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영리에서 비영리로] 기업과 복지현장 잇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제1섹터, 영리기업은 제2섹터, 비영리는 제3섹터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영리에서 비영리로, 비영리에서 영리로, 두 영역 간의 직업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기업은 비영리단체의 ‘문제해결형’ 현장 노하우를 배우고, 비영리단체는 기업의 ‘목표달성형’ 역량을 배운다. ‘영리-비영리 크로스오버 시대’가 국내에도 확산되는 추세다. 편집자 주


 

◇ 브랜드 마케팅 강화로비영리 위상 높이겠다.

김미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신임 사무총장

김미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신임 사무총장
김미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신임 사무총장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항상 ’50대부터는 아동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꿈꿨었거든요. 그 소원을 이루게 돼서 벌써 행복합니다.”

국제아동보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신임 사무총장이 된 김미셸(51)씨는 미국을 대표하는 보석브랜드 ‘티파니앤컴퍼니’ 아태지역 부사장 출신이다. 16세에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갔고, 워싱턴대학을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재료공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티파니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코디네이터, 한국 지사장, 아시아 지역 총괄 부사장까지 단숨에 오르며 20년간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하던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세이브더칠드런에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김 총장은 “한 달 동안 세이브더칠드런의 국내 사업장 30곳을 둘러봤는데, 24시간 대기하면서 아동보호 현장을 누비는 직원들을 보고 놀랐다”며 “영리기업 CEO들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원을 투자하고 고민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는 절대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선 모두 확고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김 총장은 “사람들이 ‘모자 뜨기 캠페인’은 알아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잘 모르더라”면서 “세이브더칠드런에 대한 소개보다 당장의 캠페인 홍보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티파니가 국내에서 유명 보석 브랜드로 자리 잡은 비결은, ‘티파니’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작업만 3년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품 소개는 브랜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긴 이후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기사, 광고, 거리 캠페인, 서포터스, 후원자들의 ‘입소문 마케팅’ 등을 통합적으로 활용해야 하죠.”

영리기업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김 총장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액세서리를 하느냐”였다고 한다. 김 총장은 “나를 비롯해 아직까지 비영리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서 “비영리단체 자체에 대한 홍보도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투명한 공익법인 DB더 많은 기부 몰릴 것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58)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는 재계에서 ‘홍보와 위기관리의 달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금호그룹·KTB네트워크를 거쳐 SK텔레콤 부사장, SK㈜ 사장(PR 어드바이저)을 역임한 그는 30년 재계 생활을 청산하고 비영리단체로 왔다. 권 이사는 “‘30년 동안 일했으니, 30년은 봉사하며 살겠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송자 이사장님이 ‘봉사하라’고 차출했다”며 “시민사회의 인프라 구축사업을 위해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가이드스타는 1월 1일 국세청 고시를 통해 공익법인의 결산서류를 제공받을 수 있는 최초, 유일한 법인으로 지정됐어요. 이 자료를 어떻게 시민사회를 위해 유용한 인프라로 환원시킬지가 과제입니다. 미국에선 일반 기업보다 더 높은 투명성, 건전성을 시민사회에 요구합니다. 이런 인프라를 잘 구축하면, 결국 기부문화가 크게 확대될 겁니다.”

권 이사는 무보수로 일한다. 자신의 사무실은 지식나눔을 위한 NPO 카페로 만들었다. 그의 아내는 20년 넘게 비행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해온 ‘자원봉사 선배’다. 결혼 25주년 기념일인 재작년에는 ‘0’을 하나 보탠 250만원을 희귀난치병 어린아이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기부하려는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데이터베이스가 없어서, 그동안 비영리단체에서 더 많은 기부, 더 높은 수준의 기부를 끌어내는 데 장애요인이 됐어요. 돈을 따라다니면 돈이 안 벌려요. 돈이 많이 벌리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투명성을 강조하는 건 투명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더 큰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가이드스타가 만들어내는 빅데이터가 3년 후면 시민사회의 이정표가 될 겁니다.”

그는 “모든 위대한 사람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인데, 이를 위해 구성원들의 역량과 역량 있는 구성원들이 주고받는 시스템이 핵심적으로 필요하다”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연봉 30% 삭감됐지만쓸말·할말 많아 행복

김태윤 ㈔열린의사회 기업사회공헌팀장

김태윤 ㈔열린의사회 기업사회공헌팀장
김태윤 ㈔열린의사회 기업사회공헌팀장

올 1월 ㈔열린의사회 기업사회공헌팀장이 된 김태윤(41)씨는 전 GS샵 제휴사업팀장이다. 김 팀장은 IT벤처기업 부사장, 무가지 신문사 광고·이벤트 기획, 디앤샵(d&shop) 신규사업팀장, GS샵 신규사업팀장 등 마케팅 경력만 10년이다. 김 팀장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침 8시 이후에 출근하거나,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레드(RED) 캠페인을 접하게 됐죠. 의미 있는 소비를 이끄는 ‘떳떳한 장사꾼’이 되고 싶었습니다.”(2006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레드 캠페인’은 전설적인 팝 그룹 ‘U2’의 리드 싱어인 보노와 유명 변호사인 바비 슈라이버가 주창한 운동으로, 컨버스, 갭, 아이팟, 모토로라, 엠프리오 아르마니에서는 ‘Red’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하며 제품 판매금액 일부를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퇴치 기구인 글로벌펀드(The Global Fund)에 기부해 왔다.)

열린의사회에 오자마자 그는 KB국민은행과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문가가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청소년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상담하고, 열린의사회의 의사에게 치료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요할 경우에는 한 명당 9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다음(DAUM)은 포털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게재해 해당 캠페인을 홍보했고, ‘마이피플’이 모바일 메신저 역할을, 교과부가 학교 네트워크를 담당했다. 서비스를 개시한 지 6개월 만에, 청소년 1만명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학교 폭력을 상담했다. 지난해 말, 열린의사회와 KB국민은행은 교과부 장관상을 받았다. 연봉의 30~40%를 삭감해 열린의사회로 왔지만,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고, 페이스북에 적을 내용이 많아 행복하다”고 했다. “열린의사회 소식을 제 페이스북에 자주 올리는데, 영리 쪽에서 일할 때보다 ‘좋아요’ 개수가 10배 이상 많아졌습니다. ‘착하고 똑똑한’ CSR 프로젝트를 기획, 확대하는 것이 제 비전이자 소망입니다.”

박란희 편집장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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