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100만개의 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③ 가난에 가려졌던 꿈… 이제 미래를 연주합니다

절대음감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유예은’ 유튜브로 색소폰 독학한 프랑스 음대 장학생 ‘허민’
소외계층 아동 지원하는 ‘초록우산드림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소속감 느끼고 사회성 기르게 도와줘

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세 살 때, 엄마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피아노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한 번 들은 곡은 피아노로 그대로 칠 수 있는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 2010년에는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함께 합동 무대를 열었다. 부모님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의 지원으로 재능을 계발해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는 유예은(11)양의 이야기다.

‘한국의 폴 포츠’ 최성봉(22)씨의 인생도 음악으로 빛을 발했다. 보육원 생활, 보육 시설에서의 구타, 유흥가 껌팔이 생활…. 길거리 인생이던 최씨는 인터넷으로 레슨 광고를 낸 박정소(당시 배재대 음대생)씨를 통해 성악을 배웠다. 대전 예술고 재학 중에는 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를 지속했다. 지난해 8월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하며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썼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질 수 없을까. 1시간에 몇십만원씩 하는 레슨비, 고가의 악기 구입비 등 음악에 재능을 가진 저소득층 아이들의 경우 꿈도 꾸지 못하게하는 현실이다. 대학 예체능 계열의 1년 등록금은 평균 932만원이다. 어린이재단은 예은양과 같이 재능이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하는 인재 양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고급 악기를 접하기 어려운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①‘드림오케스트라’아이들은 매주 화,목 마천복지관에서 8명의 강사들에게 악기 를 배운다. ② 프랑스 국립 음대 최연소 장학생이 된 허민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①‘드림오케스트라’아이들은 매주 화,목 마천복지관에서 8명의 강사들에게 악기 를 배운다. ② 프랑스 국립 음대 최연소 장학생이 된 허민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음악으로 소통을 배워요, 우리는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

“자, 모두 한마디씩 하면 50마디가 됩니다. 쉿, 주목!”

박광(41) 지휘자의 한마디에 마천종합사회복지관(이하 마천복지관) 지하 1층 강당에 부채꼴 대형으로 앉은 50명의 아이가 금세 조용해졌다. 지난달 27일 저녁,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 연습 현장.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트롬본…. 아이의 키를 훌쩍 넘긴 콘트라베이스도 보인다. 서툴긴 해도 귀에 익숙한 선율이 들려온다. “도레미미 도미 솔라솔~” 동요 ‘퐁당퐁당’이다.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는 악기를 배울 기회가 부족한 소외 계층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재단의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이다. 올해는 SBS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어린이재단 마케팅본부 이서영 팀장은 “집에만 있으면 방임될 우려가 있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 사업의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천과 천안 두 곳에서 각각 50명의 아이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지난 8월 2박 3일 동안 진행된 멘토링 캠프에서 마천복지관 아이들은 난생처음 악기를 받고 ‘에델바이스’ 합주에 도전했다.

“보통 악기 자세를 잡는 것만 해도 최소 6개월이 걸려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만 먼저 아이들에게 합주하는 재미를 주기로 했어요. 캠프 때 잘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를 가르쳐 주고. 못하는 아이들은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면서 유대 관계를 배워갔어요.”(박광 지휘자)

마천복지관에서는 지난 7월말부터 매주 화, 목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정기적인 레슨이 진행된다. 8명의 강사진 외에 한양대 음대 학생들이 봉사 활동으로 멘토링을 하고 있다. 출석률은 평균 90%가 넘는다.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임종률(12·마천초6)군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증상이 완화되고 있다. 마천복지관 이광표 대리는 “종률이가 부쩍 표현력도 늘고 좋아졌다”고 말했다. 종률군의 장래 희망은 과학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다. 종률군이 오케스트라 활동에서 맡은 파트는 베이스. 160㎝가량 되는 큰 덩치에 어울리는 악기다. 종률군은 “친구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며 “월, 수, 금 중 이틀 정도 따로 복지관에 나와서 연습한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푹 빠진 종률군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캠프 갔을 때요. 마지막 날에 부모님이 와서 공연을 봤어요. 엄마 표정이 좋았어요. 뿌듯했어요.” 종률군의 표정이 그때를 회상하는 듯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프랑스 국립 음대 최연소 장학생, 색소폰 신동 ‘허민’

허민군은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 음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유튜브를 통해 허민군의 연주를 본 이 대학 필립 게스 교수가 메일로 직접 연락을 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장학금까지 제공키로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비싼 유학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벌써 걱정이다. 어린이재단 이서영 팀장은 “허민군은 2011년부터 재능 계발비를 지원했는데, 1년에 최고 800만원(월 66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다”며 “유학을 가는 학생은 허민군이 처음이라 생활비, 레슨비, 어학 공부비 등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민군은 지방의 조그만 개척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함께 양로원에 봉사 활동을 다니다가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드럼을 연주하면서 봉사 활동을 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트로트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중고 색소폰을 구입해서 연습을 하고 ‘목포의 눈물’을 연주했는데 잘한다고 용돈을 주신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원에서 간단하게 연주법을 배운 후 유튜브 동영상 강의로 혼자 색소폰을 익혔다. 3개월의 독학 끝에 서울대 관악동문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색소폰 신동’으로 화제가 됐다. CBS콩쿠르 1위, 전국 청소년 기악 경연 대회 최우수상, 오사카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등 각종 대회마다 1위를 휩쓸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서 1년간의 음악 과정도 수료했다.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대니 정(38)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허민군의 연주를 듣고 “악기의 표현력이 매우 뛰어나다”며 감탄했다. 유학을 앞둔 허민군은 “세계적인 색소포니스트가 돼서 저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만7~18세의 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 아동 중에서 학업과 예체능, 기능(기술) 등 특정분야에서 우수한 재능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아동을 매년 선발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최대 8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받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007년부터 재능계발비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매년 약 80명의 아동이 혜택을 받고 있다.

●꿈나무 후원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희망나눔센터

전화: 1588-1940

홈페이지: www.childfund.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childfundkor

트위터: @childfund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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