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Cover Story] 국익 앞세운 잇속 채우기… 현장 목소리 귀막은 해외원조

한국형 공적개발원조의 현실
한국ODA에 대한 보고서 책임·목적 강화 등 권고
유상·무상원조 예산 29개 부처·기관이 나눠 효과 낮고 중복도 많아
컨트롤타워 역할 키우고 조각난 원조 통합해 질적으로 향상 시켜야

올해 우리나라의 ODA(공적개발원조) 예산은 2조411억원이다. 2008년 8900억원 규모였으나, 5년 만에 세 배나 늘었다. 2009년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이 제정됐고, 2010년에는 원조 선진국들만 가입하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이하 개발원조위)에 24번째로 가입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첫 사례인 만큼, 국제사회의 기대도 높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지난달 29일 OECD 개발원조위는 ‘한국 ODA에 대한 동료평가(Peer Review)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첫 평가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명확한 목적과 우선순위를 설정해 개발협력 전략을 세울 것 ▲ODA 정책에 대한 대국민 소통과 투명성, 책임성을 강화할 것 ▲ODA 통합체계를 만들 것 ▲민간분야의 참여를 독려하되, 수혜국 주도의 개발정책을 유지할 것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ODA 규모를 늘릴 것 등의 권고를 받았다. ‘한국형 ODA’를 표방하던 정부가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해외 현지에서 활동하는 개발협력NPO 23개 단체 인터뷰를 통해, ‘컨트롤타워 없는 문어발식 한국형 ODA’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 주


그래픽 자료(위)=OECD DAC statistics, (아래)국제개발협력위원회
그래픽 자료(위)=OECD DAC statistics, (아래)국제개발협력위원회

“코이카(외교부)에서도 찾아오고 보건의료재단(복지부)에서도 찾아와서 명함을 내밀면 현지 정부나 단체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한다. 한국 정부와 일하려면 기억해야 할 사람도 많고, 부처도 많아서 의사소통에 혼돈을 겪는다. 현지 입장에서는 행정절차도 중복되고, 서류도 중복해서 내야 하기 때문에 낭비다.”(H단체 관계자)

“최근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두고 적정기술,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에 많은 정부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코트라(KOTRA), 교과부, 코이카 등의 간담회에 여러 차례 불려다녔다. 주제는 같은데, 코트라는 해외시장 개척과 사업화에 관심이 있고, 교과부는 기술개발에 관심이 있다. 현장에서 현장 주민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각 기관들은 ‘국익’을 내세워 자신들의 기관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T단체 관계자)

익명을 전제로 한 심층 인터뷰에서 개발협력NPO 담당자들은 우리나라의 현재 ODA에 대해 “철학도 없이, 40~50년 전 선진국들이 실패한 길을 답습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을 위한 ODA인가, 빈곤국을 위한 ODA인가

우리나라의 국제개발협력이 지향하는 3대 가치는 ‘수원국에 희망을”국제사회에 모범을”국민에게 자긍심을’이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ODA 철학이 없이 상황논리에 휘둘린다”고 비판했다.

ODA 예산 2조원 중 유상원조는 7500억원가량, 무상원조는 6600억원가량이다(UN 및 국제기구와 국제금융기구 6100억원가량). 이걸 29개 부처·기관(지자체 제외)에서 쪼개서 집행한다. 도로를 깔아주고, 발전소를 지어주고, 댐을 짓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유상원조는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맡고, 빈곤국 사람들에게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무상원조는 코이카(KOICA)가 맡는다. 금액을 쪼개다 보니 원조 효과도 낮고, 중복사업도 많다.

OECD 개발원조위는 보고서에서 “양허성 차관(유상지원) 비율이 40%나 된다”며 “한국의 발전 과정에서 유상원조가 큰 비율을 차지했고 수혜국에 일정 정도의 책무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고려의 여지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OEDC 개발원조위 회원국 평균 유상지원 비율은 12.6%(2008년)다.

B기관 관계자는 “다른 선진국들도 외교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다리 놓아주고 광산 채굴권 받아온 것을 ‘자원외교”한국형 개발모델’이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며 “유상원조와 무상원조 중 큰 프로젝트는 대부분 외부 입찰을 통해 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지원되는데 이 기업들이 파트너국에 대한 진정성 있고 장기적인 철학을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S기관 관계자도 “광물 자원이 많은 개도국에만 지원을 하는 등 지나치게 우리나라 국익에 기반해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일본도 최근 유상·무상원조로 쪼개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08년 뉴 자이카(New JICA)를 출범하는 등 원조 선진국들은 유·무상 원조를 통합하며 효과적인 원조를 고민하고 있다”며 “뒤늦게 시작한 우리나라는 외국의 실패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우물 파고, 학교 짓고, 사진 찍으면 “끝”

미상_그래픽_ODA_부처별ODA예산안_2013“캄보디아는 우물을 파는 사업이 많았다. 우물만 판다고 해서 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물이 나오지 않으면 원상복구해줘야 하는데, 기자재 등을 그대로 놔두고 가버려 오히려 땅을 상하게 하고 녹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수세식 화장실이 습관화되지 않은 현지인들에게 화장실만 지어주면 끝이 아니다. 위생교육을 해주고, 화장실을 관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만들고, 사진 찍고 나면 끝이다.”(T단체 관계자)

‘지속가능한 원조’는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원조의 ‘핵심 키워드’다. 이 단체의 간부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운영했던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인 관장에게 사업을 이관했다”며 “사회복지를 아는 한국인을 키우고, 이들에게 리더십을 가르친 것처럼 하드웨어가 아니라 현지인을 키우는 ‘질적인 사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ODA 예산에 비해, 아직 국내의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심층인터뷰에 응한 많은 NPO들은 “개발협력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코이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A단체 관계자는 “일부 코이카 현장사무소장은 수도에서 2~3시간 떨어진 거리의 현장을 잘 가지 않는 등 현장을 잘 모르고, NPO에게 협조도 해주지 않는 다. 이들의 업무 중 60~70%가 해외봉사단 관리, 20%가 대사의 지시 수행 등 의전업무, 10% 정도가 개발협력 업무다. 자금 운영 등 유연성이 떨어지고, 해외봉사단 관리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고 했다.

한 국제아동보호기관 해외사업책임자는 “미국국제개발청(USAID)의 경우 본부는 별 의미 없고, 현장사무소가 사업설계, 심사, 실사 등 모든 일을 다 하는데, 코이카도 현장사무소가 개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C기관 관계자는 “NPO가 해외에 나가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에 코이카가 현지의 법적·제도적인 가이드라인을 알려주고, 현지의 법무법인은 연계해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데, 직원의 교체가 잦다 보니 전문성 있는 서포트가 안 된다”고 밝혔다.

한편, G기관 관계자는 “그나마 코이카는 현장사무소가 있고, 파트너인 NPO들과 끊임없이 현지 국가와 주민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반면, 다른 부처는 아직도 10년 전 생각 그대로 ‘돈만 주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원조논리를 갖고 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글로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없다 보니,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국제협력 관련 조직을 확대·강화했다. 농림수산부에서는 해외농업개발협력법을 제정했고, 보건복지부는 국제보건의료재단협력법을 제정했다. 앞으로 ODA 예산이 늘어날수록 ‘원조 분절화’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이카, 콘트롤타워 역할 못하고 NPO와 파트너십도 부족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NPO들과의 파트너십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다. 수십년의 역사를 지닌 국제개발협력NPO 관계자는 “해외 원조금액 중 NGO 지원 비율이 우리나라는 1%밖에 안 된다. 이는 OECD 개발원조위 전체 평균(3.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민관협력을 강화하겠다면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개발사업을 해오던 NPO들의 기회가 줄어든 대신 기업과 대학 참여만 확대됐다”고 했다.

10년 넘게 코이카와의 파트너십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NPO들에게 예산은 많이 안 주고, 행정적인 보고서가 많은 유형은 유상원조 비율이 높은 일본의 자이카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선진국형이 아니다”며 “12년 전에 1억원짜리 사업을 할 때나 지금 10억원짜리 사업을 할 때 행정적인 비효율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심층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NPO들은 코이카의 사업보고서 때문에 며칠씩 밤샘작업을 하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각 사업별로 담당자가 다르면, 사업계획서나 결과보고서의 양식이 다르다” “글로벌 NGO에서는 현지의 유명회계법인 감사를 받아서 이 서류를 제출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모든 영수증을 다 복사해서 국제우편으로 받거나 이메일을 스캔·출력해서 한 장 한 장씩 도장을 찍어야 한다” “8억원짜리 영수증 정리에만 꼬박 한 달이 걸리고, 영수증 붙이는 아르바이트생만 2~3명 고용한다” 등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제기됐다. 투명성을 높이면서도 NPO들의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효율적인 행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한편 많은 NPO들은 코이카가 다년도 지원사업을 신설해 장기적인 사업을 확대하고, 사업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ODA 와치’ 윤지영 팀장은 “ODA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원조기구의 역량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란희 편집장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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