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라이벌? 우린 협력하는 선의의 경쟁자

NPO 회장 신년 대담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 변화 없인 성장 불가능… 끊임없는 혁신 필요해
투명성 강조되는 시대… 관련 기관 자료 통합해 표준화된 기준 마련해야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 – NPO 성장 주요인은 방송모금·세제혜택 등
사회에 조성된 기부 문화… 규모 다른 단체 간에도 멘토 두고 결연 필요해

지난 5년 동안 국내 NPO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경제 위기와 NPO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이 성장세는 계속될 수 있을까. 한국NPO공동회의 이사장인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과 공동대표인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의 신년 대담을 통해 ‘한국 개발복지 NPO, 향후 5년의 과제’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사회=올해는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국내 대표그룹 회장들이 공통으로 ‘위기’를 강조하는 신년사를 했다. 신년사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셨는지 궁금하다.

이일하 회장(이하 이일하)=투명성을 강조했다.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법이 통과되면서 사회복지법인 이사의 3분의 1 이상은 사회복지위원회 또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 추천해 선임토록 바뀌는 등 법인 운영의 투명성이 강화됐다.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NPO는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과는 다르지만, 곧 사단법인도 사회복지법인과 같은 사회감시망이 더 넓어질 것이다. 이를 대비해야 한다.

양호승 회장(이하 양호승)=지난 5년 동안 1년에 20~30%씩 성장해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제 중대한 변화 없이는 성장률이 감소하거나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에게 ‘위기’와 ‘혁신’을 강조했다. NPO 단체가 늘어 모금이나 사업방법도 비슷해지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사업과 성과를 창출하도록 주문했다. 투명하고 전문성 있는 사업을 통해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될 것, 월드비전의 60년 노하우를 나눠주면서 존경받는 기관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왼쪽)과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오른쪽)은 1947년생 동갑내기다. NPO 활동경력 40년이 넘는 이 회장과 기업에서 NPO로 전직한 지 2년차인 양 회장은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왼쪽)과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오른쪽)은 1947년생 동갑내기다. NPO 활동경력 40년이 넘는 이 회장과 기업에서 NPO로 전직한 지 2년차인 양 회장은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방송모금 확대, 기부금 세제혜택 등이 성장의 주요 요인

사회=최근 발간된 ‘2011 개발복지 NPO 총람’을 보니, 조사대상 NPO 241개의 예산 총액이 1조5900억원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3692억원)의 4.3배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NPO의 성장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일하=공동모금회에 기부하면 10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데 반해, 민간 NPO에 기부하면 30%밖에 소득공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성장한 것은 NPO 종사자들이 맨손으로 벽을 뚫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선진국형 기부 문화가 늘어나고, SBS ‘희망TV’ 등 모금방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양호승=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1년 일본 쓰나미 등 긴급 구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NPO의 성장을 이끌었다. 기부 제도가 ‘기부 금품 모집 금지법’에서 ‘기부 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기부금에 대한 선진국 수준의 세제 혜택을 적용한 것도 요인이다. 기업 CSR 활동도 증가했고, 신문과 방송을 통한 간접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지구촌 각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CSR 활동이 중요해질 텐데, 현지에서 전문성을 가진 NPO를 활용하라고 열심히 마케팅 한다.

이일하=최근 수출기업들이 해외 현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투자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제 현지 주민들과 접촉해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그 네트워크를 가진 곳은 NPO다. 이 활동을 통해 기업의 수익 사업과도 연계할 수 있다.

◇”2015년이 NPO 성장의 정점이 될 것으로 예상”

사회=’더나은미래’의 전문가 설문 조사 결과, 향후 5년 동안 NPO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전망이 엇갈렸다.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하다.

이일하=2015년 정도가 정점이 될 것으로 본다. 굿네이버스는 매년 20~30% 성장을 계속해왔는데, 2007년 무렵에는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 후원자 수는 1만명 늘었는데, 해외 현장에서 결연시킬 아동이 부족할까 봐 걱정할 정도였다.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부장들을 각각 모아서 3일 내내 워크숍을 하고, ‘이제 우리는 협동조합이다’라며 방향을 정하고 시스템을 정비했다. 월드비전은 국제본부에서 사업을 해주지만, 우리는 토종 NPO이기 때문에 직원 훈련부터 관련 서식까지 모두 국내에서 다 해야 하는 게 참 어렵다. 우리는 올해 직원 50명을 새로 채용했는데, 올해를 지켜보면서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내년에는 성장목표를 높이지 않을 작정이다.

양호승=월드비전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과 호주, 캐나다 월드비전이 지난 2~3년 동안 한 자릿수 성장 내지 동결임을 감안할 때 이제 한국도 저성장궤도에 도달한 것으로 예상된다. 월드비전은 사업장 숫자를 늘리는 대신 사업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둘 계획이다.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국내 사업의 경우 지역에서 월드비전이 직접 사업을 하는 대신 잘할 수 있는 작은 기관에 넘겨 우리는 ‘허브’ 역할만 할 것이다.

이일하=국내 사업은 사각지대인 청소년 정신 보건 분야에 주력할 계획이다. 해외는 캄보디아의 태양광, 네팔의 허브향 약초, 몽골에는 적정 기술 난방 제품 등을 생산·보급하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 현지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진행 중이다. 예전에는 소득 증대 사업으로 농업 개발이 주를 이뤘는데, 이제는 집을 지을 수 있는 흙벽돌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NPO 투명성 위한 표준화된 회계정보 필요

사회=우리 NPO들은 선진국과 달리 ‘압축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규모에 걸맞게 내실을 다지는 것도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 국내 NPO에 닥칠 어려움은 무엇으로 예상하는가.

이일하=1970년대에 미국의 한 신문 칼럼니스트가 아동 결연 현장을 취재한 후 “후원금이 100% 전달되지 않는다”는 칼럼을 썼다. CCF(Cristian Children Fund)라는 단체가 3년 동안 이 신문사와 소송을 했는데, 법적으로는 이겼지만 후원자가 200만명에서 70만명으로 줄었다. 미국에서는 모금액 중 행정비, 인건비로 최대 50%까지 쓸 수 있다는 게 정착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면 NPO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

양호승=NPO, 회계사무소, 세무관련 조직 등이 한자리에 모여 사회적 합의 기준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NPO마다 갖고 있는 기준과 자료를 통합, 표준화하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품 모금의 경우 후원금 책정 기준을 원가로 하는지, 판매가로 하는지 기관마다 다르다.

인건비 항목 정의에 대한 해석도 다르고, 각 NPO에서 보고하는 재무보고 내용 역시 후원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후원자들은 어느 기관이 더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를 위해 NPO들이 나서서 표준화된 기준, 표준 회계정보 열람시스템 등의 마련이 필요하다.

사회=모금대상, 사업분야 등이 겹치다 보니 NPO들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향후 고액 모금 시장이 열리면 NPO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일하=NPO공동회의에서 2개월에 한 번씩 단체장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CEO포럼’을 하는데, 중소 규모 NPO들은 많은 도움이 된다.

NPO공동회의 내부에 ‘중소NPO모임’을 만들어서, 중소NPO들의 성장 스케줄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평가하고 발전계획을 세우도록 돕는 기구를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굿네이버스는 앞으로 공동으로 해외학교를 짓고, 공동 모금을 하기로 했다. NPO끼리도 필요하면 멘토를 둬서, 큰 단체가 작은 단체와 결연하는 운동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양호승=NPO들이 기업처럼 서로를 협력자보다 경쟁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방식의 경쟁을 펼치는지가 중요하다. 선의의 경쟁은 계속하되, 큰 NPO들이 연대해서 역량과 경험이 적은 NPO들과 공유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월드비전에도 소규모 단체들이 많이 찾아온다.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외부 강연 요청이 많이 오는데, 가능하면 나가서 하도록 권유한다.

◇NPO의 양대 산맥으로서 서로 협력할 것

사회=마지막으로 각각 상대 기관에 대한 덕담 한마디씩 부탁드린다.

이일하=월드비전이란 단체는 참 놀랍다. 내가 ‘지금이면 추월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벌써 저기 멀리 가 있다(웃음). 국내 대표 NPO 월드비전과 토종 NPO 굿네이버스가 양대 산맥이 돼 협력했으면 좋겠다.

양호승=굿네이버스와 월드비전은 그 뿌리가 같다. 이일하 회장님도 1970~80년대 월드비전(옛 선명회)에 근무했던 가족이다. 짧은 역사에도 굿네이버스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이일하 회장님의 탁월한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협력자이자 선의의 경쟁자로서, 한국 사회에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지구촌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진행=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