 찾아보기 힘든 지역 자원봉사센터에 자원봉사 전문가를 키워낼 수 있도록 역량강화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민간 주도의 자원봉사센터를 늘리고 질적지표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란희 편집장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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