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전기 펑펑 쓰던 때 지났다… 한국도 이젠 기후변화의 리더”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 델라웨어대 존 번 교수

20년 넘게 기후변화 연구… 유엔 IPCC 핵심멤버로 노벨평화상 수상 기여
기후변화 문제 대응 위해 온실가스 절반 줄여야
“배출량 세계 7위 한국… 개발도상국 분류돼 감축 의무 제외됐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어… 미래 에너지 고민해야”

장소 협조: 롯데호텔 서울
장소 협조: 롯데호텔 서울

“GCF(Global Climate Fund·녹색기후기금)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자극이 될 것입니다. GCF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인데, 한국이나 송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은 이제 기후변화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일 방한한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 델라웨어대 존 번(John Byrne) 교수의 충고다.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나라가 그동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감축의무에서 제외돼왔지만, 이제는 피해갈 명분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델라웨어대 에너지환경정책연구소(CEEP, Center for Energy&Environmental Policy) 소장이자,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면서 2007년 IPCC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기여했다. 중국 외교부의 환경전문위원이기도 하다.

존 번 교수는 ‘기후변화’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이 분야를 연구해온 학자다.

“처음에는 궁금했어요. ‘인간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죠. 이 분야를 연구하면서, 인간의 정치·사회·경제가 기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제가 대학원생이던 1973년부터 75년까지 석유파동(아랍 산유국들의 유가 인상과 수출 중단으로 원유값이 폭등해 벌어진 경제적 혼란)을 겪었어요. 당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한창 건물·도로 등 인프라를 만들던 때였는데, 다 멈췄고 해당 지역 총생산액의 10%를 잃었어요.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반면, 한국은 운이 좋았어요. 만약 1960년대에 석유파동이 났더라면 지금 한국도 아프리카와 비슷한 상황이 됐을지 모릅니다.”

유엔 IPCC 보고서에 의하면,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1990년 발생했던 온실가스 기준으로 절반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 IPCC가 제시하는 해답은 ▲에너지 사용량 줄이기 ▲에너지 효율 향상 ▲숲의 보전과 농업 등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새로운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고민 등이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가장 싼 전기가격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몇 시간 동안 ‘블랙아웃(정전)’을 겪을 정도로 ‘펑펑 쓰는’ 전기에 익숙해져 있다. ‘전기료 인상’에 대한 반발도 심하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도 산업용 전기에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전기요금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라서 함부로 올릴 수가 없어요. 결국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에너지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훨씬 쉬운 방법이죠. 오바마 정부 2기에는 이런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될 겁니다.”

존 번 교수는 2008년 미국 최초로 델라웨어주에 공공건물 에너지효율개선 프로그램인 SEU(Sustainable Energy Utility)제도를 도입하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첫 해에 주 정부 소유빌딩 중 4%를 대상으로 SEU제도를 도입, 전기요금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각각 30% 줄였다.

“기존건물을 에너지 고효율로 바꾸려면 300여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 엘리베이터, 전등, 유리창, 에어컨, 단열, 태양광, 워터펌프 등 수없이 많죠. 공사기간도 짧으면 3개월, 길면 3년까지 걸립니다. ‘페이백(Pay back)’ 프로그램이라 건물주는 따로 초기 투자비용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에너지효율이 높아져 건물주가 내야 할 전기료가 기존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떨어졌다면 남는 50만원을 몇 년에 걸쳐 공사비로 갚는 셈이죠. 건물주 입장에서는 따로 돈을 들일 필요도 없이 5~6년만 지나면 30%나 줄어든 전기료를 낼 수 있으니 상당한 인센티브가 있습니다.”

SEU를 위한 초기 자금은 녹색에너지 절약채권 등을 발행해 조달한다. 현재 시티그룹이 채권발행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데, 7300만불(790억원) 규모의 채권이 발행됐다고 한다. 워싱턴 DC는 상업용 빌딩을 대상으로,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에서는 100여 곳의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편, 존 번 교수는 “한국도 미래 에너지를 고민하라”고 충고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효율은 높아지고 가격은 점점 더 빨리 떨어질 겁니다. 3년 전 1W(와트)당 7달러였던 태양광이 지금은 2달러입니다. 지금 태양광시장은 과도기인데, 앞으로 4~5년 후쯤 시장이 좋아질 겁니다. 반면, OECD 국가에서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에너지에 투입하는 비용은 1997년 GDP의 6~7%였는데, 지금은 9%까지 높아졌어요. 원전도 점점 경쟁력이 떨어질 겁니다.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사에서 ‘미국이 30년 넘게 짓지 않았던 원전을 새로 짓는다면 신용등급을 강등시킬 것’이라고 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부각되고 있는 ‘그린 ODA(공적개발원조)’를 두고, 존 번 교수는 “40~50년 전 미국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했다.

“예전에는 우리도 무조건 개발도상국에 선진기술을 갖고 갔어요. 하지만 지역주민한테는 쓸모가 없더군요. 1996년 내몽고 유목민을 위한 전기시설을 설치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왜 전기시설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초미니 냉장고와 라디오 때문’이라고 했어요. 양떼가 아플 때 먹일 약을 보관하고, 일기예보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더군요. 세로 5m, 가로 1.5m의 소형 풍력기와 75W(와트)짜리 소형 태양광을 연결한 전기설비 프로그램을 설계했어요. 이 설명을 들은 족장의 첫 질문은 ‘얼마나 무거운가’였어요. 너무 당황했습니다. 늘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에게 전기설비가 가벼워야 한다는 건 고려하지도 않았거든요. 반드시 현지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한 후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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