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인간문화재 지원으로 전통문화 관심 키운다

한독약품 ‘인간문화재 지킴이’ 캠페인
직원들 기부하는 급여에 회사가 같은 금액 지원하는
‘매칭그랜트’ 방식 도입해 인간문화재 건강 관리
총 70여 명 대상으로 2년마다 무료 건강검진
2010년부터 나눔 공연 인간문화재에 공연 기회
초청받은 소외계층에게는 문화 접하는 계기 마련

“조선시대엔 집에 손님이 오면 ‘활 쏘러 갑시다’란 말을 꼭 했지. 요즘 말로 하자면 ‘차 한잔 합시다’란 뜻이야. 그만큼 중요한 의례 중 하나였어.”

유영기(75)씨는 전통 활과 화살을 만드는 ‘궁시장(弓矢匠)’이다.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돼 인간문화재로 인정을 받았다. 3대째 전통 공예를 이어온 유씨지만, 아들 유세현(49)씨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활을 만들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반갑지 않았다. 돈 벌기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다. 유씨는 “몇 천원짜리 카본활이 들어오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려 전통활 시장이 죽어버렸다”며 “물소뿔이 주재료인 각궁은 화살 가격을 빼더라도 70만~80만원이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올해에도 개인 주문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유씨는 요즘 활쏘기 체험 행사에 납품을 하거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영집궁시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린다.

유씨와 같은 인간문화재는 전국 180여명. 지난 9월 말 문화재청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중요무형문화재 128개 종목 가운데 20개가 전수조교가 없는 상태다. 거문고산조, 제주민요, 명주 짜기 등 7개 종목은 중요무형문화재이지만 보유자조차 없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유영기씨. /한독약품 제공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유영기씨. /한독약품 제공

◇사각지대를 찾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지난 13일 오전, 유씨는 오랜만에 박물관이 아닌 병원을 찾았다. 건강검진을 위해 세브란스병원 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한 것이다. “자, 이 호스를 입에 대고 후우 부시면 됩니다.” 간호사의 말에 유씨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느다란 숨이 두어 번 이어졌다. 유씨는 “2010년에 검사를 처음 받았는데, 갑상선과 전립선, 호흡기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후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데 많이 좋아졌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인간문화재 건강을 관리해주는 것이 바로 전통공예 활성화를 밀어주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이뤄진 ‘인간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은 한독약품이 3년째 이어오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한독약품은 문화재청, 전국 11개 협력병원과 손을 잡고 인간문화재 종합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있다. 한독약품은 캠페인 진행과 비용을, 문화재청에서는 인간문화재 중 의료대상수급자를 선정하는 역할을, 병원에서는 대상자들의 건강검진을 책임졌다. 비용은 한독약품 직원들이 기부하는 급여와 회사가 같은 금액을 매칭하는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마련한다.

이 캠페인을 통해 유씨를 포함해 총 70여명의 인간문화재가 2년마다 한 번씩 무료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이빈나 한독약품 홍보팀 대리는 “인간문화재들은 대부분 고연령으로 다양한 만성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아 제대로 건강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약사라는 업(業)의 전문성을 활용해 대상자들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영희 인간문화재는 2010년 건강검진으로 대장용종을 발견해 수술을 받고, 완치되기도 했다.

◇건강검진 이어 예방접종까지, 인간문화재들의 나눔공연도 실시

건강검진에서 시작된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점점 진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 건강검진 대상자는 50세부터 75세까지의 인간문화재 의료수급자였다. 하지만 실제로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해보니 고령의 나이에도 활동하는 인간문화재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부터는 검진대상을 80세까지 확대했다. 이뿐 아니었다. 인간문화재는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이들의 건강을 위한 예방 프로그램도 필요했다. 작년 10월 모든 인간문화재를 대상으로 전국 123개 의원에서 독감 및 폐렴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건강 지킴이에만 그치지 않고, 2010년부터 ‘인간문화재 지킴이’ 나눔 공연도 열었다. 이빈나 대리가 나눔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건강만 보살펴 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수자가 없어 전통이 끊길 위기에 있는 문화들도 많거든요. 무엇보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 큰 문제였습니다. 저희가 나눔 공연을 시작한 이유지요.”

지금까지 충북 음성 꽃동네 주민, 요셉의 집 어린이, 홍복양로원 어르신 등 다양한 대상자들을 초청해 인간문화재 공연을 관람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올해엔 다문화 가정 120여명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 15일, '인간문화재 지킴이' 참여마당에서 한복려씨의 궁중음식 강의가 열렸다. /한독약품 제공

지난 15일, ‘인간문화재 지킴이’ 참여마당에서 한복려씨의 궁중음식 강의가 열렸다. /한독약품 제공

◇시민 참여 유도로 전통문화의 관심도 업(UP)

“한국 궁중음식은 색감이 참 예쁜 것 같아요.”

오노야마 하루카(32)씨가 파, 양파, 당근이 담긴 알록달록한 두부전골을 가리켰다. 일본인 하루카씨는 “남편에게 파스타나 퓨전 음식만 만들어주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국 음식을 배우고 싶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창덕궁 담벼락 바로 옆에 위치한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독약품 ‘인간문화재 지킴이’ 참여마당이 열렸다. ‘전통문화는 재미없다. 지루하다’는 선입견 탓에 ‘공연’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하기 힘들었다. 이에 시민들의 전통문화 체험 현장을 열기로 했다. 이날 궁중음식연구원에는 60여명의 사람들로 하루종일 북적댔다. 700여명의 신청자가 몰려,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참가자들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음식을 전수했던 인간문화재 한복려(65)씨에게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배웠다.

한복려씨는 지난해 독감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통해 한독약품을 처음 만났다. 한씨는 당시 “근처 병원에서 독감주사를 무료로 맞게 되었는데, 문화재인으로 혜택을 받아 좋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 ‘전통문화를 살리자’는 목적 하에 참여마당의 첫 강사직을 수락했다. 한씨는 “기업 어디에서도 무형문화재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데, 건강부터 전통문화 살리기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써 줘서 좋다”고 말했다.

참가자들도 강의 내내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전통문화 관련 사회공헌을 하고 있는 다른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주경자 한글과컴퓨터 홍보팀 과장은 “체험형 활동이라 전통문화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빈나 대리는 “전통문화는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직접 경험해보면서 전통문화와의 거리감을 좁히고 인간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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